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견다희 기자]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있는 한 무역회사는 회식을 없애기로 했다. 술이 오가다 보면 실수가 있을 수도 있다는 우려에 불미스러운 일을 미리 막자는 뜻에서 직원들이 회의를 통해 결정한 것이다.

최근 각계각층에서 성폭력과 성추행 추문이 터져나오면서 남성들이 여성과 접촉을 피하기 위해 회식을 하지 않기로 하면서 자영업자들이 속을 끓이고 있다.  동시에 맛집에서 저녁을 먹고 2차로 게임을 즐기는 등 회식문화도 바뀌고 있어 업태별로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성추행 파문으로 우리 사회에서 알게모르게  ‘펜스룰’이 퍼지면서 새로운 남녀 차별의 벽을 쌓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펜스룰은 마이크 펜스(Mike Pence) 전 미국 부통령이 "부인이 없는 곳에서 다른 여성들과 함께 자리를 갖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한 이후 생긴 신조어다. 그런데 발음은 같지만 뜻은 전혀 다른 펜스(fence)가 우리사회를 편가르기 하고 있는 것이다.

펜스룰은 직장내 남녀 차별에 그치지 않고  불똥이 기업체 주변의 소규모 자영업체로 튀고 있다는 게 문제다.  회식 ‘금지령’은 물론 회식을 하더라도 여직원은 빼고 규모를 줄이고, 아니면 시간을 단축해서 하는 탓에 자영업자들은 매출 타격에 울상을 짓고 있다. 

▲ 12일 오후 7시 30분 종로3가에 있는 치킨은 한참 손님들도 북적여야 하지만 몇몇 테이블에만 손님이 앉아 있다. 사진= 이코노믹리뷰 견다희 기자

서울시 종로구에 있는 종로3가는 회사가 밀집돼 있어 평일 저녁에도 직장인들이 회식 장소로 많이 찾는 곳이다. 그러나 종로3가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은 요즘 부쩍 줄어든 매상에 한숨을 쉬고 있다.

종로3가에서 치킨매장을 운영하는 윤모씨(53세)는 13일 이코노믹리뷰에  “요즘 연일 성폭력, 성추행 얘기가 나오면서 자영업체 매출이 영향을 받고 있다”면서 “기업들이 회식을 못하게 하니  십여명 오는 단체 손님들은 힘들고 서너명씩 오는 게 보통”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최저임금 인상에다 임대료, 원재료 값 다 올라 힘든데 손님들까지 줄어드니 정말 장사하기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한 치킨점에서 만난 직장인 고모씨(31)는 “회사 측에서 남자사원을 따로 모아서 밥을 먹으면서  가급적 이성과 식사하지 말고 회식도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그는 “요즘은 회사에서도 회식을 자제하자는 분위기라 직원들끼리 퇴근 후 다같이 어울리는 자리가 별로 없다”고 덧붙였다.

반면 직장인들이 회식장소로 자주 찾는 외식 프랜차이즈 놀부부대찌개는 매출 감소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넓은 면적에 좋은 입지를 가지고 있는 외식 프랜차이즈들은 여전히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다고 업체들은 입을 모았다.

놀부부대찌개 가맹본사인 놀부 관계자는 "미투가 시작된지 얼마 되지 않아 그에 따른 매출감소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요식업에도 온도차가 있었다. 소규모 매장은 매출이 줄어 고민이지만 대형 프랜차이즈 외식업체는 오히려 매출이 오르고 있는 것이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 소규모 요식업 자영업자만이 아니다. 노래를 부르며 함께 술을 마실 수 있는 노래방은 회식의 단골 장소였으나 최근 노래방을 찾는 손님들은 크게 줄었다.

종로3가에서 노래방을 운영하고 있는 오모씨(49세)는 “회식도 자제하는 분위기라 주변 상인들도 힘들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면서 “최근에 미투 운동이 확산되면서 회식을 하더라도 간단히 식사만 하고 술이나 노래방은 잘 찾지 않아 손님이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그는 "임대료가 오르고 인건비도 올라 가뜩이나 힘들다"면서 "인근 직장인들이 주로 찾는 곳인데 직장인들이 계속해서 오지 않으면 문을 닫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서울 종로구 광화문에서 근무하고 있는 직장인 연모씨(29·여)는 “요즘 회식 문화가 많이 바뀌었다”면서 “1차에 술마시고 2차로 노래방을 가기보다는 1차로 맛집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2차로 카페를 가거나 VR(가상현실)게임을 하러 가는 등 예전과는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엔 무조건 회식에 다 참여해야했지만 요즘에는 삼삼오오 여자끼리 남자끼리 자기 취향이 맞는 사람들끼리 소규모로 회식을 한다”고 덧붙였다.

 모든 회사에서 여성의 접촉을 차단하고 문제를 회피하는 것은 아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며 건전한 기업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기업들도 있어 이런 기업들을 모범사례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 아모레퍼시픽 윤리강령. 출처= 아모레퍼시픽

종합식품기업 CJ제일제당은 1990년대부터 '님문화'를 운영하고 있다. 님문화는 직책을 부르지 않고 이름 뒤에 님을 붙여 사내에서 직책에 관계없이 평등함을 강조하고 있다. 또 '하나의 주종으로 1차까지'라는 회식에 관한 사칙도 운영하고 있다.

화장품기업 아모레퍼시픽도 '119'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119제도는 '회식은 1차에 1가지 주종으로 9시까지'라는 뜻으로 CJ제일제당과 비슷하다. 또 회사에서 불합리한 일을 당했을 때 언제든 전화나 온라인으로  신고할 수 있다.

‘이미지 21’ 하민회 대표는 “회사 내에서 여성들과의 접촉을 차단하는 것은 여성들을 사회에서 고립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다”라면서 “회사에서 어떤 상황에서도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고 할 수 있는 예절교육을 해야지 무조건 차단하는 건 문제를 해결이 아니라 그저 회피하는 것이고 바꾸지 않는다는 고집밖에 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하 대표는 "이는 또 다른 사회 문제를 낳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주당에서 디지털소통위원장을 맡고 있는 최민희 전 국회의원은 ‘미투(Me,too · 나도 당했다)운동’의 정의와 조건에 대해 명확히 할 것은 당부했다.

첫째, 성별이 무관하다. 둘째, 성폭력 피해자들을 드러내고 보호하는 것이 목적이다. 셋째, 여성피해자들이 많기 때문에 여성이 주도하지만 남성이 적은 아니다. 넷째, 성폭력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의 느낌을 간섭해서는 안된다. 다섯째, 펜스룰은 술자리 회식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일상 업무에서의 여성 배제를 말하는 것이다.

최 전 의원은 “이를 우리의 현실에 적용하면 '권력관계', '직업적 훼손과 현재·미래의 훼손' 그리고 성범죄 등 이 세 가지가 결합됐을 때 미투로 볼 수 있다”면서 “그래야 무작정 광범위하게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투운동이 잘 진행되기 위해서는 ‘경청’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미투운동에 대한 정확한 정의와 조건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왜곡된 성의식을 바꾸고 건전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펜스룰이 아닌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피하고 외면하는 펜스룰은 또 다른 사회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