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계를 사랑한 남자,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출처=1973 Dokfilm Picasso de Lucien Clergue Condor Films

[이코노믹리뷰=김태주 시계 전문 페이지 <블랙북> 운영자] 금, 비트코인, 석유보다 더 안전한 투자를 꼽는다면 ‘피카소’라는 농담이 있다. 피카소가 세상을 떠난 1973년 당시 피카소는 13,500점의 그림, 10만 점의 판화, 3만 4천 점에 달하는 삽화를 남겼다. 즉, 역사상 가장 다작하는 예술가였다. 2015년 크리스티에서 “알제의 여인”은 1억 7900만 달러에 팔렸다. 경매에서 팔린 그림 중에 지금까지도 가장 비싼 그림이다. 이 사람은 문란함으로 후세에 욕을 먹을 정도로 많은 여인들과 염문을 뿌렸고, 92세로 생을 꽉꽉 채운 뒤 세상을 떠났다. 미국 추상표현주의 화가 잭슨 폴락은 피카소를 이렇게 표현했다. “망할 피카소. 그는 모든 걸 다 했어.”

 

모든 걸 다 한 남자가 가진 시계

20세기 미술사에 피카소만큼 영향을 준 사람을 꼽으라면 답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만큼 독보적으로 위대했던 인물이다. 동시에 피카소는 욕심이 많기로 유명했다. 모든 여인을 다 가지고 싶어 했고, 많은 작품을 그리고, 비싸게 팔고, 오래 살고 싶어 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다 이뤄냈다. 부, 이성, 명성, 예술을 양손에 두 개씩 쥐고 있는 남자는 자신의 손목에 어떤 시계를 올렸을까. 현재 그 행적은 묘연하지만 파블로 피카소의 손목에 채워졌던 세 가지 시계가 사진 속에 남아있다. 파블로 피카소가 생전에 가장 사랑했던 시계들의 자취를 추적해본다.

 

가장 완벽한 예거 르쿨트르의 시계

▲ 유수프 카쉬(Yousuf Karsh)가 촬영한 파블로 피카소의 모습. 출처=1973 Dokfilm Picasso de Lucien Clergue Condor Films
▲ 사진에 노출된 예거 르쿨트르 트리플 데이트 문페이즈 골드. 출처=1973 Dokfilm Picasso de Lucien Clergue Condor Films

사진 속 피카소의 초상화는 1954년 유수프 카쉬라는 사진작가가 촬영했다. 그는 유명인사들의 초상을 찍기로 이름이 알려져 있었는데, 그의 작품 중 단연 가장 유명한 것이 피카소의 초상이다. 피카소가 촬영되었다는 이유만으로 7000달러에 팔린 이 사진은 피카소의 시계가 확실하게 찍힌 사진으로도 유명하다. 이 시계는 1940년대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예거 르쿨트르의 트리플 데이트 문페이즈 골드다.

 

▲ 예거 르쿨트르 트리플 데이트 문페이즈 골드로 판단되는 피카소의 사진. 출처=1973 Dokfilm Picasso de Lucien Clergue Condor Films
▲ 예거 르쿨트르 트리플 데이트 문페이즈 골드. 출처=예거 르쿨트르

예거 르쿨트르 트리플 데이트 문페이즈 골드는 피카소가 생전에 가장 자주 착용했던 시계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중요한 일, 혹은 일상 속에서 가장 자주 목격된다. 이 모델은 예거 르쿨트르의 빈티지 중에서도 가장 완벽한 빈티지로 평가를 받고 있는 시계로, 2008년 자프 바샤가 쓴 예거 르쿨트르 가이드북(Zaf Basha's Jaeger-LeCoultre book)의 표지로 사용된 모델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완벽한 롤렉스의 시계

▲ 개리 쿠퍼(Gary Cooper)가 선물한 아메리카 원주민 머리장식을 쓰고 롤렉스 GMT 마스터를 착용한 피카소의 사진. 출처=1973 Dokfilm Picasso de Lucien Clergue Condor Films

