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양인정 기자]

내부고발자, 물질적·정신적 고통 ‘그림자’

내부고발 사건이 사회변혁의 계기로 높게 평가받더라도, 내부고발자 자신은 숨어 살아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더 나아가 비참한 삶도 각오해야 한다. 체계화되지 않은 제도와 비우호적인 문화로 인해 조직 내의 따돌림을 당하기 일쑤다.

신인술(58) 씨는 지난 2015년 1월부터 D에너지의 탱크로리 운전기사로 근무했다. 신 씨는 입사 후 회사가 육상에서 유통이 금지된 해상벙커C유를 불법 운반하고 있으며, 자신이 그 일에 가담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신 씨는 같은 해 8월 퇴사하고 회사의 불법유통 사실이 담긴 카카오톡 대화방, 거래처 출입고, 가짜 전표 등을 모아 부산지방국세청에 제보했다.

신 씨는 수사과정에서 신분이 노출돼 지난 2016년 6월부터 사장과 공장책임자에게 수차례 협박전화를 받았다. 심지어 살해 협박도 받았고, 5개월간 도피생활을 하기도 했다.

현대자동차는 지난해 4월 결함이 예상되는 그랜저 등 5개 차종 17만1348대를 리콜했다. 이것은 김광호 씨라는 내부고발자가 나섰기에 가능했다. 그는 현대자동차 품질본부 품질전략팀 부장에서 근무했다. 김 씨는 회사가 자동차 제작결함을 은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먼저 감사기획팀에 개선조치를 요구했다. 그러나 시정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자 김 씨는 지난 2016년 8월부터 미국 교통부 산하 도로교통안전국에, 국내에는 국토교통부를 포함해 언론 등에 제보했다.

회사는 곧바로 인사징계로 대응했다. 김 씨는 인사징계위원회에서 공익제보자를 처벌하는 것은 올바른 방향이 아니라고 항변했지만, 결국 김 씨는 영업비밀 침해 등의 보안규정 위반 사유로 한 달 만에 해고됐다.

게다가 김 씨는 업무상 배임,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위반 등의 혐의로 형사고발되기도 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김 씨의 해고가 불이익조치라며 해고를 취소하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김 씨는 복직 한 달 만에 사직서를 제출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업 내 내부고발이 사회영역보다 활발하지 않다.

글로벌 회계·컨설팅 법인 EY(언스트앤영)가 지난해 5월 발표한 ‘2017 아시아태평양 부정부패 설문조사’에 따르면 2016년 11월부터 2017년 2월까지 한국, 중국, 일본, 호주,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 14개국에서 근무하는 기업의 임직원 17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한국 응답자의 61%가 “내부고발 핫라인(Whistle-Blowing Hotline)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이는 아태지역 평균인 37%를 크게 웃돌고 일본(42%), 중국(40%) 등보다도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내부고발 핫라인을 신뢰하지 않는 이유는 자신의 제보 사실이 비밀로 유지된다는 확신이 없고, 내부고발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적 장치가 불충분하다는 생각이 48%나 됐다.

기업의 문제뿐만 아니라 대학조직도 내부고발자는 여전히 희생자 반열에 올라 있다.

최근 수원대학교는 이원영 교수(건축도시부동산학부)와 손병돈 교수(정보미디어학과)의 신규임용을 결정했다. 손 교수는 2013년 12월 재임용이 거부된 후 50개월 만에, 이 교수는 2014년 1월 파면통보를 받은 지 49개월 만에 법정투쟁 끝에 복직된 것이다.

수원대는 지난 2013년과 2014년에 학교 비리를 내부고발한 교수협의회 소속 6명의 교수를 파면, 재임용 거부 등으로 해직 조치했다.

이들이 고발한 학교의 비리는 대학교 총장의 판공비 횡령이었다. 3년 동안 횡령한 판공비는 1억6900만원이었고 이를 은폐하는 과정에서 업무상 배임, 사문서 위조, 뇌물공여, 사립학교법 위반 등 40건의 혐의가 드러났다.

내부고발이 터지자마자 대학 측은 이들을 해직조치하고 10억원대의 손해배상 소송을 비롯해 7번의 민사소송과 고소로 대응했다. 학교의 해직조치와 소송이 신속히 이뤄진 반면, 이들의 복직에는 5년이 걸렸다.

이 교수는 “결국 소송에서 이겼지만 소송하는 동안 소득이 없어 생활이 궁핍해 시련이 컸다”고 털어놓았다.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의 신평 교수(헌법학)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그는 임기만료를 열흘 남겨둔 대학총장이 대학본부 주요보직자 인사를 단행하는 것에 대해 부당하다고 주장했다가 오히려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당했다.

신 교수는 대학총장이 지명한 A교수의 자격에 문제가 있다는 글을 학내 게시판에 올렸다. 그 글에는 A교수가 출장 중 성매매를 했다는 내용의 내부고발성 글이 포함됐다.

인사에서 배제된 A교수는 신 교수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고 재판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대학 측은 서둘러 신 교수를 정직 3개월의 중징계 처분을 했다.

