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허지은 기자] 

# 지난해 4000원까지 치솟았던 가상통화 리플(XRP)은 16일 현재 700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연고점 대비 4분의 1도 안 되는 가격이다. 리플은 여전히 전세계 시가총액 3위에 오를 정도로 높은 거래량을 보유한 가상통화지만 리플의 가격 변동성에 ‘리또속(리플에게 또 속았다)’라는 우스갯소리가 투자자들 사이에서 퍼지고 있기도 하다.

# 가상통화 거래소 업비트에서는 올해 들어서만 8개 코인의 거래가 종료됐다. 지난 1월 디직스다오(DGD), 메탈(MTL), 미스테리움(MYST) 거래가 중단된 데 이어 2월에는 펀페어(UN), 라이즈(RISE), 아드니아고라스(AGRS), 메이드세이프(MAID), 퍼스트블러드(1ST) 등 5종의 거래가 추가로 종료됐다. 거래 종료는 주식 시장의 ‘상장 폐지’와 같아 사실상 시장에서의 퇴출을 의미한다.

‘춘추전국’ 가상통화 시장에 신생코인(알트코인) 주의보가 발령됐다. 가상통화공개(ICO)를 통해 시장에 진출하는 코인은 물론 거래소 자체 기준을 통해 상장되는 코인의 실패 사례가 연이어 발표되며 ‘잡코인’ 투자 비율이 높은 국내 투자 시장에 적신호가 울리고 있다.

17일 가상통화 정보업체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전세계에서 유통 중인 가상통화는 1564개다. 지난 1월초 1300여개에서 두 달만에 200여종이 새롭게 시장에 진출했다. 이 기세대로라면 연말까지 가상통화 개수는 2000여개를 가뿐히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상대적으로 낮은 시세와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신생코인으로 몰리는 투자 수요도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가상통화 투자 열기가 뜨거웠던 지난해 말부터 해당 커뮤니티에는 ‘숨은 코인 찾기’ 열풍이 불었다. 투자자들은 아직 상장되지도 않은 코인의 정보를 공유하며 ‘떡상(가격 급등)’과 ‘성지(과거 예측대로 결과가 나오는 글)’를 예언했다. 그 과정에서 상장 코인이 가장 많은 업비트가 높은 수익을 올리며 톡톡한 수혜를 입기도 했다.

▲ 새롭게 시장에 진출하는 가상통화의 실패 사례가 늘어나며 투자에 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출처=flickr, pixabay

지난해 ICO 코인 절반 이상 ‘실패’…신생코인 주의보

신생 코인은 주로 가상통화공개(ICO∙Initial Coin Offering)방법을 통해 시장에 등장한다. ICO란 주식시장의 기업공개(IPO)와 유사한 행위로 신규 가상통화를 발행해 투자자들에게 이를 판매해 자금을 모으는 방식이다. 해당 코인이 시장에 상장된 후 투자자들은 코인을 사고 팔아 수익을 낼 수 있다. 초기 투자금이 많지 않은 기업들은 대부분 ICO를 통해 자금 조달에 나선다.

그러나 ICO 과정이 가상통화의 구체적인 목표나 가치를 제시하기엔 충분하지 않다는 우려도 높다. 일부 회사들은 몇 페이지에 불과한 사업보고서를 공개하고 그럴듯한 홈페이지와 가상통화 이미지를 제시하며 투자금을 모으기도 한다.

ICO 이후 실패로 끝난 코인이 많다는 점도 이를 방증한다. 가상통화 전문매체 비트코인닷컴의 조사에 따르면 최근 ICO를 통해 상장된 902개 가상통화 프로젝트 중 절반에 가까운 418개 프로젝트는 실패로 끝난 것으로 나타났다. 142개는 자금 조달 이전에 프로젝트를 중단했고 276개 기업은 모금 후에도 실패했다. 성공으로 분류된 프로젝트 중에서도 113개는 투자자와의 소통 부재로 ‘중간 실패’로 평가됐다. 살아남은 코인 중에서도 실패로 전환될 수 있는 위험이 충분히 있는 상황이다.

