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태호 기자][이코노믹리뷰=정경진 기자] 공익 제보자를 보호하는 해외 선진국의 법적 장치는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의 굵직한 사건을 거치면서 마련됐다. 외국의 공익제보자 보호법은 개인의 신변을 보장하는 소극적 보호에 그치지 않고 정신·신체의 피해 보상과 안전 보장, 공익 제보에 따른 소득 상실 등 제보자의 권익을 적극 보호해 주는 게 특징이다. 특히 공익제보자에게는 천문학적인 보상금을 주고 조직 내에서 받을 수 있는 불이익에 대한 보상 제도를 체계적으로 만들어 공익제보를 활성화한다.

미국, 신변보장과 거액 포상금 제도로 내부고발 활성화

미국은 세계에서 내부고발을 가장 잘 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관련 제도가 잘 정비된 나라다. 미국의 내부고발 보호제도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포상금’이다. 미국은 내부고발자가 설령 직장을 잃더라도 평생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거액의 포상금을 지급한다.

미국이 내부고발 제도를 강화한 것은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금융회사들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가 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국제공인부정조사관협회(ACFE)에 따르면 기업 위법행위 적발의 약 42%가 제보에 의한 것이고, 제보자의 49%가 직원이었던 만큼 내부고발자 제도를 보완하는 게 미국 정부에게는 효율적인 기업 경영관리 방법으로 떠오른 것이다.

이에 미국은 금융위기 재발방지를 위한 법안인 ‘도드 프랭크법’에 비리제보제도 강화 조항을 넣었다. 이 법은 2012년 시행되면서 내부고발자 보호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에서 내부고발 사항을 직접 처리하는 곳은 증권거래위원회(SEC)다. SEC는 미국의 증권시장을 감독하는 독립기관으로 우리나라의 금융감독원과 유사하다. 거액의 포상제도를 가장 먼저 도입한 곳 역시 SEC다. SEC는 내부고발자의 고발로 기업이 100만달러 이상의 벌금을 내면 총액의 10~30%를 포상금으로 지급한다. 포상금은 내부고발자가 SEC 외부제보에 앞서 내부제보를 먼저 했을 경우 더 늘어날 수 있다. 기업의 위반사항이 중대할수록 고발자는 해당 내용의 증거를 모으기 어렵고, 그 과정에서 큰 위험도 따른다. 대신 기업의 심각한 잘못이 적발되면 지불하는 벌금이 큰 만큼 고발자가 받을 수 있는 포상금도 커진다. 즉 ‘고위험 고수익(High Risk High Return)’인 셈이다.

미국 정부는 내부고발자의 범위도 넓혔다. 미국은 기업의 이사, 임원, 법무팀, 회계팀, 내부감사팀 등도 내부고발자로 인정하고 있다. 조직의 구성원이 아닌 외부인사라도 고발이 가능하다. 회사가 고용한 외부 변호사도 비리제보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 이사나 임원 등 기업의 중요한 사항 등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아주 중대한 사항을 제외하고는 먼저 기업의 경영진에게 보고하고, 이후 120일이 지나도 아무런 조치가 없을 경우에 SEC에 제보할 수 있다. 회사의 중역이 포상금만을 노리는 것을 막는 장치다.

미국이 내부고발제도를 대폭 강화한 이후 고발자의 숫자는 급격하게 늘었다. SEC에 따르면 지난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 동안 2만2818명이 내부고발을 했다. 지역별로는 실리콘밸리가 있는 캘리포니아주가 2046건으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은 월스트리트가 있는 뉴욕이 950건으로 많았다. 이 중 500명 이상의 고발자가 총 2억6200만달러 이상을 보상으로 받았다. 지난 2013년 6월에는 허위 헷지펀드 로커스트 오프쇼어 매니지먼트(Locust Offshore Management LLC)를 고발한 3명에게 약 400만달러가 지급됐다. 같은 해 12월에는 내부고발자에게 1400만달러를 지급했다. 2014년에는 익명의 내부 고발자가 무려 3000만 달러 이상을 포상금으로 받았다. 2016년에도 미국의 거대 농업기업 몬산토의 분식회계를 고발한 내부고발자가 2200만달러의 포상금을 받았다.

우리나라 금융감독원이 지난 2008년부터 2017년까지 10년 동안 회계부정과 관련해 신고받은 게 총 10건, 지급한 포상금이 1억1360만원인 것과 비교하면 한국의 내부고발 성적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최근에는 ‘역대급’ 금액을 받은 이들이 나왔다. SEC는 지난 3월 19일(현지시각) 내부고발자의 제보에 의해 BoA메릴린치가 더 많은 이익을 내려고 고객의 투자금과 회사자금을 분리하지 않고 불법 운용한 사실을 적발했다. 이에 메릴린치는 4억1500만 달러의 벌금을 냈고, 이에 내부고발자 2명은 5000만달러, 1명은 3300만달러 총 8300만달러의 보상금을 받았다. 원화로 치면 1인당 300억원씩 총 900억원에 가까운 거금이다.