검찰은 수사 당시 신 교수에 거듭된 대질심문과 거짓말탐지기 조사요청에도 응하지 않은 채 신 교수를 기소했다. 1심 법원은 신 교수에게 무죄를 선고했으나 2심은 벌금 500만원의 유죄선고를 내렸다. 2심 법원은 1심 법원을 뒤집으면서 증거조사를 하지 않은 채 판결 선고를 내렸다. 신 교수는 대법원에 상고했으나 1년 6개월이 지나도록 결정이 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판사 경력을 갖고 있는 신 교수조차도 장기간 소송 등으로 물질적, 정신적 고통을 이기기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지금 우리는

내부고발이 가져온 사회발전을 고려하면 내부고발의 정당성은 충분히 인정된다.

우리나라는 2002년 이전까지 내부고발자 보호제도가 없었다. 이 때문에 1990년대에는 내부고발자들은 구속되거나 파면되는 것이 당연시됐다. 이후 내부고발자들에 대한 보호를 시민단체가 끊임없이 요구하고, 한보사태를 시발점으로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관료들의 부정부패를 방지할 필요성마저 대두됐다. 부패방지법의 제정은 그런 배경을 갖고 있다.

공공분야에서 내부고발은 부패방지법을 통해 통제했지만 민간분야의 내부고발은 여전히 보복에 노출되어 있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여러 시민단체들의 입법운동 끝에 지난 2011년 9월 일반 시민이 국민의 건강과 안전, 환경, 소비자의 이익, 공정한 경쟁을 침해하는 행위가 발생했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 이를 신고하더라도 보호받을 수 있는 ‘공익신고자보호법’이 만들어졌다.

공익과 민간부분의 보호법이 만들어진 덕에 내부고발자들이 보호되고 있을까.

국민권익위원회의 김영수 조사관은 “내부고발로 조직이 변하기도 하지만 조직의 부패는 다시 진화한다”며 “부패가 진화될수록 내부고발자를 옭죄는 방법도 진화한다”고 지적했다.

법의 한계로 인한 사각지대는 여전히 남아 있다.

최순실 게이트 중 하나인 청와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는 헌법과 공직윤리를 크게 위반했지만, 현행법상 부패행위로 규정되지 않아 내부고발자가 신고를 했더라도 보호받지 못했을 것이다. 배임·횡령 등 중대한 기업비리 신고도 공익신고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 같은 내부고발이 이뤄지더라도 신고자는 보호받지 못하고 오히려 보복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신고할 때 실명과 인적사항을 기재하도록 한 것도 잘못됐다는 지적도 있다. 신고자의 신분노출 가능성이 크다. 신고자에 대한 경제적 보상 및 생계 보장 방안이 미비한 점은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다.

내부고발자를 보는 사회의 부정적 시선은 또 다른 문제다. 내부고발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당위와 이로 인한 결과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으면서, 정작 자신의 조직 내에서 내부고발자는 그리 달갑지 않다. 사실상 사회적 처벌이다.

연공서열이나 계급이 중시되는 조직일수록 내부고발은 배신, 항명, 하극상으로 치부된다.

군대가 그렇고, 기업 내에서도 내부고발자는 보고체계를 어지럽히는 사람으로 취급된다. 기업 내의 고발은 보고체계와 동떨어진 감사부서에 먼저 해야 하는데, 이런 행위를 비조직적 행위로 보는 시작이 여전하다.

또 ‘조직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만두면 될 일이지’라며, 내부고발을 통해 조직에 분란을 일으키는 것은 내부고발자에게 문제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밖에 행정논문집 ‘행정논총’이 2011년 12월에 발간한 논문 ‘한국의 내부고발자 사례를 통해 본 효과적인 내부고발의 조건과 함의’에서 언급된 내부고발자의 보복 유형은 ▲업무성과와 무관하게 사직, 퇴사, 퇴직, 다른 지역으로 전출 권유하거나 한직으로 인사배치 ▲명령 불복종, 위계질서 문란, 외부에 비밀 유출(내부고발 내용)을 이유로 내부고발자에게 징계를 내림 ▲폭력, 욕설, 고함 등 폭언 ▲‘재량권’이 상급자가 내부고발자에게만 불리한 기준을 적용, 휴가 등 근로복지에서 불이익 ▲상급자가 내부고발자를 왕따시킬 것을 종용. 가령 말을 걸지 않거나 인사를 하지 않는 등 더 이상 동료로 취급하지 않음 ▲사소한 업무에서 괘씸죄를 적용함 등이 있다.

의인을 보호하는 사회 만들어야

공익제보를 위해 시민과 연대하고 교육과 정책활동을 펴는 시민단체 '내부제보실천운동' 이지문 상임대표는 “외국의 경우 내부고발에 앞서 비용편익을 충분히 고려해 실행에 옮기는 데 비해, 우리나라 내부고발은 바보스러울 정도로 순수한 동기에서 시작된다”고 분석했다.

우리 사회가 내부고발자를 지켜야 하는 이유는 사회 구성원의 안전과도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내부고발은 사전적이고 예방적이다.

기업의 내부고발도 마찬가지다. 더 나아가 내부고발자의 잠재 가능성은 기업 스스로 준법경영을 지키게 하는 동인이 될 수도 있다.

선문대학교 곽관훈 교수(경찰행정법학과)는 논문에서 “내부고발을 활성화한다는 것은 기업의 법률행위 위반행위가 언제든지 외부로 알려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이는 기업이 법률 위반 행위를 막기 위해 스스로 노력할 수 있는 인센티브를 부여한다. 내부고발 제도는 기업의 자발적 준수를 이끌 수 있는 새로운 규제 패러다임”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