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윤선 기자] 얼마 전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피 한 방울로 암을 진단하는 방법을 개발했다는 뉴스로 언론이 떠들썩했다. 아직 상용화 단계까지 간 것은 아니지만 암인지를 간단하게 진단할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가 주목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몰랐다. 이미 몇 년 전부터 국내에서 8가지 암을 피로 진단하는 방법을 상용화한 업체가 있다는 것을.

바로 서울대의대 병리학 교실 교수로 안정적인 생활을 일구고 있던 김철우 대표가 ‘친구 따라 강남’ 가듯 동료들의 영향으로 지난 2001년 설립한 바이오인프라생명과학의 얘기다.

바이오인프라생명과학 김철우 대표

지난달 서울시 종로구 바이오인프라생명과학 본사에서 만난 김 대표는 인상도 말투도 사업가라기보다는 교수에 가까웠다. 김 대표는 “어릴 때부터 차분했고 부모님 속 한 번 썩이지 않는 모범생이었기 때문에 솔직히 창업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고 말한다.

창업 경험도 없고, 의사 집안에서 자란 그가 창업을 하게 된 계기와 첫 번째 창업부터 성공한 비결은 무엇일까. 그에게 회사를 창업하게 된 계기와 당시의 어려움, 향후 목표에 대해 들어봤다.

90% 이상 정확도 가진 암 진단 서비스 제공

바이오인프라생명과학은 8가지 암(폐암, 간암, 위암, 대장암, 췌장암, 전립선암, 유방암, 난소암)을 혈액으로 진단하는 업체로 대표적인 서비스로 ‘아이파인더 스마트 암검사’를 하는 생명과학기업이다. 회사의 암 검사 서비스는 매출액 중 대부분을 차지하며 최근 입소문을 타면서 받고자 하는 사람이 늘고 있는 추세다.

이 서비스는 환자의 혈액에서 발견할 수 있는 다양한 바이오마커(종양표지자)를 검사해 환자가 현재 암이 걸렸는지에 대한 확률을 보여준다. 내시경이나 방사능이 나오는 기기로 검사를 받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상당히 간편하고 고통도 적은 것이 장점이다. 반면 바이오인프라생명과학에 따르면 이 검사의 정확도는 평균 90%를 웃돈다.

특히 암을 진단할 때 고려하는 혈액 안 바이오마커는 굉장히 다양한데 이를 더 많이 고려할 수록 암 진단의 정확도는 높아진다. 아이파인더 스마트 암 검사는 병리과 교수 출신 김철우 대표가 교수 재직 당시 30년 이상 연구해 선정한 19가지의 단백 바이오마커를 종합적으로 분석한다.

美 진단업체 대표도 관심 갖고 본사 직접 방문

미국에서도 혈액으로 암을 진단하는 업체는 있지만 바이오인프라생명과학처럼 8가지의 다양한 암종에 대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는 없다. 때문에 바이오인프라생명과학의 서비스는 해외 업체들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얼마 전에는 미국 혈액진단서비스 제공 업체의 대표가 김 대표를 직접 방문해 바이오인프라생명과학의 서비스를 미국에 제공하고 싶다는 뜻을 전달했다.

김 대표는 “약 3년 전만 해도 해외 의료계에 우리의 상품을 소개하면 잘 믿어주지 않았는데 이제는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처럼 유명한 곳에서 비슷한 기술을 개발해 학회지에 실으니 저절로 상품이 홍보가 되고 있다”면서 “이틀 전에도 미국에 우리와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단일암(폐암)에 대한 진단만 하는 투웬티투웬티 진시스템스(20/20 GeneSystems)라는 회사의 대표가 우리 서비스에 관심을 보이며 직접 찾아왔다”고 설명했다.

8가지 암 진단서비스 상용화한 곳 없어, 해외 진출 ‘파란불’

김 대표는 회사가 제공하는 암 검사 서비스의 해외 진출 가능성이 높고 미래도 밝다고 확신한다. 미국과 같은 의료기술 선진국에서도 아직까지 바이오인프라생명과학처럼 다양한 암종에 대한 진단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은 없고 다양한 바이오마커로 연구개발을 끝마친 곳도 상용화까진 5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개발한 캔서식(CancerSeek)이 대상으로 하는 암은 8가지로 우리와 매우 흡사하지만 이 진단법은 향후 5년간 임상시험을 거쳐야하기 때문에 상용화는 멀었다”면서 “우리는 벌써 서비스를 개발해 2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우리의 진단 서비스를 받았기 때문에 해외에 쉽게 진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대한민국 0.1%, 서울의대 진학한 ‘모범생’이 창업에 뛰어든 이유

