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양인정 기자] 청와대 개헌안과 관련, 대통령 직속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의 김종철 부위원장은 국내 대표적인 `현실 헌법학자`다.

국가와 사회의 기본법인 헌법이 법전 속에 잠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실생활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이야말로 헌법정신을 구현하는 것이라고 주장해온 헌법학자 중 하나다.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정치권의 `블랙홀`로 불리는 개헌논쟁에 학자로서 뛰어든 이유이기도 하다.

서울대 공법학과와 영국 런던정경대학(LSE) 대학원 법학과 박사과정 졸업 (Ph. D. in Law)하고 헌법재판소 헌법연구원을 거쳐 현재 연세대 헌법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민이 헌법의 저작권자"라고 주장하는 김종철 국민헌법자문특위 부위원장.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개헌 논란, `헌법이 국민의 것` 되는 과정

-청와대가 발의한 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할지 우려가 많다. 논란만 일으키는게 아니냐는 지적이 있는데.

▲개헌안 논란은 그 자체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 과거 노무현 정부 때 수도 이전 문제로 헌법재판소가 관습헌법 이론으로 위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당시 국민들이 헌법 교과서에 나오는 이론에 대해 많은 얘기가 오갔다.

중요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설령 국회에서 헌법이 통과되지 않더라도 헌법 제정권자인 국민이 실생활에 직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헌법을 얘기할 수 있는 상황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헌법은 사회, 경제, 문화, 정치 생활의 질서에 관한 국민의 합의다. 또 사회적 합의다. 그러면 당연히 국민이 그 논의의 중심이 있어야 한다. 저작권자가 국민이기 때문이다. 지금껏 헌법의 저작권자인 국민이 헌법에서 소외됐다.

헌법이 추상적이고 포괄적으로 언어로 이뤄져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데 개헌 논의가 활발해지면 그런 것들이 구체화되고 쉬워진다. 개헌안 논의는 국회의 통과도 중요하지만, 이런 과정도 매우 중요하다.

 

"사회 다양성 수용위해 헌재 재판관도 다양해져야"

-법관자격이 없어도 헌법재판관이 될 수 있는 조항이 개헌안에 들어있는데, 법관 아닌 사람이 헌법적 판단을 잘 할 수 있을까.

▲생소할지 모르지만, 헌법학계에서 오래전부터 논의된 부분이다. 우리 사회 구성은 매우 다양하다. 그만큼 다양한 관점이 필요한 판단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법률적 세계관이 이런 것을 모두 담을 수 없다.

또 우리 사회에 법관 자격이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 그 사람들이 국민을 가치적으로 대변할 수 있지만,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추측은 가능하지 않겠는가. 물론 법률 전문성이 없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헌법적 판단에는 고도의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이 큰 판결이 있게 마련이다.

이를테면 최근에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이나 통합진보당의 해산이 그 예이다. 이런 결정일수록 특히 국민의 민주적 의사가 종합적으로 반영되어야 한다.

법관이어야 한다는 자격을 없애는 대신 다양한 세계관, 인생관, 세대관을 가질 수 있도록 구성해야 한다. 나이에 따라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도 다르다. 다양한 세대관이 필요한 이유다.

간통죄의 폐지를 보자. 간통 그 자체가 대중적 정서에 어긋나는 것과 별개로 한 개인의 내밀한 성적 결정에 국가가 형벌권을 행사해야 하는 문제에 대한 판단에 대해 그동안 4번의 헌법재판소의 판단과 결정이 있었다. 국회가 국민의 표를 의식해 형법을 개정하지 못한 책임도 있는데, 헌법재판소가 결단을 내렸던 것이다.

국민의 정서적 문제도 있지만 헌법재판관들은 사람들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이런 판단에 헌법재판관의 세계관, 인생관, 세대관이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 김종철 연세대 교수는 "헌법이 가치중립적일 수 없다"며 토지공개념을 포함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헌법은 가치중립적일 수 없어..이번 개헌안은 가치수렴적"

- 헌법전문에 5·18민주화운동을, 본문에 토지 공개념 등을 포함해 이념 편향적이라는 지적이 있는데.

