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진종식 기자] 근로자들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퇴직연금 제도를 찾아보기 위해 우리나라 퇴직연금의 현주소와 세계의 퇴직연금 선진4국의 퇴직연금제도를 함께 돌아보았다.

△다른 투자상품 대비 낮은 수익률 △높은 수수료율 △ 자산운용사 중심의 투자 △기본 상식이 부족한 가입자 △ 단조로운 투자상품 리스트 △운용사 중심의 교육 △ 관리 감독의 태만 등 복합적인 질환 증세를 보이고 있는 우리 퇴직연금을 건강체로 변화시키기 위한 새 길을 찾기가 이번 기사의 기획 목적이다.

퇴직연금 제도의 전문가인 류건식 보험연구원 사회안전망연구실 선임연구원, 정창률 단국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민광제 고용노동부 퇴직연금복지과 주무관과 함께 우리나라 퇴직연금의 새 길을 찾아보았다.

♦보험연구원 사회안전망 류건식 선임연구원 인터뷰

1.우리나라의 퇴직연금제도 상 가장 미흡한 부분은 어떤 내용인가?

►우리나라 퇴직연금제도는 DB-DC형 구분할 것 없이 퇴직연금 수급권이 안전하게 작동하지 않고 있다.

예를 들면, DB형 가입자가 10년 근무하면서 퇴직연금을 적립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근무하던 기업이 파산한 경우 근로자는 10년에 해당하는 퇴직금을 받아야 하는데 현재 법에서는 임금채권 보장제도를 인정해서 3년치에 해당하는 퇴직급여만 지급한다. 3년 초과분인 7년간의 퇴직급여는 법적으로 보상받을 길이 없는 실정이다.

DC형 가입자가 20년 근무하면서 6천만원 정도의 퇴직연금을 적립했는데 어느 날 퇴직연금을 관리하는 금융기관이 문을 닫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면 근로자는 예금자보호법에 따라 5000만원은 보상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현재 퇴직연금보장관련법 상으로는 못 받은 퇴직적립금 1000만원은 회수할 방법이 없다.

이처럼 가입자의 퇴직연금을 안전하게 관리하고 지급할 수 있는 법-규정이 미비되어 있기 때문에 가입자의 수급권을 보장하는 관련 법-규정을 완벽하게 정비하는 것이 시급하고 중요하다.

2. 현재 보다 수급권을 강화할 수 있는 어떤 제도나 방법이 있는가?

수탁자(자산운용사, 사용자, 컨설턴트 등)의 책임 이행 여부를 상시적으로 감시, 감독해야 한다. 수탁자나 감독기관이나 모든 법규가 오직 가입자(근로자)의 이익(수급권)을 보장하기 위해 활동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는 수탁자의 범위를 넓게 규정하여 수탁자별로 책임을 부여하고 감시 감독한다. 사용자, 사업자, 컨설턴트, 정책당국까지 수탁자의 범위에 포함하여 주의의무, 충실의무, 분산투자의무, 개인정보준수의무 등 4대 수탁자 책임을 엄격히 규정하여 수탁자가 가입자의 이익을 위해서만 행동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간혹 자산운용사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높은 수수료 수입을 위해 고위험자산에 투자를 유도하거나 퇴직연금 적립금의 부실운용, 사기(횡령) 등 다양한 형태로 근로자와 수탁자 간에 이익상충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데 이런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감시 감독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게 해야 한다.

3. 우리나라도 금융사업자에게는 책임이 부여되어 있지 않나?

►우리나라는 수탁자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고 금융사업자 중심으로 수탁자 책임이 설정되어 있어 사용자 등에 대한 수탁자 책임은 미흡한 수준이다. 영국은 금융기관만 아니라 금융기관에 고용된 펀드매니져까지도 수탁자로 간주하여 책임을 부여하고 있으며 연금자산을 부적절하게 활용하여 이득을 취할 경우 이를 가입자에게 반환하도록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4. 기금형이 도입되면 전문 수탁기관이 책임지고 관리하므로 수탁자 감시를 덜 해도 되는 것 아닌가?

►수탁자 감시인 제도나 감독기관을 두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근로자의 수급권을 완전하게 보존하기 위한 조치이다. 따라서 지금보다 수탁자 범위를 넓혀 금융사업자 만 아니라 사용자(기업)에게도 수탁자의 책임을 부여해야 한다. 왜냐하면 사용자는 사업자 선정, 연금 적립 등 제도 운영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기금형이라도 사용자가 배제되는 것이 아니라 근로자의 의견이 더해질 뿐 절대적인 의사결정자가 아니기 때문에 사용자에게 수탁자 책임을 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연금 계리사, 외부감사인 등에 의해 모든 수탁자을 상시 감시할 수 있도록 제도가 정비되어야 한다.

▲ (자료: 고용노동부)

5. 독일은 공적연금이 노후보장수단의 중심이고 DB형 위주인데 우리가 본받을 점은?

►독일의 퇴직연금 제도가 좋은 제도이긴 하나 공적연금으로 노후 연금의 3분의 2를 마련하느라고 국가 재정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래서 지금은 공적연금 비중을 계속 줄여가면서 기업과 개인이 나눠 적립하는 퇴직연금으로 변경하고 있다. 대신에 독일은 감시-감독 기능이 매우 엄격하게 작동하고 있다. 투자자산의 포트폴리오 구성에 위험자산 비율까지 제한하고 순수DC형은 법으로 금지하면서 퇴직연금이 노후보장수단으로 완벽하게 작동하도록 법적으로 수급권을 최대한 보장하고 있다.

6.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금융기관이 수익률을 높이는 것도 수급권 강화 방법이 아닌가?

