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 리뷰=장영성 기자] 수소전지차는 점차 강화되고 있는 세계 각국의 환경 규제(수출장벽)와 무관하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오히려 주행 시 산소가 공급돼 환경을 보호하는 기능마저 있을 정도다. 미세먼지 배출 주범인 내연기관차보다 친환경성은 물론, 연료 효율성도 뛰어나다. 글로벌 자동차산업 트렌드도 수소전기차와 궤를 같이 한다.

반가운 소식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현대자동차가 수소차 기술 개발에 앞장서고 있다는 점이다. 출시를 눈앞에 두고 있는 현대차의 수소차 ‘넥쏘’의 경우 세계에서 거의 독보적인 기술력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그런데….

우리 정부만 너무 무관심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수소차라는 세계 시장을 주도할 수 있는 미래산업을 놓고 정부가 ‘재벌 특혜’라든지 ‘해외사례’를 운운하며 움츠리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산업은 도로와 충전인프라가 구축돼 있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정부의 지원이 필요한 부분이다. 특히 수소와 같이 새로운 연료가 에너지원일 경우 더욱 그렇다. 세계를 선도하는 산업을 일으켜야 하는 입장에서 공무원 사회의 해외사례 찾기 문화는 말문을 막히게 한다. 퍼스트무버가 아닌 패스트팔로워에 익숙한 산업 전반에 걸친 문제이기도 하지만 이런 정체된 사고는 새로운 산업을 일으킬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다국적 회계·컨설팅기업 KPMG가 올해 발표한 ‘2018 글로벌 자동차산업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수소전기차는 2025년 자동차산업 핵심 트렌드로 꼽힌다. 설문에 참여한 글로벌 경영진들은 2030년에 수소전기차가 전체 자동차 비중 21%(2600만대)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2040년에는 전 세계 자동차 4대 중 1대가 수소전기차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해 수소위원회에서 낸 보고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수소위원회는 한국과 일본, 미국, 독일에서 판매되는 차량 12대 중 1대는 수소전기차가 될 것으로 봤다.

그러나 수소충전소 인프라 구축 없이는 이러한 결과가 나오기 어렵다. 수소충전소 인프라 구축은 발등의 불이다. 한국의 경우 정부가 지자체와 연계해 수소 충전소 구축 계획을 세웠지만, 비용부터 안전에 대한 오해 등 설치가 여의치 않다. 반면 해외는 정부가 수소에너지 장려를 비롯해 인프라 구축에 앞장서고 있다.

국내 수소차 개발은 독일과 미국보다 늦지만 20년이란 역사를 갖고 있다. 국내 인프라 구축이 지지부진해지면서 나름대로 갖춘 경쟁력이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 수소저장용기, 연료전지 등 주요 부품에서도 성과물이 도출되고 있으나, 인프라가 없는 가운데 수소전기차 시장 선점은 자체가 불가능하다. 한국이 IT강국으로 인정받게 된 계기는 IT인프라에 있다. 그만큼 국내 수소전기차가 상용화 단계를 넘어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인프라 구축이 필수적이다.

 LPG가 상용화됐던 과거를 돌아보라

사실 한국은 수소전기차 기술보다 LPG엔진 기술이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다. 1960년대 후반 국내 버스에서 처음 사용된 LPG 연료는 벌써 50년이 넘은 긴 역사를 갖고 있다. 긴 세월을 보낸 만큼 국내 완성차업계의 LPG 기술은 자연스레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이러한 역사 초창기, LPG 사용을 적극 주장한 것은 교통부였다. 1970년 2월 교통부는 자동차용 연료로 LPG를 의무적으로 사용하도록 한다는 방침을 낸다. 매연발산을 막고 유류 사용에 따른 외화 절약 차원에서 LPG의 자동차 사용을 확대하겠다고 나섰다. 1970년 6월에는 LPG 차량 부분품 양산 체제까지 확립한다. 운수업계 운행차는 물론 자동차회사가 LPG 연료 장치 설치를 의무화한다는 점을 부각했다.

이후 LPG는 가격 인상 직격탄을 맞으며 외면받는다. 그러나 1971년 다시 휘발유와 경유 가격이 평균 20%가량 오르면서 택시업계는 LPG로 곧장 눈을 돌렸다. LPG 연료가 택시에 사용될 수 있도록 법적 정비가 완료된 이후엔 자동차회사가 LPG 전용 엔진을 생산하기까지 한다. LPG연료는 계속해서 주목받아왔고 현재에 이르러선 국내 LPG엔진 기술이 글로벌 최고 수준으로 자리를 잡게 됐다. 자연스레 인프라도 형성됐다.

