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조태진 법조전문기자/변호사 ]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미투(Me too) 현상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이른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해 달라는 내용의 청원이 빗발치고 있다.

우리 형법 제307조 제1항은 ‘진실한 사실’을 알려도 명예훼손으로 인정될 경우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자신이 가해자로부터 입은 성폭력에 대해 공개적으로 도움을 청하려 해도 오히려 가해자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처벌 받을 것이 두려워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문제해결에 나서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물론 피해자의 진술이 ‘진실’ 되고, 그것이 ‘오로지 공익에 관한 것’이라면 미투 선언을 한 피해자라도 처벌을 면할 수 있다(형법 제310조 참조). 성폭력 사실을 주변에 알려 보호받으려 했다는 사실 자체는 공공연하게 가해자의 명예를 훼손한 것이지만, 만약 그것이 오로지 공익적 목적을 위한 것이었다면 위법성이 없다고 볼 수 있어 범죄 자체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위법성을 없애기 위한 요건인 ‘오로지 공익에 관한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에 대해 대법원은 “오로지 공익에 관한 것이란 널리 국가ㆍ사회 기타 일반 다수인의 이익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특정한 사회집단이나 그 구성원 전체의 이익에 관한 것도 포함된다고 할 것인바,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인지 여부는 적시된 사실 자체의 내용과 성질, 당해 사실의 공표가 이루어진 상대방의 범위, 그 표현의 방법 등 그 표현 자체에 관한 여러 사정을 감안함과 동시에 그 표현에 의하여 훼손되거나 훼손될 수 있는 명예의 침해 정도 등을 비교ㆍ고려하여 결정하여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대법원 1997. 4. 11. 선고 97도88 판결, 대법원 2007. 12. 14. 선고 2006도2074 판결 등 참조).

막상 판례만으로는 어디까지가 공익에 관한 것이고, 어디서부터가 공익과 무관한 것인지의 기준점을 찾기 어렵고, 법을 따르는 일반 국민들은 물론, 형사처벌 여부를 종국적으로 판단해야 할 판사마다도 충분히 다른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부분이다.

이 이유로 대부분의 국가들에서는 ‘진실인 사실’을 공개적으로 알리는 행위에 대해서는 명예훼손죄로 처벌하지 않으며, 지난 2015년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UN Human Rights Committee)는 대한민국 정부에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 등 권고를 담은 최종 권고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현행 법률과 같이 애매모호한 기준으로 공익성의 여부를 판단해 처벌을 한다면, 자칫 처벌이 두려워 진실규명을 위한 폭로를 회피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검증되지 않은 사실이 미투 선언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사회적 인격 살인’의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특히 근래 유명인들을 대상으로 한 미투 선언이 잦아지고 있는 만큼 허위의 사실을 내세워 미투 선언을 하는 사례에 대해서는 미투 현상의 본래적 취지가 훼손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엄중한 수사와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법률적 관점에서 고려할 수 있는 것은 타인으로 하여금 형사처분 또는 징계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공무원 등에 허위의 사실을 신고한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무고죄(형법 제156조) 규정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미투 선언을 비롯한 명예훼손과 관련한 사건에 대해 그것이 ‘진실인 사실’임을 전제로 자유로이 진술하도록 하되, 진위 여부는 반드시 수사기관을 통해 밝히고, 고소를 접수받은 수사기관은 당사자 간 적극적인 대질 신문, 거짓말 탐지기를 이용한 적극적인 수사에 나선다면, 미투 선언으로 불측의 피해자가 발생하여 불특정 다수의 국민들로부터 ‘마녀사냥’을 당하고 ‘인민재판’을 받게 되는 경우는 상당히 줄어들 것이다.

요즘 각계각층의 미투 선언으로 ‘진실게임’에 푹 빠진 대한민국이 불필요한 혼돈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미투 현상이 가져다주는 순기능적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법률시스템적인 보완이 필요한 시점이다.

▲ 조태진 법조전문기자/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