►직접적이고 좋은 방법으로 인정받을 수는 있으나 금융사들에게 수익률을 올리도록 강제할 수는 없다. 금융사들은 가입자와 약정에 의해 원리금보장형을 원하는 DB형 투자자에게는 원리금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위험자산을 줄이고 안정적인 포트폴리오로 운용한다. 또 DC형 원리금비보장 투자자에게는 위험자산을 많이 편입해서라도 높은 수익률을 올리기 위한 방법으로 운용한다. 만약 DB형 원리금보장을 원하는 가입자의 상품을 마이너스 수익률이 발생하게 운용했다면 감시-감독기관에 보고하거나 통지해서 확인할 필요가 있다.

7. 퇴직연금 상식이 부족한 가입자에게도 일정 수준의 수익률은 보장해야 하지 않나?

►사실 퇴직연금은 장기상품이므로 은행 정기예금 이자 정도로만 운영하더라도 5년 이상,10년씩 운용하면 꽤 수익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퇴직연금은 투자상품이 제한되어있고 이익이 나건 안 나건 수수료을 미리 떼어간다. 이것 또한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한 부분인데 가입자 입장에서는 세금을 물더라도 수익률 확정되어 있는 은행상품으로 운용하면 매년 수수료를 물어야 하는 신탁상품보다 수익률이 좋을 수 있다. 그러나 법으로 퇴직연금을 은행에 맡길 때는 신탁상품이나 다른 투자상품으로 운용해야 하기 때문에 할 수 없다.

8. 우리나라 근로 환경에 적합한 한국적 퇴직연금제도는 어떤 제도일까요?

►DB형이든 DC형이든 기금형이든 퇴직연금의 제일 핵심은 가입자인 근로자의 수급권이 확실하게 보장되는 제도가 제일 좋은 제도이다. 이런 이유로 세계 여러나라들이 도입해서 운영하는 퇴직연금 제도는 나라마다 다르고 가지 각색이다. 원칙은 두세 개 이지만 제도의 디테일은 다 다르다. 따라서 퇴직연금의 근본 목적을 가장 잘 이행할 수 있는 합목적적 제도가 필요한 것이다. 근본 목적을 가장 잘 이행할 수 있게 법·규정이 만들어지고 이에 따라 감시·감독이 진행되어야 한다.

이 질문의 답변으로 미국의 < ERISA법 >을 소개하겠다. 미국의 에리사 法은 ‘근로자퇴직소득보장법’ 인데 이 법률 내용을 담은 책 두께가 500 페이지를 넘는다. 이 책의 50% 정도 분량은 ‘근로자의 연금수급권 보호’ 내용이고, 나머지 50% 분량은 ‘수탁자 책임원리’(주로 운용하는 금융회사 관련)를 세세하게 규정한 내용이다. 퇴직연금의 핵심은 ‘근로자의 수급권 보호’와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금융회사들의 ‘책임원리’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용어해설 : ERISA법(Employee Retirement Income Security Act)

미국의 ‘근로자퇴직소득보장법’으로 1974년 노동자들의 연금 수급권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연금개혁법이다. 이 법은 연금 수탁자들에게 수탁자 의무를 부과함과 동시에 기업연금이 파산하더라도 노동자들이 일정액의 연금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연금급여 보증공사를 설립하도록 했다. ERISA는 확정급여형(DB)과 확정기여형(DC) 도입을 골자로 하고 있다.

▲노후보장을 위한 3층 보장체제 (자료: 금융감독원)

▲정창률 단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퇴직연금은 가입자(근로자)들의 유일한 은퇴 후 노후보장 수단이므로 이점에 초점을 맞춰 운용하고 관리해야 한다“ 며 ”기존에 시행하고 있는 계약형 퇴직연금이 수익률이 높지 않다는 이유로 새로운 기금형 제도를 도입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목돈마련용 금융상품의 하나로 생각하기 때문에 나온 대안으로 볼 수 있다.기금형이 새로 나와도 가입자의 의사(니즈)가 없는 경우에는 강제로 기금형을 가입시킬 수 없기 때문에 기금형은 무조건 수익률이 높아질 수 있다고 말할 수 없다.“ 하고 그는“ 더 중요한 사항은 가입자(근로자)들의 수급권이 완전하게 보장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된 제도가 좋은 제도이므로 기업이나, 운용하는 금융회사가 파산할 경우에도 재보험 등으로 가입자에게 퇴직연금이 안전하게 지급될 수 있도록 법-규정-지침 등의 정비, 미가입한 30인 미만의 소기업 유인책, 정부의 세제혜택 등 투자환경과 인프라가 먼저 구축되고 세부적인 방법이 개선되어야 한다. 더불어 운용하는 금융사들도 안정성이 높은 다양한 상품을 만들어 근로자들이 노후연금 수령을 목적으로 퇴직연금을 가입할 수 있도록 유인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고 제안했다.

▲고용노동부 민광제 퇴직연금복지과 주무관은 “지난 2016년 7월 도입 예정으로 추진되었던 기금형 퇴직연금제도가 지난 1월 다시 추진되고 있다.“ 며 ”퇴직연금은 근로자의 노후보장수단이기 때문에 안정성과 수익성 확보가 중요하며 기존의 계약형 퇴직연금으로 부족한 근로자의 요구(니즈)를 제도에 반영하여 사용자와 근로자의 의사소통에 도움이 되고 적립금을 별도의 수탁기관이 기금에 신탁하여 운영하며 노·사·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기금운용위원회에서 퇴직연금 운용 방향과 자산 배분 등을 결정하여 운용하므로 수익률 제고도 기대할 수 있다“하고 그는” 이제 퇴직연금이 근로자의 수급권을 더 확실하게 보장하고 수탁자들의 책임이 강화된 제도로 운영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