이렇게 해외 업체에서도 관심을 가질 정도로 눈에 띄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을 만든 김 대표지만 정작 사업가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김 대표의 아버지는 의사였고 세 자녀 중 두 명도 그를 따라 의사의 길을 걷고 있다. '의사 집안에 의사 난다’는 전형적인 사례가 바로 그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의 속 한 번 썩이지 않고 충실히 공부에만 매진한 ‘모범생’ 김 대표는 대한민국 0,1%의 영재들이 들어가는 서울대의대에 진학했고, 그 학생들 중에서도 뛰어난 두뇌를 가진 자들만 될 수 있다는 교수의 길을 걸어왔다. 크게 어려움도 부침도 없는 삶이었다. 교수의 명예도 얻고 노후도 보장된 안정된 인생이 이어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인생 반전의 순간은 알 수 없는 때에 찾아왔다. 당시 친하게 지낸 생물학, 생화학 등 다양한 분야의 교수들이 바이오마커를 발굴하고 여기에 통계 분석 방법을 접목해 진단에 쓴다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냈다. 창업에 대한 욕구가 별로 없었던 대표는 “어쩌다보니 친구따라 강남을 가게 된 것이 창업의 시작이었다”고 회고했다.

교수에서 사업가로 ‘멘땅에 헤딩’, 초기 투자 유치 어려움 겪어

그렇게 막연한 목표를 갖고 시작한 사업이기에 순탄하지 않았다. 주변의 반응도 시큰둥했다. 김 대표는 “내가 처음 창업을 한다고 하니까 주변 사람들이 ‘아니, 어떻게 너 같은 조용한 범생이가 사업을 하느냐’고 놀라워했다”고 말했다.

특히 투자 유치를 해본 경험이 없는 교수 출신인 그에겐 투자자들을 설득하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었다. 김 대표는 “전문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투자 유치가 쉬울 줄 알았는데 막상 가서보니 아니었다”면서 “오히려 내가 교수를 했다보니까 투자자들이 사업이 어려워지거나 하면 안정적인 교수직으로 다시 돌아갈까봐 투자하기를 꺼려하고 나의 진심을 의심했다”고 창업 초기 투자 유치 과정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사업가, 기존 기술 '융합'해 '새로운' 제품 만드는 사람”

그런 그가 처음으로 창업한 회사를 10년 넘게 성공적으로 이끈 것은 ‘끈기’와 ‘여러 가지를 적절하게 융합하는 능력’의 덕이다. 

공부를 좋아한 아버지를 닮은 그는 어릴 때부터 끈기가 남달랐다. 병리과 교수로 있으며 다양한 바이오마커를 발굴한 저력도 그의 인내심이었다. 그에게 창업을 권유했던 동료들은 2~3년 후 모두 본업으로 돌아갔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여러 가지 기술을 잘 접목하는 능력도 그의 첫 창업을 성공시킨 비결이다. 바이오인프라생명과학의 암 진단 서비스는 병리학과 빅데이터 통계 분석 기법이 조화를 이뤄 탄생한 제품이다. 김 대표는 세계적인 기업이 된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예를 들어 통합과 융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나는 창의성보다는 조합하고 통합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면서 “스티브 잡스도 여러 기술을 통합해 세계적인 기업을 이끌었다. 여러 기술자들이 기술은 만들 수 있어도 실제로 어떤 콘셉트를 가진 제품을 만드는 것은 스티브 잡스였다”고 말했다.

“교수 특유의 ‘완벽주의’ 버려야 사업 성공”

최근 들어 의대 출신 교수들이 창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상용화한 제품을 만들 확률은 몹시 낮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김 대표는 한 가지 원인으로 교수들 특유의 ‘완벽에 대한 집착’을 꼽았다.

김철우 대표는 “교수들이 사업을 하다보면 맹점이 기술을 끝까지 완성시킨 후 선보이려고 하는 특유의 ‘오기’가 있다”면서 “100% 완성이 안 되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사업은 좀 다르다. 처음에는 80% 완성된 제품을 내놓고 점점 발전시키면 된다”고 조언했다.

올해 기술특례상장 목표, 불우이웃 위한 ‘나눔’도 지속

어느 덧 업력 18년, 직원 수 37명의 기업이 된 바이오인프라생명과학의 올해는 특히 중요하다. 회사는 올해 기술특례상장을 통해 유가증권시장에 진입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속적인 나눔을 실천하는 것도 회사의 방침이다. 바이오인프라생명과학은 현재 일부 장애인과 불우이웃 등 어려운 사람들에게 자사의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 중이다. 이 같은 공을 인정받아 지난해 ‘가족친화인증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김 대표는 “사실 우리 서비스가 필요한 분들이 장애인들이나 소외된 분들”이라면서 “특히 장애인들은 대형병원에 검진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더라도 기기를 활용해 검사하기 어려운 때가 많다”고 어려운 이웃에게 서비스를 무료 제공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김 대표는 회사의 장기적인 모습도 구상 중이다. 그는 “우리 회사는 다른 회사처럼 어떤 분야로 단정하기 어려운 회사를 만들고 싶다”면서 “진단 회사일 수도 있고 의료기기 회사일 수도, 클리닉일 수도 있고 아이티 기업의 요소도 들어간, 모든 것을 아우르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선도하는 회사’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