“주총 때 가면 옷 한 벌씩 주나요?”

“예?? 주주님 저희는 전자 회사입니다.”

“해외에 의류 공장도 있지 않나요?”

“….”

“그럼, 주주총회에서는 뭘 주나요?”

“상법에서 금품을 금하고 있기에 행사 후 약소한 기념품 정도 드릴 예정입니다.”

“뭘 주는지 들어보고 갈 거니까 말해요. 주총에 가서 힘들어지게 할 수도 있어요.”

“좋은 거 아니라서 죄송합니다.”

TV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나온 개그 이야기가 아니라 최근 실제로 겪었던 일화다. 가뜩이나 주주총회를 앞두고 엉뚱한 이슈로 주가가 불안정해져서 주주들의 불만 전화가 쇄도하던 참에 걸려온 전화였다. 전자부품 회사 주식을 사놓고는 의류 회사로 알고 있다는 주주의 말에 뭐라 대답을 해야 할지 선뜻 입이 벌어지지가 않았다.

2018년부터 섀도우보팅 제도가 폐지되면서 대주주의 지분율이 높지 않은 상장사들은 3월 정기 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패닉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칫 멀쩡한 회사가 한 해 경영을 열심히 해놓고도 이를 결산하는 주총이 무산되기라도 하면, 졸지에 이상한 회사로 전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곤란한 상황을 무기로 이용하기도

섀도우보팅 제도는 주권을 발행한 회사가 예탁결제원에 요청할 경우, 예탁결제원은 각 안건에 대해 주주총회에 참여한 주주의 찬반 비율에 따라 참석하지 않은 주주의 투표권을 임의로 행사하는 것이다. 주총에 참석하지 않은 주주의 투표권을 예탁결제원이 임의로 행사해주는 것으로, 찬반 비율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의결정족수를 채울 수 있기 때문에, 그간 많은 회사들이 주주총회 결의 성립요건을 채우지 못하는 사태를 막을 수 있었다.

섀도우보팅 제도가 본래의 목적과는 다르게 지배주주의 기업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변질되었다고 생각해 이를 폐지하고 주주의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반영해, 2018년부터 폐지됐다. 의결권을 대리 행사해줘서 그동안 상장사들이 편한 점이 많았다. 모자란 것은 예탁결제원에서 채워달라고 하면 그냥 끝이었는데, 이젠 최소한 25% 이상의 표가 모이지 않으면 주주총회를 열 수조차 없게 됐다. 상장회사협의회와 코스닥협회 상장사 1873 기업 중 1/3 정도는 주주총회에서 감사 및 감사위원을 선임하는 것이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주주는 주식회사의 경영주체로 자신이 소유한 주식에 따라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주주총회는 이러한 주주들이 모여 회사의 의사를 결정하는 최고기관의 역할을 한다. 이익배당에 관한 결의나 계산서류 승인, 이사 해임, 업무 양도 등 회사의 명운을 결정할 굵직한 결정들이 이뤄지는 곳이기 때문에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주가가 오른다면 주주로서는 더할 나위 없겠지만, 주가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때는 주주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하지만 주주라 하더라도 기업에 대해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큰 맘 먹고 힌트라도 한 가지 얻기 위해서 회사로 직접 전화를 걸지만 정작 들을 수 있는 말은 거의 없다. 회사가 특정 정보를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정말로 주주가 옷이나 한 벌 얻어 입기 위해서 전화를 한 것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다. 주가 상황이 좋은 때였다면 주주들이 기어이 회사로 전화를 걸어왔을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무슨 이유에서였던 주주총회라는 주요 이벤트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주가가 불안정한 상황이 이어졌기에, 모처럼만에 회사에 화풀이나 하기 위해서 전화를 한 것인데, 엉뚱하게도 잘 못 짚은 것이었으리라는 결론이다. 결국 전자업종 기업에 전화해서 짜증 섞인 목소리로 옷 타령만 하고 말았다.

