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은영 대표.출처=한국엘러간

[이코노믹리뷰=김윤선 기자]김은영 한국엘러간 대표는 늘 주목받는 제약업계 경영인(CEO)이다. 1974년생인 그는 지난 2012년 다국적 제약사 노바티스(Novartis)의 싱가포르 지사장으로 선임됐을 당시 39살로 업계 최연소 여성 CEO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전문성과 남다른 추진력을 갖춘 그는 노바티스 싱가포르 지사장에 이어 2014년 한국BMS제약 대표이사, 2015년 한국엘러간 대표에 선임됐다. 그는 이에 멈추지 않고 한국엘러간 대표 취임 후 2년 만인 2017년 12월, 아시아 신흥 시장을 포함 총 9개국(한국·대만·태국·홍콩·베트남·싱가포르·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필리핀) 총괄 대표 자리에 올랐다.

어려운 외부 환경에서도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5개국에서 두 자릿수의 성장을 이끌고 가족친화적 직원 경영으로 우수한 기업 문화를 정착시켰다는 게 회사 측이 파격의 인사를 단행한 이유였다.

제약사 오너의 2세와 같은 ‘금수저’도 아니고 남성도 아닌 그가 ‘남성 텃밭’인 영업 분야를 거쳐 여성으로서 유례없는 초고속 승진을 이뤄낸 저력은 무엇일까. 지난 3월 12일 서울시 강남구 소재 한국엘러간 본사에서 김은영 대표를 만나 한국 제약업계의 유리천장에 대한 김 대표의 생각과 최연소 여성 CEO가 된 비결을 들어봤다.

 

남성뿐인 영업직 진출한 여성 영업사원 ‘1세대’

김 대표는 이화여대 약대를 졸업하고 2년간 병원 약사로 근무했다. 이후 제약사에 들어간 그는 업무 중에서도 남성들이 많이 근무한다는 영업직으로 몸을 담았다. 제약업계에 발을 들인 여성 영업인 1세대로 시작한 것이다.

김 대표는 안정된 직업인 약사를 그만두고 제약사 영업사원으로 일하게 된 계기로 ‘전문성에 대한 동경심’을 꼽았다. 김 대표는 “어느 날 병원에 한 다국적 제약사의 영업사원이 와 제품 설명회를 하는데, 전문가답게 차려 입고 슬라이드를 보여주며 약사인 나보다 더 많이 약에 대한 지식을 갖고 설명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처음 해본 영업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남성이 가득한 영업직 내부의 문화를 여성인 김 대표는 전혀 알지 못했다. 설상가상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여성 선배도 전무했다.

김 대표는 “처음 영업사원을 했을 때 너무 힘들었다”면서 “특히 의사 선생님들을 찾아가면 여자 영업사원이, 그것도 젊은 여성이 오니까 어떻게 대해야 할지 어색해하는 게 눈에 보이니까 나도 어색하고, 서로 어색했다”고 회고했다.

‘전문성’만이 승부처라고 믿은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약에 대한 정보를 습득했다. 결과는 성공이었을까? 답은 ‘아니다’에 가까웠다. 그는 영업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라는 것을 몰랐다.

김 대표는 “영업의 기본은 고객의 필요를 파악하는 것인데 당시의 나는 본인의 필요만 알았다. 처음에 의사들을 마주하면 때 그저 배운 대로 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는 게 아니라, 앉자마자 논문을 꺼내고 ‘안녕하십니까. 오늘 제품은…’ 하면서 설명을 했다. 설명 끝나면 볼일 다 봤으니까 나오고, 그런데 실적은 안 좋고. 이런 것이 반복이 되다 보니까 더욱 힘들었다”고 당시 겪은 고충을 털어놨다.

김 대표는 이런 고충에 대해 남자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해도 공감을 얻지 못할 뿐이었다. 그래도 3년을 인내하며 노력한 김 대표는 당시 약에 대한 지식 시험에서는 누구도 이길 사람이 없을 정도로 해박한 전문가로 변신했다. 김 대표는 마케팅 등 여러 부서를 거치면서 잔뼈가 굵은 전문가로 성장했다.

 

“아름다움, 내면의 자신감에서 우러나는 것”

한국 사회에서 ‘아름다움’이란 단순히 사전의 의미만을 갖지 않는다. 특히 여성에게 아름다움이란 때로 사회가 억지로 강요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때가 많다.

