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질문]

“얼마 전 위기가 발생해 대표이사님을 비롯한 위기관리팀이 집합해 대응을 논의했습니다. 알다시피 워낙 정신 없고 혼란스러운 상황이라 논의가 제대로 되기 어렵잖아요. 자꾸 사안이 돌고 돌아 시간만 지연되고 아주 고생스러웠습니다. 회의를 진전시키는 효과적인 방법이 뭐가 있을까요?”

[컨설턴트의 답변]

위기대응 회의를 보다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준비가 필요합니다. 첫째, MC (사회) 역할을 하는 임원이 있어야 합니다. 만약 대표이사님이 MC 역할을 스스로 할 수 있다면 가장 좋습니다만, 최소한 위기관리 매니저 역할을 하게 되어 있는 임원이라도 MC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위기대응 회의에서 MC 역할을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논의 의제는 반복되고 중복되고 어지럽게 펼쳐집니다. 시간관리조차 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결정은 되지 않고 보고와 논의만 지루하게 이어지게 됩니다. 제대로 어젠다를 수립한 훈련된 MC가 있다면 이런 고민은 상당 부분 해소됩니다.

두 번째는 위기관리팀 모두가 위기관리 매뉴얼에서 어떤 프로세스를 기록하고 있는지 평소 알고 있는 상태에서 위기대응 회의에 참석해야 합니다. 이 의미는 모두가 위기관리 매뉴얼을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암기하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들 대부분이 위기관리 매뉴얼에서 어떤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와 함께 매뉴얼 어느 페이지에 자신들이 필요한 프로세스가 규정되어 있다는 기억은 있어야 할 것입니다.

매뉴얼에 대한 이해가 없는 위기관리팀의 경우 매번 위기 상황을 처음부터 시작하는 느낌을 가지고 논의를 시작합니다. 분명 매뉴얼상에는 A위기 유형에 대해서 이렇게 저렇게 프로세스를 밟으라는 명시가 되어 있지만, 이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매번 새롭고, 매번 처음이 고됩니다. 위기대응 주체들이 매번 논의에 의해 바뀌고, 대응 메시지도 초안이 매번 바뀝니다. 채널이나 원칙도 매번 왔다갔다 합니다. 당연히 위기대응 논의가 길어지는 반면 생산성은 떨어집니다.

세 번째 준비는 거대한 칠판입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겠지만, 실제 위기대응 시뮬레이션을 해본 위기관리팀은 거대한 칠판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됩니다. 거대한 칠판이란 상황판을 의미합니다. 많은 기업이 상황판을 기록하지 않은 채 각자의 머릿속에서 위기대응 회의 내용과 결과를 체크하려 합니다. 일부는 회의록을 써서 공유하고 위기대응을 독려합니다. 둘 다 위험하고 비생산적인 노력입니다.

특히 최근에는 위기 대응 회의록을 기록으로 남겨 이메일 등으로 공유하고 SMS나 메신저로 전파하고 하는 것에 대해 기업 스스로 주의하려는 흐름이 있습니다. 상당한 수의 기업 위기들이 결국에는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는 현실에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내부 회의록을 기록으로 남긴다는 것은 부담스러운 것입니다. 모든 내부 정보가 외부화되는 시대에서 이런 위기대응 고민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입니다.

거대한 상황판을 만들어, 그 위에 현재 지속 변화되는 상황을 기록하게 하면 됩니다. 외부 내부 이해관계자들의 변화하는 움직임을 또 그 옆에 기록합니다. 자사의 대응 포지션과 상황관리 방식들 그리고 대응 메시지들을 또 정리합니다. 그걸 다 같이 보면서 위기대응 회의를 진행합니다. 최소한 대표이사는 상황판을 통해 현 상황부터 이해관계자 그리고 그에 대한 자사의 대응과 결과까지 한눈에 볼 수 있게 됩니다. 변화된 상황이 있다면 그 부분을 지우고 새롭게 넣으면 됩니다.

모든 위기대응이 마무리되면, 그 상황판을 쓱쓱 지워버리면 됩니다. 그 안에 있었던 많은 정보들과 연락처들 메시지들 등은 위기와 함께 사라지고, 정보에 대한 부담도 사라집니다. 위기대응 회의는 보다 이해하기 쉽고 생산적으로 마무리됩니다.

경험을 보유하고 훈련된 MC와 위기관리 매뉴얼을 이해하고 있는 위기관리팀이 마주 앉아 상황판을 함께 바라보며 열심히 상황 기록을 업데이트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리고 현재 자사에서 운영되는 위기대응 회의의 모습을 떠올려 그와 비교해 보십시오. 어떤 것이 필요한지에 대한 감이 쉽게 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