 

답정너, 궁금해서 물어본 것이 아냐

한때 ‘느그 아부지 뭐 하시노?’라는 말이 유행이었다. 영화 <친구>에서 나온 장면이다. 선생이 아이들을 교탁 앞으로 불러내 혼찌검을 내면서 물어본 것이다. 불려 나온 장동건이 “아버지 장의사인데예’라고 하니 “느그 아부지는 시체 염하고 고생하는데 니는 성적이 이기 뭐꼬” 하면서 뺨을 때린다. 유오성에 이르러서는 “아부지 건달입니더”라는 대답에 “뭐어, 건달? 건달이 자랑이가” 하면서 시계까지 풀고 달려든다. 부산에서 1970년대와 80년대에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그 영화는 사실 필자가 생활한 바와 다름이 없었다. 때문에 더 와 닿았다. 사투리도 그랬다.

뭐라고 대답해야 맞지 않을까?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뭐라고 하든 상관없이 맞아야 했다. ‘검찰총장,’ ‘경찰서장,’ ‘재단 이사장’ 같은 대답이 나온다면야 상황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그런 사람의 자녀들이 불려나갈 일도 없고, 필자가 다녔던 변두리 초중고에는 그런 사람의 자제가 없었다. 선생이 궁금해서 물어본 것이 아니다.

이런 일들이 회사라는 조직의 내부에서도 빈번하다. 너무 많다. 지위가 있는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가 대화를 하면서 꼭 중간중간에 상대방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질문이라는 것은 유용하다. 상대방의 관심을 더 끌어내고 집중하게 한다는 것은 장점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상대방의 의견이 존중되었을 때인데, 문제는 상대방이 어떤 의견을 가지든지 상관없이 자기 의견만 관철되면 된다는 생각으로 몰아붙일 때에 주로 질문이 사용된다는 것이다.

모 CEO가 지방 계열사를 다녀오던 중에, 구미에 있는 공장 외벽에 붙은 조그만 간판이 오래되어 헤진 것을 발견했다. 본사로 돌아와서는 총무팀장을 불렀다. ‘회사 사인물에 대해 점검해서 고쳐놔’라는 지시를 내렸다.

 

제대로 얘기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몰라

팀장은 전국 각 사업장 담당자에게 연락해 내외부 간판, 안내물, 표식물 등을 포함해서 실태를 조사했다.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표로 정리했다. 불량 개수까지 정리한 뒤, 시급히 개선해야 할 것들을 우선순위에 두고 전체 예산과 계획을 짜서 보고했다. 하지만 자금 사정도 좋지 못했고, 생산과 직결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진행은 보류됐다. 부득이 예산 없이 정비 가능한 것들만 진행했다.

그런데 CEO는 일이 있을 때마다 팀장을 불러서 야단쳤다.

“사인물 개선하라는 것, 어떻게 됐어?”

“예, 진행하고 있습니다. 전수 조사도 해서 결재 올렸지만 보류되어서, 지금은 자체 정비로 진행 중입니다.”

‘다른 회사 간판들 어찌 관리하는지 알아?’, ‘회사 얼굴인 간판 같은 것에는 관심도 없지?’, ‘사람들이 간판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할 수 있는 정비가 끝났음에도 틈만 나면 팀장을 다그쳤다. 구미공장 외벽 작은 간판의 존재를 알 수 없던 팀장은 재정비는 계속했음에도 번번이 야단을 맞아야 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해.’ 말하는 사람은 너무나 뻔한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의외로 그 말을 듣는 사람은 말 몇 마디로 그 사람의 생각을 헤아리기는 너무 힘들다. 평소 대화를 많이 해서 성향이나 습관을 잘 알지 못하는 관계라면 더욱 그렇다. 생각을 제대로 전하질 못하니 엉뚱한 질문과 대답이 난무할 뿐이다. ‘느그 아부지 뭐 하시노?’나 ‘주총장에 가면 옷 한 벌 주나요?’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면 무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