아름다움은 크게 내부의 아름다움과 외부의 아름다움으로 나뉜다. 한국인들이 관심이 많은 것은 단연 ‘외부의 아름다움’이다. 한국의 성형산업의 발전은 이런 외관의 아름다움에 대한 국민의 욕망이 컸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실제로 엘러간이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16개국 국가의 여성을 대상으로 아름다움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내부의 아름다움보다 외형의 아름다움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여성들의 비율은 한국이 다른 국가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 미용 전문 제약사를 총괄하는 김 대표에게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엘러간은 보톡스와 필러와 같은 의료 미용 부문이 중심이 되는 제약사다. 제약사 대표에게는 자사의 제품이 많이 팔리는 게 좋다. 그렇지만 여성에게 특히 엄격한 잣대가 적용되는 한국 사회에서는 무작정 미용 제품을 권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김 대표는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쫓는 속사정을 잘 들여다봐야 한다”면서 “미용 의학은 단순한 시술이 아니라 인간 내부의 심리를 파고드는 과학”이라는 의미심장한 분석을 내놓았다. 그는 “결국 ‘왜 하느냐’가 문제가 된다”면서 “본인 스스로 사회 활동을 할 때 자신감이 있고 내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보톡스와 같은 시술은 받지 않아도 된다.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본인 스스로에 대해 얼마나 열정이 있고 자신감이 있는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외적인 아름다움에 열광하는가. 김은영 대표는 이에 대해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충분한 시간이 현대에는 없기 때문”이라면서 “빠르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기 위해서 외모가 더 관심사가 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일 잘하고’ 싶어서… 회사에서 잠들고 씻기를 반복

김 대표는 소문난 ‘달변가’다. 그는 인터뷰 때 어떤 질문을 던져도 당황하지 않고 본인의 소신을 정확하게 밝혔으며 데이터를 분석해 이야기하는 데 능숙하다. 모두 평사원 시절부터 열심히 한 결과다.

김 대표는 노력의 결실을 잘 안다. 평사원 시절에는 집에 가는 시간도 아까워 회사에서 잠을 자고 회사 회장실에서 머리를 감고 다시 일을 할 정도로 누구보다 열심이었다.

김 대표는 “당시에는 워낙에 일도 많았지만 개인의 욕심도 컸다”면서 “마치 오늘 이 일을 다 하지 않으면 세상이 끝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98%를 노력해서 얻는 결과물과 102%를 노력해서 얻는 결과물은 천지차이”라면서 “다른 사람들이 몰라주더라도 나 스스로 나의 결과물에 만족할 수준으로 일을 한다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제약업계 대표로서 자부심 느낀 계기

이 때문에 김은영 대표의 라이벌은 동료 남성들이 아닌 자기 자신이었다. 그는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나는 이 일을 참 좋아하고 또 보람을 느낀다는 것”이라면서 “어느 순간 내가 하는 일이 오늘 어떤 환자를 살렸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일하니까 마음가짐부터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부친의 입원은 김 대표가 더욱 자기 일에 매진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김 대표는 “몇 년 전에 아버지가 암으로 입원하시고 처음으로 보호자로서 무기력하게 병실에 앉아 있는데, 간절하니까 임상시험하는 약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이후 내가 제약사에서 일하는 것이 참 감사하게 느껴졌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 때문에 우리 영업직원들에게 늘 강조하는 것이 고객(의사)을 만나라는 것”이라면서 “직원들이 고객에게 우리 제품의 새로운 의학지식을 전달해서 환자를 돕는 데 기여하는 것이 실적보다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여성들, 출산과 육아로 일 그만두는 것 보면 안타까워”

줄곧 다국적 제약사에서 근무한 김 대표는 유리천장을 느껴보지 못했다고 한다. 다국적 제약사는 국내 제약사에 비해 여성 직원 비율이 높다. 국내 제약사는 중견이라도 여성 임원이 한 명도 없는 게 부지기수지만, 다국적 제약사는 여성이 입사해 높은 자리에까지 오르는 것이 드문 일이 아니다.

김 대표는 주변에서 여성 동료나 친구들이 결혼과 육아로 일을 그만두는 것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컸다. 그는 “원하지 않더라도 결혼과 육아로 공백을 가지는 것을 주변에서 볼 때가 있다”고 토로했다.

 

▲ 김은영 대표.출처=한국엘러간

후배들의 ‘멘토’ 김 대표, “기회 잡으려면 ‘외국어’는 필수”

제약업계에 발을 들여놓을 때만 해도 조언을 구할 선배가 없어 힘든 시간을 보낸 김 대표는 이제 본인이 후배들의 멘토가 됐다.

한 엘러간 관계자는 “김은영 대표는 후배들을 혼낼 때는 무섭게 혼내지만 칭찬할 때도 화끈하게 칭찬한다. 또한 여러 부서의 일을 경험했기 때문에 누구보다 직원들의 업무를 잘 이해한다”면서 “워낙 당당한 아우라가 넘치는 분이라 이를 멋있다고 생각한 후배들이 김 대표를 멘토로 삼기도 한다”고 전했다.

사원에서 대표까지, 초고속 승진을 이뤄낸 김 대표는 생각보다 많은 기회가 어린 학생들에게 열려 있다고 강조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의 ‘전문성’을 갖추되 ‘외국어’는 필수로 배우라고 김 대표는 조언했다.

김 대표는 “기회는 많은데도 이 기회를 잡기 힘든 이유는 ‘외국어를 못 해서’일 때가 많았다”면서 “외국어는 필수로 배우되 꼭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업계를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라는 말도 덧붙였다. 김 대표는 “10년 전에는 당시 내가 결정한 것이 내 인생을 다 바꿀 것처럼 떨었는데 그렇지 않았다”면서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왜 그때 더 대담한 결정을 내리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담대한 결정이란 인생에 있어서 다양한 배움의 기회를 갖는 것이다. 이것이 쌓이고 쌓이면 인생의 큰 플러스 요인이 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