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미국과 중국이 초유의 관세폭탄까지 언급하며 으르렁거렸으나, 최근 빠르게 냉정을 되찾으며 협상을 통한 문제해결로 선회하는 분위기다. 다만 이 과정에서 중국이 대만과 한국의 반도체를 구입하지 않고 미국의 반도체를 구입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두 나라의 무역전쟁 불똥이 반도체 코리아로 번지는 대목은 부담이다.

단기적으로 보면 큰 변화는 없겠지만 메모리 반도체 수퍼 사이클(장기호황)이 끝나면 국내 반도체 업계에 나름의 악영향을 미칠 수 있고, 일부 팹리스 업체들은 타격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소강상태에 들어가며 국내 반도체 업계가 유탄을 맞을 전망이다. 출처=픽사베이

소강상태 접어든 G2무역전쟁

끝을 향해 달리는 것으로 보이던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잠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관세폭탄 카드를 꺼내 중국을 압박하던 미국도 협상을 통한 문제해결을 거론하고 있으며, 중국도 이에 화답하며 나름의 접점을 찾기 시작했다.

미국 상무부를 중심으로 연일 화해무드를 조성하는 발언이 나오는 한편, 중국도 “무역전쟁에 승리는 없다”며 손을 내밀고 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에 따르면 26일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발전 고위급 포럼에 참석한 리커창 총리는 “중국과 미국은 실무적이고 이성적인 태도로 담판과 협상을 통해 균형을 촉진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두 나라의 무역전쟁이 다시 확전될 가능성은 여전하지만, 지금은 잠정적인 소강상태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그러나 두 나라의 화해무드가 이어지며 중국이 한국과 대만에 의존하던 반도체 수입을 미국으로 바꾸겠다는 말이 나와 눈길을 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26일(현지시간) “미국 정부가 중국 정부에 서신을 보내 반도체 구입선을 한국과 대만, 일본이 아닌 미국 기업으로 일부 이전하라고 요구했으며, 중국이 이를 수락했다”고 보도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중국이 미국의 제안에 따를 경우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 중 3750억달러가 줄어든다고 보도했다.

한국은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해 2월 국내 ICT 수출액은 157억3000만달러며, 여기에서 반도체 수출액은 91억5000만달러다. 반도체 수입의 큰 손인 중국이 한국산 반도체 구입을 중단하거나 줄이고, 미국산 반도체 구입을 늘린다면 타격을 피할 수 없다.

美·中 물밑협상있어도...."韓, 반도체 타격 제한적"

그러나 단기적으로 보면 타격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중 D램과 낸드플래시에서 시장 점유율 1위, SK하이닉스는 D램이 2위고 낸드플래시가 5위다”면서 “중국이 한국 반도체를 외면하고 당장 미국산 반도체로 수입을 대체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지적했다. 메모리 반도체를 장악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단기간에 외면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중국은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서는 강세를 보이지만, 메모리 반도체 인프라는 부족한 편이다. 반도체를 ‘산업의 쌀’로 규정하고 공격적인 지원정책을 펼치고 있으나 미세공정 등 기술 격차가 크기 때문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를 구입할 수 밖에 없다는 말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마이크론 등이 일부 물량을 책임질 수 있겠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물량을 소화할 정도는 아니다”면서 “시스템 반도체 물량을 미국에서 중국으로 가져갈 수 있겠지만 아직 국내 반도체 업계는 메모리 반도체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여파가 미비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서버용 D램과 같은 제품은 최근 ‘없어서 못판다’는 말이 나오는 지경이다.

그러나 메모리 반도체 수퍼 사이클이 종료되고 시장이 안정을 찾을 경우,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밀월이 국내 반도체 업계에도 타격이 될 수 있다. 또 일부 팹리스 업체들이 타격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시스템 반도체 인프라 전면을 가다듬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당장 피해는 제한적이지만, 최소한의 대비책은 마련하자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최근 ‘특허괴물’들이 국내 반도체 업계에 맹공을 퍼붓는 만큼, 이와 관련된 로드맵까지 대비돼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도현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의 반도체 시장 점유율을 고려하면 실제 중국이 한국산 반도체 비중을 줄이기 어렵다”면서 “반도체는 원자재에 가까운 제품이기 때문에, 당장의 타격은 제한적이지만 근본적인 대비책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