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미국 여론조사기관 해리슨 폴이 13일(현지시각) 2018 기업평판 지수를 발표한 가운데, LG가 25위를 기록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갤럭시노트7 발화에 의한 단종을 극복한 삼성이 지난해 49위에서 올해 35위로 껑충 뛰어올랐지만, 유독 LG의 25위가 눈에 들어옵니다. LG에 그 비결을 물어보니 다소 당황하면서 “저희가 데이터를 제공한 것도 아닌데, 모르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우리 입으로 말하기는 조금 그렇죠”라는 미묘한 뉘앙스도 풍깁니다.

 

여기서 삼성과 LG를 단순비교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삼성은 항상 10위권에서 ‘논’ 기업이었고 LG가 25위를 차지해 삼성의 35위를 눌렀다지만 이는 상대적인 평가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해리슨 폴의 여론조사가 발표된 후 불현 듯 스치는 데이터가 있습니다. 유럽특허청이 발표한 지난해 현지 특허 출원 현황에 따르면 LG는 국내 기업 중 누적 특허 2056건을 기록해 삼성을 누르고 1위에 올랐습니다. 전자 기기와 도구, 에너지 분야에서 4위를 차지했으며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에선 전년과 동일하게 8위에 오르는 등 고른 성적을 거뒀습니다. 삼성은 총 2016건으로 집계됐습니다.

기업규모로 봤을 때 LG가 삼성을 압도하고 있다고 말하면 곤란합니다. 다만 LG가 글로벌 기업 평판에서 상당히 준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고, 중요한 특허 시장인 유럽에서 순항하고 있다는 점은 이를 관통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기업 평판과 특허로 대표되는 연구개발. 여기에서 LG의 저력을 발견하면 너무 나간 해석일까요.

사실 평판이라는 것은 추상적인 개념입니다. 해리슨 폴의 자료를 보면 구글과 애플이 순위에서 크게 밀렸다는 점을 부각시키며 “혁신적인 제품을 출시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내리는데, ‘그 혁신적인 제품의 기준이 무엇인가?’는 쉽게 정의하기 어렵습니다. LG의 평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유를 찾기 어려워요.

▲ 해리슨 폴의 2018 기업평판에 LG전자가 25위로 올랐다. 출처=해리슨 폴

 LG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 그리고 조직문화에 높은 평판에 대한 힌트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국내외로 나눠 설명할 수 있습니다. 먼저 국내로 보면 당연히 ‘인화의 가치’가 눈에 들어옵니다. LG의 사시인 ‘인화’는 대중에도 많이 알려졌듯 끈끈함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LG는 인화의 가치를 바탕으로 사람중심의 경영을 해 왔습니다. 굳이 LG그룹 의인상을 말하지 않아도, 다양한 사회공헌을 거론하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다소 딱딱하다는 지적도 받지만, LG 특유의 조직문화도 역할을 합니다. 지배구조에 있어서도 장자승계원칙에 따라 매끄럽게 뭉치고 재조합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동시에 2003년 국내 최초로 지주사를 설립해 투명한 경영환경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러한 LG의 행보는 온 나라를 들끓게 만들었던 비선실세 논란을 비껴가게 만드는 중요한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지인들을 만나면 LG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보이는 이들이 있습니다. 스마트폰은 무엇을 쓰는지 물어보고 싶지만 꾹 참으며 LG에 대한 사랑의 이유를 물어보면, 열에 아홉은 이렇게 말합니다. “독립군 지원기업이잖아” 실제로 고 구인회 LG 창업주는 일제감정기 시절인 1942년 독립운동가 백산 안희제 선생에게 당시로는 거금인 1만원을 전달하며 독립운동을 도왔습니다. 독립운동을 도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풍비박산이 나던 시절, 고 구인회 LG 창업주의 용기는 지금도 크게 회자되고 있습니다.

▲ 윤성빈 선수에게 격려금을 지급하고 있는 LG전자. 출처=LG전자

범위를 LG전자로 좁히면, 최근 동계 올림픽 이슈를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LG전자는 비인기 종목인 동계 스포츠 육성을 위해 꾸준히 노력했으며 그 결과 스켈레톤 윤성빈 선수의 금빛질주가 가능했습니다. 최근 LG전자는 LG V30S 스마트폰 광고영상에 윤성빈 선수를 기용했으며, “영미야!”로 국민적인 사랑을 받은 여자 컬링 국가대표팀의 후원도 맡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가 소망하고 예상한대로 LG전자 로봇청소기 광고 모델로 발탁되었지요.

국외 평판이 올라간 지점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주변 전문가들에게 몇 번 물었지만 “그걸 어떻게 아냐, 일시적인 것일 수 있고 상대적인데”라는 핀잔만 들었습니다. 다만 LG가 최근 다양한 평판을 쌓았을 것으로 보이는 계기는 있어 보입니다. 특유의 오픈 플랫폼 전략에 따라 많은 글로벌 ICT 기업과 협력하기 때문입니다. LG전자만 봐도 인공지능 오픈 플랫폼 전략을 구사하며 구글, 아마존 등과 손을 잡고 있습니다. 구글과는 크로스 라이선스 정책에 힘입어 간격을 좁히고 있으며 지난해 구글 개발자 회의에서는 LG전자 제품이 인공지능 구글 어시스턴트로 작동되는 장면이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아마존 인공지능 알렉사 스피커인 에코는 LG전자 가전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유럽특허청의 발표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평판이라는 추상적인 가치와 연결되면서, 또 LG의 저력을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바로 연구개발입니다.

LG는 유독 연구개발을 강조합니다. 1월24일부터 25일까지 경기도 이천에 있는 인화원에서 한 해의 경영전략을 수립하는 글로벌 CEO 회의가 열렸습니다. 무려 20시간의 마라톤 회의가 열린 가운데 구본준 부회장은 연구개발의 가치를 역설했습니다.

구 부회장은 "연구개발은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원천이자, 기술과 제품 리더십을 확대하고 밸류게임으로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전제조건”이라면서“어려울 때일수록 단기성과에 연연해 연구개발 투자를 소홀히 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마곡 LG사이언스파크를 중심으로 계열사 간 융복합 연구뿐만 아니라 외부와의 연구 협력도 강화하고, 훌륭한 인재를 확보하는 일에도 나서야 한다는 뜻입니다.

평판은 단기간에 생기거나 좋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이유로 해리슨 폴의 자료만 보고 LG의 높아진 평판을 단편적으로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상대적이고, 추상적입니다. 그러나 LG가 걸어온 길과 내부의 문화, 여기에 연구개발에 집중하는 사풍은 LG가 오랜기간 축적한 평판의 품격을 잘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LG가 완전무결한 기업은 아닙니다. LG전자는 스마트폰 사업이 어렵고, LG디스플레이도 중소형 OLED 시장 판로를 열어야 하는 등 어려움이 많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마냥 순조롭게 넘기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왜 LG가 사람들에게 좋은 소리를 듣는지, 그것 하나는 확실히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