LPG 관련 업계에선 LPG충전소 인프라를 활용하면 오히려 한국이 수소전기차의 선두 국가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수소를 얻는 주 방안으로는 화석연료 개질과 부생수소 이용, 신생에너지를 활용한 전기분해, 갈탄 액화 추출 등이 있다. 수소 공급은 고압으로 탱크에 충전하고 운반하는 방법과 LPG 충전소별로 가스를 개질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이 방법은 세계 여러 국가에서 수소 운반책으로 이용되고 있다.

주목해야 할 점은 LPG 충전소별 가스 개질이다. LPG를 이용해 수소를 생산하는 것이다. LPG 개질 방식을 이용할 경우 오히려 강점인 곳은 한국이다. 이미 전국에 LPG 충전소가 산재해 있다. 특히 LPG 충전소에 연료전지를 설치하면 지역별 간이 발전소로도 운영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 설명이다.

국내에서 수소는 정유공장이나 제철소의 부생가스에서 추출돼 탱크로리로 운반되고 있다. 수소충전소는 전국에 일반인이 사용 가능한 곳은 8곳에 불과하다. 반면 독일은 현재 50개 충전소를 구축했다. 독일은 불과 5년 뒤인 2023년까지 400개소를 건설할 계획이다. 특히 해외 수소충전소는 도심 중앙과 지자체에 있는 반면, 국내 충전소는 도심 외곽지역에 있어 충전에 불편사항이 많다. 따라서 수소 충전소를 신규로 만드는 것보다 기존 LPG 충전소를 활용하는 게 수소 시대 개척에 도움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국내 LPG 충전소는 약 2000곳으로 세계에서 가장 밀집된 기반을 형성하고 있다.

원유 정제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수소인 부생수소도 하나의 활용 방법이다. 대규모 정유·화학 기업들이 있는 한국은 연간 190만t의 부생수소가 만들어진다. 이광국 현대차 부사장은 “국내 각종 산업에서 부가적으로 생성되는 수소만으로도 수소전기차 200만대가 주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수소는 에너지 측면에서 기존 연료와 달리 비용 감소 효과가 있다. 노동운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수소에너지는 기존 화학에너지와 생산비용과 달리 에너지 비용이 개발 여부에 따라 지속해서 하락할 수 있다”면서 “수소분야는 단지 수소차 인프라 측면이 아닌 수소에너지 자체 연구 개발을 위해서라도 정부의 투자가 대폭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LPG충전소가 수소차 충전소로 거듭나기 위한 준비과정도 한창이다. 한국LPG산업협회는 최근 ‘LPG 및 수소산업의 경쟁력 강화 사업’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LPG충전소가 수소차 연료를 공급하는 인프라로 전환·활용될 예정이다. LPG충전소에서는 친환경 융합충전소 구축이 본격 추진된다. 협회는 기존 LPG충전소를 기반으로 수소 개질기술이 적용된 융합충전소 구축하는 등 상호 협력 사업을 추진하면서 양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노력할 예정이다.

이승훈 수소융합얼라이언스추진단 사무총장은 “LPG와 수소충전소는 거의 비슷한 시스템으로 운영된다”면서 “특히 가스연료와 같은 형태를 유지하는 액체수소는 해외에서 충전소로 개발된 상황이다. 안전성 문제를 우려하는 시각도 많은데, 사실 LPG가 수소보다 무겁기 때문에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라고 설명했다.

정부, 충전소 인프라 구축이 ‘재벌 특혜’라니

수소차 인프라에 대한 정부 지원을 ‘재벌 특혜’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수소차는 현대차, 에너지 인프라에는 SK가스와 효성 등 대기업들이 참여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국의 수소충전소 사업을 지자체가 떠맡고 있는것도 이런 특혜 논란이 한몫하고 있다.

반면 충전소 같은 기본적인 인프라가 갖춰져야 수소차 판매가 늘고 관련 산업이 성장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이승훈 사무총장은 “자동차 산업은 이미 하나의 기업이 운영하는 것이 아닌 국가 기간산업으로 거듭나 있다”면서 “시장 초기에 정부가 수소충전소 인프라 구축을 지원하는 것은 글로벌 시각으로 확대했을 때 리스크를 공유하자는 의미다. 일부 기업에 특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사무총장은 “수소연료사업은 사실 자동차보다 더 많은 산업이 인프라를 요구한다. 유럽의 경우 수소연료를 이용한 기차가 운행 중이며 드론에도 사용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개발한다. 미국은 수소 지게차 시장이 열려 2만대 가까이 보급된 상황”이라며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신생에너지 측면에서 시장 규모 확대가 필요한 시점이다”라고 강조했다.

수소 에너지 개발 속도는 세계 각국의 상황에 맞게 방점을 어디에 두고 투자할 것인지에 달렸다. 산이 많은 노르웨이는 수력으로 전체 전기의 96%를 생산한다. 그러니 재생에너지에 집중하고 있다. 후쿠시마원전 사고로 탈원전을 가속화한 일본은 신재생에너지만으로는 전력 수요를 충족할 수 없으니 수소에 몰두한다. 전 세계가 각국 사정에 맞는 에너지혼합 정책을 세우고 ‘탈 화석연료’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에비해 우리나라는 수소차가 먼저냐 충전소가 먼저냐는 순환논쟁이 펼쳐지고 있다.

