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 함께 부인하면 징역 1년형에 처해지고, 둘 다 자백을 하면 징역 5년형, 그리고 둘 중 어느 한쪽만 자백을 한다면 자백한 자는 석방되지만 다른 사람은 징역 10년이라는 무거운 형벌을 받는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서로 떨어져 있어서 서로간의 진술을 짜거나 할 수가 없다. 바로 게임이론에서 그 유명한 죄수의 딜레마다.

필자가 외부 강연 자리에서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너무 혼란스러웠다. 뭐가 징역형이고 어떻게 해야 가중되고 또 어떻게 해야 석방이 되는 것인지 그 경우의 수를 외우려고 몇 번을 노력했는데, 쉽지가 않았다. 필자도 이런 말을 어느 순간에 쓰면서 비유를 하고 싶어도 머릿속에서만 맴돌 뿐이었다. 자료도 찾아보고 서로 언급된 내용을 비교도 해보고 이해하려 해도 엉뚱하게도 형량에 신경을 뺏겨, 이해는 되었지만 표현이 쉽지 않았다.

어느 날 문득 막내 아이가 보는 우화집에서 그 답을 찾았다. 강을 가운데에 두고 양쪽에 초원이 펼쳐져 있는데, 한쪽 초원에 얼룩말 두 마리가 살고 있었다. 강은 깊이가 깊지 않아서 충분히 뛰어 건너갈 수 있지만, 문제는 강 가운데에 사나운 악어 한 마리가 살고 있다. 강 폭이 넓어서 얼룩말이 전속력으로 달려도 강을 다 건너기 전에 반드시 잡아먹힌다.

이 두 얼룩말은 왕성한 식욕을 지니고 있어서 싱싱한 풀이 얼마 남지 않았고, 새 풀이 나기까지는 배고픔을 견뎌야 했다. 얼룩말들은 싱싱하고 맛있는 풀이 많은 건너편 초원을 늘 바라보기만 할 뿐, 스스로가 그곳으로 건너가려는 생각은 못하고 있었다. 그저 ‘저 녀석이 강 건너로 좀 가주면 좋겠는데’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다른 한 마리가 강을 건너가든지 아니면 건너다가 잡아먹히기라도 하면, 이 풀밭도 혼자서는 충분히 먹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결론은 어떻게 됐을까? 이 두 마리 얼룩말은 서로를 미워하고 속으로 앙금만 쌓이며 서로 풀을 먹는 모습조차 시기하지만, 점점 바닥이 드러나고 있는 초원 상태에 안타까움만 계속됐다. ‘내가 배불리 먹지 못하는 것은 다 저 놈 때문이야’라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하고 있는 한, 강 건너 초원은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서로를 믿지 못하기에, 원망하며 부족한 풀로 연명

싱싱한 풀이 많은 건너편으로 가기 위해서는 두 마리가 협동해, 한 마리가 강을 건너다 위험해지면 다른 한 마리가 악어를 유인하고, 또 다시 그 얼룩말이 위험해지면 다른 한 마리가 유인하면서 공동 대응을 해야 한다. 그러면 두 마리 모두 싱싱한 풀을 보상받을 수 있지만, 서로를 믿을 수 없기에 현실은 서로를 시기하며 미워하면서 부족한 풀로나마 연명하는 수밖에 없다.

초등학생 수준만 되어도 이 얼룩말의 어리석음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수준의 생각에도 미치지 못하고, 딜레마에 갇혀 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다시 말하자면 이런 죄수의 딜레마가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공간 그 어디서나 현실로 펼쳐지고 있다. 애석하게도 그들은 자신들이 딜레마에 빠져 있다는 것을 모른다.

박 과장과 김 차장은 같은 팀에서 근무하는 라이벌이다. 사내에서 가장 까다로운 상사 중의 한 사람인 이 본부장 휘하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런데 국내 유수의 대학을 졸업한 우수한 인재라고 분류되면서도 팀 실적은 갈수록 저하되고 있었다. 그 이유는 박 과장이 기획안을 결재를 올리고 난 후 김 차장은 박 과장의 아이디어에 흠집을 내서 자신을 드러내고, 반대의 경우에는 김 차장의 생각을 박 과장이 반박하면서 본부장의 신임을 얻으려 하기 때문이다.

