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견다희 기자] 청소기를 빌리는 사람, 타이어를 빌리는 사람, 스타일러를 빌리는 사람. 최근 구매보다는 매달 일정 금액을 내고 빌려 쓰는 ‘렌탈’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사서 소유하는 것이 당연한 시대가 빌려 쓰는 시대로 급변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기업들이 렌탈 시장에 뛰어들면서 렌탈 제품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늘어났다. 심지어 ‘인생 빼고 다 빌린다’라는 말이 나돌 만큼 시장은 급성장하고 있다.

▲ 렌털시장 변화추이와 전망. 출처= KT경제연구소

KT경제경영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렌탈 시장 규모는 지난 2011년 19조5000억원에서 지난해 28조7000억원으로 6년 사이에 무려 47.1%나 커졌다. 3년 뒤인 2020년에는 두 배 이상인 40조1000억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KT경제연구소는 내다봤다. 1인 가구 증가, 고령화 가속, 구매보다는 경험을 중시하는 소비 패턴의 변화, 가심비 중시 등의 영향으로 렌탈 시장은 무한 성장을 거듭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으면서 대기업들까지 가세하는 형국이다. 기업들이 불꽃 튀는 경쟁을 하고 있지만 소비자들은 저렴한 비용으로 편익을 누리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혼수용품을 마련하느라 수천만원을 써야 하는 신혼부부들의 부담이 줄어드는 것도 렌탈시대가 준 새로운 혜택이다. 또 제조업체는 대량 생산을 소화할 수 있는 새로운 판로 확보가 가능해져 유통산업에 새로운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렌탈시장 성장, 1인 가구·고령화가 원동력

렌탈시장의 성장은 1인 가구와 노년층 증가와 떼어서 생각할 수는 없다.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만큼 급속도로 진행되는 우리 사회의 1인 가구 증가와 고령화에 IoT(사물인터넷) 기술을 접목해 신시장을 개척한 것이다.

통계청에 자료에 따르면, 1인 가구는 지난해 기준으로 550만가구로 전체 가구의 28.5%를 차지한다. 2000년 1인 가구수가 222만명(15.54%)인 것과 비교하면 2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중은 전체 인구의 13.8%인 707만6000명으로 나타났다. 2000년 339만명, 2010년 536만명에서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다.

▲ 1인 가구와 고령인구 추이. 출처= 통계청

종합 렌탈회사인 ‘SK매직’은 지난 2016년 IoT 기술을 렌트하는 가스레인지에 처음 적용했다. 3일에서 10일 중 본인이 설정한 기간 안에 가스레인지 사용이 없으면 지정한 전화번호로 알림 문자가 가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부모와 따로 사는 40대, 50대 자녀들이 많이 신청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제품은 소비자 가격이 42만9000원이지만 월 1만원에서 2만원대의 비용만 내면 이용이 가능하다.

SK매직은 지난해 정수기에도 IoT 기술을 적용했다. 이 기술은 물 사용량을 측정해 필터 교체시기를 알려준다. 통상 4인 가구는 넉 달에 한 번 필터를 교체해야 한다. 그러나 1인 가구는 그보다 물 사용량이 적어 정수기 필터 수명이 훨씬 길다. SK매직은 필터 수명이 더 긴 1인 가구에게 업계 최초로 렌탈료 할인을 해주고 있다. 이 제품은 ‘슈퍼 냉온정수기 시리즈’로 1만원부터 3만원대까지 제품이 다양하며, 계약기간 동안 총 네 번 월렌탈료를 면제받을 수 있다.

SK매직 관계자는 정수기 외에도 1인 가구에 인기가 많은 품목으로 ‘매직 솔로형 안마의자’를 꼽았다. SK매직이 빌려주고 있는 안마의자는 1인용으로 바퀴가 달려 있어 이동이 편리하다. 또 평소에는 소파로 사용할 수도 있다. 집이 좁은 1인 가구에서 많이 사용한다고 한다.

SK매직 관계자는 “혼자 사는데 수십만원 또는 백만원이 훌쩍 넘는 안마의자를 사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라면서 “매달 4만원대로 190만원이 넘는 고급 안마의자를 사용할 수 있어 인기가 많다”고 설명했다.