국내 한 산업정책 연구원은 “자동차 산업은 세계를 상대로 하는 글로벌 산업이다. 최근 논란이 된 GM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라면서 “현대차를 키우기 위해 정부가 수소충전소를 만들어줘야 하느냐는 재벌 특혜 논란은 상당히 근시안적인 생각”이라고 지적했다.

▲ 수소전지차 '넥쏘' 충전 모습. 사진=현대자동차

기업보다 늦은 정부 정책 속도… “이러다 수소차 주도권 날릴 판”

화석연료에서 탈피하고 에너지원을 다양화하는 ‘에너지 혼합’ 시대에서 수소는 새로운 활력소다. 정부가 관심을 두고 지켜봐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작은 이해관계에 발목만 잡혀 있기에는 세계가 속전속결로 새로운 에너지 패권을 장악하고 있다.

앞서 정부는 수소전기차 정착을 위해 충전소 보급을 2025년까지 210여 곳으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방침이다. 수소차 충전소의 1기 설치 비용은 30~40억원이다. 정부는 1기당 절반금액을 지원해 충전소 설치를 늘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해 수소충전소 건설지원으로 배정된 예산은 150억원이다. 10기의 충전소 지원금밖에 되지 않는다. 이러한 추세라면 2025년 210여기 설치 목표의 절반도 채울 수 없다.

민간사업자가 수소충전소 사업에 나설 경우 휴게소와 같이 운영해 수익을 보장하겠다던 ‘수소복합충전소’는 무산됐다. 국토부가 제시한 수소복합충전소 건설 예산(50억원)을 기재부가 승인하지 않으면서 시작단계에서 계획이 좌초됐다. 이학재 바른정당 의원이 한국도로공사 지원을 목적으로 신청한 320억원의 예산도 국회 예산 심사에서 가로막혔다. 국토부는 지원 예산이 유입되면 이를 수소복합충전소 건립에 사용할 계획이었다. 지자체의 경우 충전소 사업을 담당할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속도감 있는 사업 추진도 불가능하다. 지자체들은 2014년에 확보한 예산도 집행하지 못했다.

친환경차 관련 정책이 기술발전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자 기업은 사비를 털었다. 국토부가 부지를 제공하고 도로점용료(시설사용료) 면제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긴 했지만, 현대차가 여주휴게소에 지은 수소차 충전소는 자비를 들여 건립됐다.

지자체는 수소 인프라 건축에 팔을 걷고 나섰다. 울산시는 지난 3월 6일 신성장 동력인 수소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연구용역 결과 고부가가치 수소사업 아이템으로 무인비행체(드론) 개발 등을 포함해 총 13개를 도출했다. 대전시는 오는 2022년까지 민간자본 7000억원을 유치해 수소연료전지 발전 설비를 확대할 방침이다. 아울러 약 723억원을 투입해 수소차 1000대 보급 및 수소충전소 5개소 설치를 추진한다. 창원시는 수소에너지 전문 국제 포럼을 국내 최초로 개최한다. 올해부터 ‘창원 수소에너지 순환시스템 실증단지 조성사업’도 본격적으로 가동한다.

한국자동차환경협회는 ‘수소전기차 충전소 설치 민간자본보조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민간이 설치하는 수소충전소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사업이다. 사업 핵심은 3개 민간 수소충전소 설치사업자를 선정한 후 충전소 설치비용의 최대 50%를 지원하는 것이다. 예산은 각각 15억원씩 총 45억원이다. 다만 15억원은 고정비용이 아니며, 실제 충전소 설치에 든 비용의 50%를 최대 15억원까지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정부는 뒤늦게 수소에너지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지난 2월 28일 국회는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은 수소충전소 설치뿐만 아니라 운영 지원까지 가능한 방향으로 통과됐다. 그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수소연료공급시설을 설치하려는 자에게 자금 등의 지원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수소연료공급시설을 운영하려는 자에게 지원 근거가 마련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신재생에너지인 수소분야 발전은 정부의 역할만이 남았다고 말한다. 앞서 언급한 산업정책 연구원은 “현대차가 수소차기술 개발차로 상용화에 보급했으니 이제 정부가 화답할 차례”라면서 “수소 에너지가 자동차에 국한되지 않는 만큼 주무부처는 예산 입안을 큰 시각을 보고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승훈 사무총장은 “글로벌 완성차업계 경영진들은 가까운 미래에 세계 자동차 회사가 5개만이 남을 것이라고 내다본다”면서 “이러한 과도기적 상황에서 현대차가 과연 어떻게 살아남을지는 정부가 규제와 인센티브 방식을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좌우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