▲그런 평가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시대정신이 무엇인지 직시하는 것이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헌법이 `가치중립적`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헌법에 어떤 이념에도 치우지지 않고 완전한 중도를 담을 수 있는 것이 가능한가 되묻고 싶다.

- 헌법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도 되는 건가.

▲ 예컨대 우리 헌법에 나와 있는 사용자와 단체로 교섭하는 등 노동3권을 보장하는 것이 가치 중립적으로 보는가. 또 우리 헌법이 자유방임 경제체제로 인해 생긴 양극화를 배제하고 공공복리를 위해 소유권을 제한하는 것이 가치 중립적인가. 그렇지 않다. 우리 헌법이 `계약자유주의`를 엄격히 적용, 사용자가 맘대로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정하도록 하지 않는다. 또 헌법은 국가가 사람들이 고루 잘 살 수 있도록 노력하도록 의무를 부여했다.

이는 이념 편향적인 것이 아니라 역사적 맥락에서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가치에 중요성을 두고 다가가는 것이다. 5·18 민주화 운동과 토지공개념 부분은 이런 기준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념 편향적`이라는 것보다 `가치 수렴적`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법 기술적으로도 가치와 이념을 헌법 조문에 완벽하게 중립적으로 담는 것은 불가능하다.

▲김종철 부위원장은 "제헌 헌법이래로 경제분야에서는 건전한 시장경제 육성을 위한 국가의 규제권을 폭넓게 인정해왔다"며 "이번 개헌안은 이를 명확히하는 한편 확대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 특히 토지공개념을 놓고 일각에서는 `사회주의 헌법`이라 비난하는데.

▲1987년에 제정된 헌법에는 정치적 민주화와 절차적 민주주의가 강화됐다. 상대적으로 경제적 민주화에 대한 헌법적 가치 부여가 소홀했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소위 신자유주의 영향으로 경제적인 불평등이 심화됐다는 점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있지 않은가

제헌 헌법 이래로 경제헌법 분야에서 건전한 시장 경제를 육성하기 위한 국가의 규제권을 폭넓게 인정했는데, 이번 개헌안에서 이 점을 명확하게 하고 확대하는 규정을 둘 필요성이 있었다. 결국 토지공개념 규정도 이런 맥락에서 도출된 것이다. 일단 헌법에 반영되면 국가가 사회적 양극화를 해소하고 국민의 균등한 삶의 질을 보장하도록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할 의무가 생긴다.

- 헌법에 명시하지 않더라도 양극화 해소를 위한 정부정책은 늘 있어왔다. 헌법 명시로 달라지는 것이 무엇인가.

▲ 명확한 토지 공개념 규정이 아니더라도 헌법 122조 `국토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한 조항들이 있다. 이 규정으로도 공공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토지소유권을 제한하면서 토지 재화의 집중을 막을 수 있는 근거는 마련되어 있다. 토지라는 것이 제조물처럼 만든다고 늘어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이런 문제로 (토지 재화의 집중 방지를) 명확히 규정해 한정된 토지재산권의 공공성을 더 강화할 필요가 있었다. 토지의 소유 집중과 부동산 투기 때문에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저해하는 것을 막을 수 있게 국가의 재산권 제한 의무 부과를 더 명확히 하려는 것이다.

-김 부위원장이 보기에 개헌안에서 아쉬운 부분은.

▲ 대통령의 국무위원 인사권에 관해 국회의 청문을 받는 안을 지지했으나 채택되지 않았다. 대통령 인사권에 대해 재량권을 줘야 한다는 견해와 대립했다. 민주적 국정 운영에 기여하고 안정을 기할 수 있다는 점은 공감하나 아직 국회의 환경이 이 제도를 받아들이기에는 성숙하지 않았다는 점이 채택되지 못한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