▲ SK매직의 IoT 기술을 접목한 가스레인지. 출처= SK매직

570만명의 고객을 확보해 렌탈 업계 선도 기업 ‘코웨이’도 정수기와 공기청정기 제품에 IoT 기술을 접목해 노년층을 겨냥해 성공을 거두고 있는 기업이다. 코웨이는 지난해부터 ‘실버 케어 서비스’를 시작했다.

코웨이의 ‘IoCare 정수기’ 제품들은 48시간 동안 사용하지 않으면 지정된 휴대폰 번호로 알림문자를 보내준다. 또 거동이 불편해 주로 혼자 집에 있는 노인들을 위해 자녀들이 집안 공기를 관리할 수 있도록 ‘Iocare 공기청정기’ 스마트폰 앱(응용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자녀들은 집안의 생활가스, 초미세먼지 등을 모니터링할 수 있고 집 밖에서도 집 안의 공기질을 관리할 수 있다. IoCare 정수기 제품은 3만~5만원대, IoCare 공기청정기는 3만~4만원에 이용 가능하다.

코웨이 관계자는 “나이가 많거나 지병을 앓다 보면 관리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다”면서 “가정을 방문하는 코디들이 노년층 고객이 이상이 생기면 자녀들이 바로 알 수 있어야 하는데 제품에 응용해 보면 어떻느냐는 제안에서 시작했다”고 전했다.

코웨이는 지난 2011년 침대 매트리스 렌탈 사업을 확장했다. 코웨이는 매트리스를 빌려주고 월 1만~4만원대에 주기적인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코웨이는 매트리스사업 5년 만인 2015년 매출 1689억원을 기록하며 침대업계 2위인 시몬스의 매출(1541억원)을 넘어섰다. 지난해에는 약 1700억원을 벌어들이며 1864억을 기록한 업계 에이스침대를 바짝 쫓고 있다.

매트리스 렌탈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이두열(33세) 씨는 “혼자 살고 있고 전셋집이라 자주 이사를 하는데 매번 매트리스가 짐이었다”면서 “렌탈업체 직원이 주기로 와서 관리·교체해줘 위생적으로 사용할 수 있고 이사할 때도 훨씬 수월해졌다”고 말했다.

 

LG전자 등 대기업 가세로 시장 급성장

30대 직장인 황은주(31세) 씨는 매주 고민에 고민을 한다. 결혼 시즌이어서 주말 결혼식 일정이 빼곡하다. 그런데 매번 직장 동료, 동창들과 마주치다 보니 같은 옷을 입을 수도 없고 살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걱정인 것이다. 그러다 얼마 전 직장 동료에게서 월 10만원 안팎으로 내면 옷과 가방 등 고가의 명품 브랜드 제품을 대여할 수 있는 서비스를 소개받았다.

황 씨의 경우는 몇몇 가전제품에만 한정된 렌탈 수요가 다양한 제품군으로 확산되고 있는 사례다. 수요가 커지면서 대기업과 백화점들이 앞다퉈 가세하며 시장 성장에 가속이 붙고 있다.

▲ 롯데렌탈에서 운영하고 있는 종합렌털 브랜드 '묘미'. 출처= 묘미

롯데백화점은 2016년부터 본점과 잠실점에서 명품과 고가 브랜드 제품을 빌려주는 ‘살롱 드 샬롯’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해외 명품 브랜드부터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의 옷, 가방, 시계, 보석까지 패션 아이템을 직접 착용해 보고 마음에 드는 제품을 비교적 싼 비용에 일정 기간 빌려 쓸 수 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2016년 당시에는 하루 평균 10명 정도 고객이 찾았지만 최근엔 하루 평균 40명 정도 찾고 있다”면서 “입소문이 나면서 주로 신부 예복을 대여하러 오는 분들이 많고 꾸준히 고객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롯데그룹 계열사인 롯데홈쇼핑도 렌탈 상품 방송을 늘리고 있다. 롯데홈쇼핑은 110만원대의 ‘LG전자 엘지 더마 LED마스크’를 월 1만원에, 90만원가량의 승마운동기와 100만원 상당의 안마의자 등을 월 1만원에서 3만원대에 프리미엄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롯데그룹은 2015년 렌터카업계 1위인 KT렌탈을 인수해 종합렌탈 회사 ‘롯데렌탈’을 설립하고 렌터카 시장에 진출했다. 이후 롯데렌탈은 ‘묘미’ 브랜드를 출시해 유아동, 레저·스포츠, 패션·뷰티, 리빙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며 렌탈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롯데렌탈 관계자는 “특정 기간만 필요한 물품을 합리적으로 소비할 수 있고 구매하는 것과 같은 비용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면서 “비싼 비용을 치르고 산 뒤 금방 질려버린 경험이 누구나 한 번쯤 있음을 생각하면 렌탈 서비스는 획기적인 소비 방식이 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 조인성 공기청정기로 불리는 현대렌탈케어 큐밍 공기청정기. 출처= 큐밍

