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 구직자도 경력자도 모두들 각자가 가진 여러 조건(스펙)을 뽐내기에 바빴다. 어느 대학을 나왔고, 어느 기업에 있었으며, 그곳에서 어떤 업적을 이루었고, 어느 위치까지 올라섰으며, 그래서 어느 정도의 실력이다… 라고 말이다. 물론 이 모든 조건이 사회적 기준보다 높은 수준이라면 기본 이상의 실력을 모두가 보장해주었다. 적어도 그들만의 리그 또는 조직 내에서 말이다.

하지만 산업과 산업 간의 융·복합 트렌드 및 기업의 다변화 전략 그리고 여러 시장의 동시 진출을 위한 브랜드 등이 나오면서 채용시장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수많은 업계가 서로 고객의 관점에서 중첩되기 시작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인력 이동의 모습이 나타난 것이다. 이른바 조직 밖을 떠나서 새로운 조직으로 가는 데, 영역을 뛰어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이전에는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굳이 그럴 이유가 없었다. 평생 고용과 같은 대우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 또는 시장의 변화가 크지 않았고, 자신의 일자리가 불안하다고 느끼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장의 전에 없던 빠른 변화의 바람은 각 산업과 기업들의 속도에 맞춘 변화로 이어지고, 결국 인력 구조 및 원하는 인재상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기업들은 스펙보다 직무전문성을 중요한 요소로 꼽기 시작했다. 진짜 실력을 검증하기 시작했고, 이를 위해 전에 없던 방법을 사용하거나 최대한 경력직을 채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는 이미 여러 해 동안 지원자의 스펙(조건)에 의존한 채용 방식에 나름의 농락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좋은 스펙을 가지고 있어 뽑았더니, 더 좋은 조건을 가진 직장으로 옮기거나, 실제 실력이 그에 못 미치는 이들이 많았다. 따라서 반복되는 채용을 통한 피로감과 비용을 줄이기 위해 경력직을 선호하게 된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들은 신입에게도 나름의 경력을 요구했다. 미비한 인턴 경험이라도 요구했으며, 이는 당장 채용해도 현업 선배들과 어깨를 견주며 실전에서 일할 수 있는 이들을 원했기 때문이다. 이해는 된다. 그동안 스펙 좋은 친구들이 공부만 해서 일 머리가 없거나, 혼자 하는 것에 익숙한 나머지 공동 작업에 필요한 대인민감도가 현저히 떨어지거나, 이기적인 태도를 보였기 때문에 보다 종합적인 검증이 필요했다. 따라서 일부 기업에서는 얼마나 사람들과 위화감 없이 어울리고 잘 적응하는지를 오래도록 지켜보는 식의 정규직 전환 인턴 채용이 나타나기도 했다.

분명 이전과 유사한 고스펙을 가졌다고 해도, 지금은 과거와는 비슷한 평가를 받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몇 년 전만 해도 나름대로 이름 있는 대학을 나왔다고 하면 그만한 대우를 기대할 수 있었고 선배들이 끌어주려는 문화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조차도 없다. 신입과 경력 동일하게 오로지 실력에 의해 평가받고, 그걸 증명할 수 있는 이들을 선호한다.

이전에 쌓은 무의미한 자격증 및 관련 인증 또는 수료 등의 스펙도 대우받기 어렵게 됐다. 물론 일부의 가능성은 충분히 담보할 수 있지만, 이전 조직의 성과 또는 개인의 상태를 앞으로의 조직에서 재현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판단이 지배적이었다. 채용 과정에서 실력 평가의 기준이 각자의 평판 조회(레퍼런스 콜) 또는 이전 직장 또는 사회경험이 담긴 포트폴리오 중심으로 바뀌고 있기도 하다. 그것도 모자라 각종 SNS 및 블로그 등 다양한 채널을 활용해 지원자들이 직접 운영하는 채널을 모니터링하면서 더 좋은 인재를 영입하기 위한 투자를 한다.

어떻게 보면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조직은 ‘좋은 인재’로 채우기를 바란다. 조직의 수준이 곧 인재 풀의 성격에 따라 나뉘고, 좋은 인재가 더 좋은 인재를 끌어온다는 가정하에 학력 및 이전 직장 경력도 모자라 각종 발자취까지 모두 검색해 실력을 평가하는 방식으로 전환되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검증은 여전히 어렵다. 그저 담당자 또는 면접관의 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일전에 필자가 인사 관련 컨설팅을 하면서 함께 진행한 면접관 교육에 ‘관상’을 본다는 면접관 후보자를 본 적이 있다. 물론 참고 삼아 볼 수는 있다. 하지만 얼마나 공정한 잣대를 들이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 또한 모든 문제는 ‘조직’이 갖고 있다. 조직이 갖춘 시스템 및 구조가 충분히 만들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비즈니스 완성도가 충분히 만들어지지 않은 조직일수록 내부 인사 정책이나 전략이 만들어진 적이 없거나, 설사 있다고 해도 대부분 대표의 머릿속에만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표가 인사담당자와 함께 머리를 쥐어짜서 사람을 뽑지만, 모두가 동일한 기준과 수준으로 바라보지 않기 때문에 평가조차 어려워 각종 미신까지 동원하는 것이다.

작거나 이제 막 시작한 조직이라면 이해할 수 있다. 성장 또는 먹고 살기도 급급한데 직무명세서 또는 비즈니스와 연결된 중요 직무에 대해 충분히 정리된 문서를 갖고 있기 어렵다. 관련 노하우는 사람이 갖고 있는 상황이고, 이를 문서화해 정착시키는 것보다는 더 중요한 일이 산재해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기준과 수준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최소한의 평가 기준이나 필요 스킬 정도, 이를 평가하기 위한 방법 등을 서류상의 스펙보다 다른 방법으로 측정해 구직자와 채용 기업 모두가 인정할 만한 방식으로 전환되기를 바란다.

또한 덧붙이자면, 채용은 충분히 검증된 직무상의 요구되는 역량을 검증하는 과정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 채용하려는 이들에게 요구되는 역량이 정리되어 있거나, 실제 있다고 해도 매년 갱신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조직을 본 적이 없으며, 필자조차도 조직에 있을 때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자리 주인이 바뀌면, 이전 담당자가 고스란히 노하우를 가지고 나가 조직이 흔들리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됐다.

따라서 직무전문성은 비즈니스상에 충분한 완성도를 만들어 놓은 다음, 직접 그 완성도를 높여가는 작업을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던 이들이 직접 기준을 세워야 한다. 이를 인사 및 채용 업무를 하는 이들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만들어 채용 업무를 하는 데 있어 최소한의 기준을 전달하고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그래야만 인간 존중 차원에서 채용이 실행 가능하다.

또한 신입한테는 다른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이직스쿨에서는 개인이 가진 역량을 크게 세 단계로 분류한다. 전문성·교양·상식이다. 당연히 신입에게는 업계 또는 비즈니스에서 기본적으로 통용될 만한 교양 또는 상식 수준을 확인하는 작업이 먼저다. 그 다음이 각자가 가진 나름의 전문성을 평가하는 기준을 측정 가능한 방법에 의해 평가하는 것이다. 신입에게 실무자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전문성을 요구하는 것은 다소 억지스럽다. 오히려 그들이 가진 철학과 생각 및 태도 등이 얼마나 기업 문화에 어울리는지 않는지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