미국의 ‘포상금’ 제도를 뒷받침하는 것은 신원보장 시스템이다. SEC의 내부고발자 프로그램은 신원을 철저히 보장한다. 메릴린치의 부정을 제보해 거액의 포상금을 받은 3명 역시 현재 메릴린치에 그대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을 만큼 미 당국은 철저하게 고발자들의 신원을 보장한다. 심지어 내부고발자가 먼저 SEC 등의 외부기관이 아닌 기업의 내부 임원진에게 고발해도 그 신원을 보호한다. 메릴린치 사건의 내부고발자들을 변호한 미국 로펌인 ‘라바톤 슈샤로우(Labaton Sucharow)’의 조던 토머스는 변호사는 “내 고객이 없었다면 SEC는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 수 없었을 것”이라면서 “SEC가 익명성을 보장한 덕분에 고객들은 계속 평범한 삶을 누리면서 월스트리트에서 일할 수 있을 것이다. 메릴린치조차도 그들이 누구인지 알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공익신고법’, 제보자 부주의도 법으로 보호

유럽권 역시 내부고발자 제도가 제법 잘 정비돼 있다. 특히 영국의 ‘공익신고법’은 세계에서 가장 진전된 공익제보자 보호법으로 평가받고 있다. 1998년 제정 이후 관련법을 새롭게 마련하고 있는 국가들의 모범이 되기도 했다. 영국 ‘공익신고법’의 가장 큰 특징은 공익 제보자가 공익신고 대상으로 믿은 것에 대해 직접 진실한 것임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즉 제보자는 부주의가 있었더라도 스스로의 양심과 신의에 따라 신고했다면 법의 보호를 받도록 한다.

공익신고자 보호법의 범위는 민간영역을 포함해 거의 대부분의 분야에서 신고가 가능하다. 공익신고법의 주체인 근로자의 범위도 넓다. 근로자는 국가보안 종사자, 경찰공무원, 의회직원을 제외하면 외국인도 근로자의 범위에 속해 신고할 수 있다. 보호 내용도 광범위하다. 신고자는 범죄행위, 법적의무 위반, 오심, 개인의 건강·안전위험 등도 신고할 수 있다. 현재 발생하지 않았다 해도 발생 가능성이 있으면 신고 대상에 포함된다. 특히 영국은 지정된 규제기관 외의 제3의 기관, 심지어 언론사에 제보한 경우에도 국가가 나서서 보호한다.

그러나 신고의 근거가 합리적이어야 하고, 외부 기간에 알릴 만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언론사 제보는 보통 마땅한 신고처가 존재하지 않고 이미 다른 공공기관에 신고한 적 있지만, 처리되지 않은 상황 혹은 과실이 매우 중대해 공공기관보다 언론에 직접 보도할 필요가 있을 때 해야 한다. 신고자 보호 장치로는 부당해도에 대해 복직과 재고용을 명령할 수 있다. 내부신고를 금지하는 노사합의 역시 무효화된다.

프랑스는 ‘유럽인권협약’에 따라 직장 내에서 발생한 불법을 신고하는 모든 근로자는 보호를 받는다. 특히 2013년 제정된 ‘탈세 또는 경제·재무 관련 중대한 범죄 방지 법안’은 한정된 범위를 규정한 다른 법안들과는 달리 부정행위나 범죄로 그 범위를 확대했고, 민간과 공공 부문 모두를 포괄하고 있다.

호주는 연방 차원에서 독립적인 내부공익제보자 보호와 관련된 법률은 없지만 정부 내에서는 1999년 제정된 ‘공직법(Public Service Act)’이 있다. 신고 주체는 공무원만 해당되며 이 법에 따라 ‘공직위원회’가 법의 이행을 감시하고 공익제보자를 보호한다.

일본, 2019년 고발자 보호강화 법안 제출

아시아권에서는 내부고발과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나라가 일본이다. 지난 2000년 미쓰비시 자동차가 과거 10년간 제품 결함과 리콜을 조직적으로 은폐한 사실이 내부 직원의 폭로로 백일하에 드러났다. 그 결과 당시 일본 4위의 자동차업체 미쓰비시는 공익제보 직후 2000년 상반기에만 756억엔(약 7606억원)의 적자를 기록했고, 매출 급감으로 파산 직전까지 내몰렸다.

일본에서 공익제보자 보호법 논의가 활발해진 것은 2000년대 들어선 이후다. 일본은 2004년 ‘공익통보자 보호법’을 제정했다. 이후 3년 만인 2007년 한 해에만 4775건의 공익신고가 접수됐고 신고자 보호제도가 활성화됐다. 이 법은 종업원이 법령 위반 등 기업의 부정행위를 사내 컴플라이언스(준법경영) 창구나 회사가 지정한 변호사사무소에 통보하는 제도다.

일본법은 반드시 공익 제보자가 실명으로 고발하도록 하고 이전에 몸 담은 조직이나 회사의 비리는 신고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공익신고의 요건이 매우 엄격하고 신고자의 위험부담이 커 오히려 공익신고를 억제하는 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내부고발 제도 전문가인 고젠 고이치 변호사가 “지금 일본의 제도는 실효성이 부족한 데다 종업원은 보복 인사를 걱정해 통보를 망설인다”고 꼬집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내년 1월 정기국회에 내부 부정을 고발한 내부통보자(고발자)를 해고하는 등 보복성 조치를 한 기업에 행정조치나 형사처분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고발자 보호 강화안을 담은 법 개정을 마련해 제출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