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태진 법조전문기자/변호사

[이코노믹리뷰=조태진 법조전문기자/변호사]  바른미래당의 채이배 국회의원이 언론에 쓴 ‘이재용 부회장님께’라는 글이 논란을 일으켰다. 

“1년 가까이 영어의 몸이 되었다가 자유를 얻었으니 자유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라는 다소 도발적인 인사말로 시작하는 이 글은 이른바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 항소심 재판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받고 풀려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법적인 책임을 지고 삼성전자 등기임원직에서 물러날 것을 권했다.  

글은 또 대법원 판결이 이 부회장에게 불리하게 나올 것을 대비한 컨트롤타워를 미리 만들 것, 이건희 회장의 상속자로서 상속·승계를 위한 분명한 로드맵을 마련할 것 등을 요구하는 내용이다.

진영 논리에 따라서는 평소 ‘재벌 저격수’로 이름이 높은 채 의원다운 독설과 풍자성이 돋보인다는 평도 있지만, 하나하나 곱씹어 보면 법률적 근거가 박약해 논조가 주는 강렬함에 비해 오히려 설득력이 크게 떨어진다는 느낌이다.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 등기임원직을 사임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채 의원은 이 부회장이 ‘법적인 책임’을 지고 삼성전자 등기임원직을 사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 부회장은 항소심 재판 이후 상고를 한 상태로 우리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떠올려 본다면,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그 누구도 그의 거취에 대하여 왈가왈부할 자격이 없다(헌법 제27조 제4항 참조).

백보 양보하여 채 의원의 의도를 좋게 해석해서 이 부회장을 해임해야 한다는 취지로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이는 어차피 주주총회에서 결정될 사안인 만큼 삼성전자 주주들에게 요청할 사항이지 이 부회장에게 요구할 내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상법 제385조 참조).

다른 한편으로는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전문가인 채 의원이 왜 굳이 이 부회장의 등기임원직 사임에 집착하고 있는지도 이해하기 어렵다.

재계에는 오너일가가 등기이사에 이름을 올리지 않는 경우도 왕왕 있는데, 이 경우 오너일가는 그룹 경영 전반에서 막대한 권한과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책임에서는 면책이 될 우려가 있었다.

물론 상법은 ‘이사가 아니면서 명예회장·회장·사장·부사장·전무·상무·이사 기타 회사의 업무를 집행할 권한이 있는 것으로 인정될 만한 명칭을 사용하여 회사의 업무를 집행한 자’의 책임을 추궁하기 위한 ‘업무집행지시자 등의 책임(제401조의 2)’규정을 두고 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등기이사로 남을 경우 책임 추궁의 소지가 더욱 크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상법 제399조, 제401조 등 참조).

결과적으로 ‘재벌 저격수’를 자처해온 채 의원은 배후에서 경영에 참여하면서도 책임은 회피하는 ‘쉬운 길’을 마다하고 굳이 자신의 이름을 법인 등기부에 올려 당당히 경영자로서의 책임을 다하겠다는 ‘어려운 길’을 택한 이 부회장을 나무라는 자충수를 두고 있는 것이다.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 나서서 사법 불신을 조장하는 것은 심히 우려스러워

채 의원은 이 회장의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사건’과 이 부회장의 ‘삼성물산, 제일모직 합병 사건’을 연계 지으며, “지배권을 확보하기 위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무리한 합병에 대한 책임이 고스란히 이 부회장에게 돌아오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법원의 판단을 무시한 발언이다. 우선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사건’은 삼성 에버랜드가 전환사채를 낮은 가격에 주주 우선으로 발행한 이후 기존 주주들이 인수를 포기해 결과적으로 이 부회장에게 편법 증여했다는 내용의 사건이다.

이는 삼성특검까지 출범해 2008년 당시 이 회장 등이 기소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대법원에서 모두 무죄 선고를 받았다.

물론 이 때에도 사회적 논란이 없지는 않았지만, 사법부가 3심에 걸친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에 대해, 그것도 헌법기관이자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함부로 주관적 판단에 따라 이를 ‘편법과 불법’이라 평가하는 것은 국민들로 하여금 사법부를 불신하게 하는 또 다른 원인이 될 수 있다.

한편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의 합병 역시 재판을 통해 적법하였음이 확인된 사안이다.

비록 국정농단 관련 형사재판에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장관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점이 드러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의 합병이 당연히 무효라는 주장은 ‘평면이 전혀 다른 논의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관련기사 ☞ [법과 사건] 삼성물산 합병 무효소송, 결과 예측할 관전포인트는?).

채 의원이 아닌 시민 ‘채이배’, 또는 채 의원이 근무했던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의 일원으로 앞서 살펴 본 삼성 관련 재판 결과를 비난하는 것은 허용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국회의원 신분인 채 의원부터 사법부의 판단을 무시하기 시작하면 과연 어느 국민이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할 것인지 채 의원은 국회의원으로서 적절한 처신이었는지 깊이 반성해 볼 부분이다.

-안 하느니만 못한 훈수, 괜한 오해 살라

어떠한 이유에서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집단인 삼성그룹이 국정농단에 연루돼 국민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법치주의에 대한 고민이나 배려, 팩트에 기초하지 않은 훈수는 결과적으로는 안 하느니만 못한 것이 되어 버렸다. 특히 막강한 권한을 갖는 국회의원 신분에서의 훈수라는 점에 주목한다면, 행여나 채 의원이 여론재판, 선동재판을 염두에 두고 차후 대법원에 대해 이 부회장에게 불리한 판결을 하라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준 것은 아닌가. 

혹은 이번 글을 통해 삼성그룹의 경영권에 외압을 가하거나 오너 일가의 상속에 개입하려 한 것은 아닌지에 대한 오해만 불러일으킨 격이 되어 버렸다. 국회의원이라는 자리가 갖는 무게감과 사회적 영향력을 고려했을 때 채 의원은 좀 더 신중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