이 본부장은 이 둘의 견제 덕분에 리스크를 피해 나갈 수는 있지만 업적을 쌓아 나가기는 힘들다. 그리고 박과 김 이 두 사람은 서로의 존재감은 곧잘 드러내지만 제대로 된 프로젝트를 잘 수행해서 인정을 받을 기회는 좀처럼 가질 수가 없었다.

필자의 예전 직장에서 해외에서 큰 수주에 성공해 보도자료를 내서 히트를 친 적이 있었다. 해외에서 큰 도시의 전반적인 개발을 시리즈로 진행했는데, 그 시작을 국내 기업이 따내면서 잘만 하면 그 연이어 진행되는 전체 개발을 우리나라가 다 차치할 수도 있는 유리한 상황이었다.

 

국내선 앙숙인 경쟁관계, 하지만 해외시장에선 협력관계로

언론과 여론에서 더 크게 생각했던 점은 국내에서는 업계 내에서 1위와 2위로 서로를 앙숙처럼 생각하고 있었고 해외에서도 그 경쟁은 뜨거웠지만, 전체를 다 합치면 엄청난 프로젝트가 될 그 사안에 대해서는 양 측이 합심을 했다는 것이었다. 첫 프로젝트는 업계 순위로는 밀리지만 2위 기업이 주관기업이 되고 1위 기업이 지원업체가 되었다. 그 다음 수주에서는 앞 선 프로젝트에서 레코드를 쌓은 1위 기업이 전면에 나서고 2위 기업이 밀어주기로 약속을 했던 것이다.

결과는 성공적이어서 수주를 따내고 2위 기업에서 프로젝트에 성공한 것을 먼저 기사화했다. 시장은 이런 협동 작전에 대해 환호를 보냈다. 그리고 몇 년 뒤 2차 프로젝트에서도 한국이 수주했고, 결과적으로 수차례 더 진행됐던 도시 개발 전체 프로젝트를 다 차지하는 영광을 안았다.

경쟁사의 약점을 보완해 주는 것이 어쩌면 스스로를 더 힘들게 할 수 있다는 우려 속에서 두 회사가 경쟁에 임하기만 했다면 그 같은 성공적인 결과를 낳기는 힘들었다. 사실 경쟁 회사가 약하다고 여겨지는 그 분야마저도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노하우를 쌓게 되면 미래 경쟁에서는 더 힘들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서 서로를 견제하다가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 해외 기업으로 주도권이 넘어간다면, 한국 기업들은 그 뒤로도 그런 시장에 진입이 요원했을 수도 있다. 무엇이 정답인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배 곯아가며 견제만 하는 것이 현명한 것은 아닐 것이다.

죄수의 딜레마는 동일한 처지에 놓여 있는 사람들 간에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리더와 조직원 간에도 비일비재하다. 리더가 말도 안 되는 주제로 논리도 없이 이야기한다. 부하들은 그 말이 합리적이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경청할 수밖에 없다. 흔히 보던 건달 사회에서나 일어남직한 일 같지만 사실은 비즈니스 사회에 만연하다. 주로 리더가 홀로 목소리를 높이고 구성원들은 듣고만 있다. 이런 것을 ‘조직 내 침묵 현상(Organizational Silence)’라고 한다.

‘내가 하늘이 빨간색이라고 하면 빨간색인 거야!’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기다.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조직 구성원들은 직언을 하기보다 그냥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일하게 된다. 어차피 잘 안 될 것을 알기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찾으려야 찾을 수도 없다. 그리고 그 다음 상황에서 리더는 조직원들의 열정적이지 못한 모습에 신뢰하지 못하고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간섭하게 된다.

침묵에 들어간 조직 구성원들의 입을 열게 하기 위해서 일일이 닦달하고 몰아세우지만 그것이 더 입을 닫게 만들게 된다. 그러면 리더는 개별 구성원들에게 하나하나 연락하게 되고 구성원은 다이렉트로 연락하는 현상도 발생한다. 결국 옆 동료와 팀 내에서 협의하게 될 일들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머리를 맞대기는커녕 등 돌리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인재의 자질 중에서 갈수록 중요해지는 것이 바로 태도다. 관계의 문제로 얘기된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우리 사회는 이렇게 태도와 관계를 이야기하면서 조직 내 침묵 현상을 조장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