한국과 중국 등 각국 정부는 ICO를 금지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9월 모든 형태의 ICO를 전면 금지했으며 우리나라 금융위원회도 같은 달 국내에서의 ICO를 금지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미국은 ICO 기준을 IPO 수준으로 강화하도록 규제 기준을 높였고 일본 역시 거래소 등록제를 통해 무분별한 ICO를 미연에 방지하고 있다.

ICO에 대한 당국의 기본 방침은 변함이 없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14일 서울정부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투자자 보호 관점에서 국내 ICO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은 그대로 유지할 예정”이라며 국내 ICO 규제 완화 가능성을 일축했다. 최 위원장은 “가상통화 발행과 유통 과정에서 현행법에 저촉될 여지가 있으며 다단계나 사기에 연루될 가능성도 높다”면서 ICO 규제 이유를 밝혔다.

해외에서 ICO 후 국내 거래소 입성…금융위 “국외 ICO 직접 금지할 법적 근거 없어”

그러나 ICO가 금지되지 않은 해외 시장에서 상장을 마친 뒤 국내 거래소로 역상장하는 가상통화도 적지 않다. 스위스와 홍콩 등 ICO에 우호적인 국가가 대표적이다. 실제로 지난해 ICO를 앞둔 국내 모 기업은 스위스에 자회사를 세워 코인 상장을 마쳤다. 해당 업체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ICO가 전면 금지돼있기 때문에 ICO라는 단어를 쓰는 것 자체도 조심스럽다”면서도 “ICO금지로 해외로 유출되는 자본을 고려하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우회 상장한 가상통화는 거래소가 자체적으로 마련한 상장 기준을 통해 거래소에 입성한다. 상장 기준은 주로 해당 코인의 기술적 가치나 미래 시장가치, 코인을 만든 개발자나 회사 등 여러가지 기준에 따라 이뤄지지만 거래소의 주관적 기준이기 때문에 절대 기준은 아니다. 국내 거래소 중 업비트는 120여종, 빗썸과 코인원은 10여종 등 상장된 코인이 천차만별인 이유도 이 때문이다.

공식적으로 ICO를 금지하고 있는 금융위도 이에 대한 법적 근거는 아직 마련하지 못 하고 있다. 지난해 9월 금융위는 ICO 금지를 알리며 “지분증권, 채무증권 등 증권발행 형식의 ICO는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처벌할 것”이라며 법적 제재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러나 현재까지 새로운 입법 조치는 없었다. 최근 최종구 위원장 역시 “ICO를 직접 금지할 법적 근거는 없다”고 설명한 바 있다.

신생 코인 투자...'묻지마투자는 100전100패'

우리나라는 전체 가상통화 시장에서 신생코인을 비롯한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가상통화) 투자 비중이 유독 높은 편이다. 임준환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가상통화 시장에서 비트코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32.7%로 세계에서 가장 낮았다. 일본(96.9%), 영국(87.1%), 브라질(84.0%), 러시아(83.7%) 등에 비하면 절반에도 미치지 못 하는 수준이다. 전세계 비트코인 시장에서 한국시장의 비중은 15.3%에 그치지만 알트코인 거래 규모는 54.7%로 절반이 넘는다.

때문에 신규 상장된 가상통화에 투자를 할 때는 투자자들 스스로 주의해야 한다. 낮은 가격에 혹해 투자금을 넣었다가 갑자기 상장이 폐지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업비트는 올해 들어서만 8종의 가상통화 거래 지원을 중단했다. 물론 상장폐지된 가상통화도 출금은 할 수 있기 때문에 투자금 회수는 가능하다. 다만 가격 변동성이 높은 시장 특성을 고려하면 이러한 위험을 안고 투자를 지속하는 건 리스크가 높을 수밖에 없다.

임 연구위원은 “잡코인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 가상통화 시장의 특성은 2030 젊은 세대의 난입으로 초과 수요가 발생했기 때문”이라면서 “국내 투자자들의 투기적 행위도 이러한 특성에 일조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가상통화 시장에서 나타난 투기 과열 행태는 금, 주식, 상품거래 시장의 초기 단계에서도 나타났던 현상”이라면서 “향후 가상통화 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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