현대홈쇼핑은 2015년 렌탈 전문 자회사인 ‘현대렌탈케어’를 설립하고 ‘큐밍’이라는 브랜드를 출시했다. 정수기, 공기청정기, 비데를 전문으로 대여하며 영화배우 조인성을 광고 모델로 기용해 '조인성 정수기', '조인성 공기청정기' 등으로 제품을 부르며, 대대적인 홍보를 하고 있다.

SK플래닛도 2016년부터 옷과 가방을 빌려주는 ‘프로젝트 앤’을 운영하고 있다. 1회 2만5000원부터 4만원, 월 5만5000원부터 19만9000원까지 다양한 패키지가 있어 본인이 원하는 서비스를 선택하면 된다. SK플래닛 관계자는 “프로젝트 앤을 이용하고 있는 고객은 45만명 정도”라면서 “패키지 재구매율이 높다”고 밝혔다.

▲ LG에서 렌털하고 있는 의류 살균과 드라이기능이 있는 스타일러 제품이다. 출처= LG전자

LG전자도 2009년 정수기를 시작으로 렌탈 사업에 진출했다. 가전제품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LG전자는 2016년부터 공기청정기, 안마의자, 트롬스타일러, 트롬건조기, 전기레인지 등의 가전제품을 앞세워 렌탈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LG전자의 대표 상품인 스타일러는 110만원대이지만 렌탈로 이용하면 월 4만~6만원대로 이용이 가능하다.

LG전자 관계자는 “고가의 가전제품을 구입하는 초기 비용 부담을 덜 수 있다”면서 “헬스케어 매니저가 직접 고객 집으로 방문해 정기적인 관리를 해줘 오랫동안 안심하고 제품을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CJ헬로는 CJ헬로비전과 CJ헬로모바일 등 유료방송, 알뜰폰 가입자 플랫폼을 기반으로 지난해 생활가전·전자기기 렌탈 사업에 뛰어들었다. 초과화질(UHD) TV와 사운드바, 노트북, PC, 테블릿, 침대 매트리스, 정수기까지 다양한 품목을 아우르고 있다.

UHD TV는 43형부터 65형까지 다양한 사이즈로 실판매가가 400만원이 넘는 제품도 있지만 렌탈을 선택하면 월 1만~10만원대로 이용할 수 있다. 요즘 인기 있는 해외 브랜드 ‘다이슨’의 제품도 렌탈로 낮은 가격에 이용할 수 있다. 실판매가 130만원 상당의 다이슨 무선청소기는 1만~3만원대, 100만원대의 공기청정기는 2만원, 64만원대의 헤어드라이기는 1만원대로 이용 가능하다.

오는 6월 결혼을 앞두고 있는 김혜진(31) 씨는 “둘 다 맞벌이라 시간을 내서 결혼 준비하기 힘들다”면서 “다이슨 청소기, 다이슨 드라이기, TV, 세탁기, 냉장고, 의류건조기, 트롬스타일러, 공기청정기 안마의자 등 필요한 제품을 클릭 한 번에 모두 빌릴 수 있어 시간도 절약할 수 있어 사지 않고 CJ헬로에서 렌탈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는 “저걸 다 샀다면 수천만 원의 비용이 들었을 텐데 그보다 훨씬 싸서 부담도 덜 되고, 써보고 좋으면 나중에 살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업계 관계자들은 “렌탈사업은 단순히 제품을 대여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을 이용하는 것”이라면서 “초기 투자 부담금이 있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현금 흐름이 좋고 사업 확장성이 좋아 많은 대기업들도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SNS(사회관계망서비스)사업으로 시작한 ‘카카오’가 플랫폼 확장의 가장 좋은 예"라면서 "카카오는 카카오톡의 커뮤니케이션을 이용해 카카오맵, 카카오페이 등으로 순식간에 확장했다"고 렌털 사업에 빗대어 설명을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