1960년 에디 노바로(Eddy Novarro)의 초상화에도 피카소의 시계가 찍혀있다. 서부영화 영웅으로 유명한 게리 쿠퍼(Gary Cooper)가 그에게 선물로 준, 아메리카 원주민 머리 장식을 쓰고 있는 사진이다. 이렇게 롤렉스 GMT는 체 게바라와 수많은 전설의 인물들, 그리고 피카소도 찬 시계다. 전설의 인물들이 꼭 소유하고 싶었던 스포츠 시계로는 역사적으로 롤렉스의 모델들만이 그 대부분의 자리를 차지한다.

 

브랜드만으로 완벽한 파텍필립의 시계

▲ 화보 속 파텍필립 2497을 착용하고 있는 피카소. 출처=1973 Dokfilm Picasso de Lucien Clergue Condor Films
▲ 화보 속 파텍필립 2497을 착용하고 있는 피카소. 출처=1973 Dokfilm Picasso de Lucien Clergue Condor Films

파텍필립의 시계를 차고 있는 유명한 사람들의 역사 속 사진을 찾는 것은 건초더미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같다. 최고의 브랜드지만 파텍필립 시계를 차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과시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피카소 역시 파텍필립을 착용했던 인물 중 하나다. 피카소가 파텍필립을 착용하고 찍은 사진은 1973년 이름이 확인되지 않은 작가가 찍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화보 속 피카소는 상의를 탈의를 한 상태에서도 시계를 착용하고 있는데, 그 모습으로 보아 피카소는 시계를 수집하는 데 열중하고 있었던 ‘마니아’가 분명하다고 판단된다. 사진 속 피카소의 손목에는 파텍필립 2499와 함께 파텍필립의 걸작이라 불리는 2497이 채워져 있다. 트리플 데이트 문페이즈 모델이다.

 

최고가 선택한 최고

피카소는 사후가 아니라 생전의 삶에서 부유했던 드문 화가다. 예술가가 유일하게 가지지 못하는 돈까지 소유했던 그를 보면, 잭슨 폴락의 일갈이 이해된다. 그가 즐겨 찼던 세 시계는 현시대에서 “가장 가치 있었던 빈티지 시계”로 평가받으며 유명인이 착용하지 않았더라 해도 그 자체로 가치를 인정받는 시계들이다. 그의 작품이 고전적임과 동시에 시대 초월적이라고 평가를 받는 것처럼, 그는 시계마저도 고전적이고 시대 초월적인 취향을 갖고 있었다. 피카소가 착용했던 시계들은 현재 사진으로만 남겨져 있다. 아무런 기록도 없이 어느 날 사라져 버렸으니 시계의 행적을 쫓는 이들에게는 미스터리한 일이다. 모든 것에서 전설이 된 피카소는 자신의 시계마저도 이렇게 전설로 남겼다.

 

▲ 손목시계를 차고앉아 있는 여자(Seated woman with wrist watch). 출처=핀터레스트

사진의 작품은 1932년 피카소가 그린 <손목시계를 차고앉아 있는 여자(Seated woman with wrist watch)>다. 앞을 보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지만 때때로 시간을 확인하며 약속을 기다리는 모습을 한 번에 표현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작품이다. ‘시간’을 표현하기 위한 매개로서의 시계가 아니라 ‘시계’가 주체가 된 작품 속 시계는 매우 드물다. 하물며 추상적이고 생략적인 피카소의 작품에서 시계가 인덱스와 핸즈까지 명확하게 표현되어 있는 것은 확실히 인상적이다. 이렇게나 시계를 좋아하던 20세기 최고의 예술가가 선택했던 시계. 미스터리처럼 사라진 전설의 시계들은 어느 날 전설처럼 다시 등장할 것이다. 폴 뉴먼 데이토나처럼 말이다.

 

<참고문헌>

les-maitres-de-la-photographie, swisswatchexpo, Hodinkee, Revolution, A guide for the Collector by Zaf Basha

 

▶ 지구에서 가장 매력적인 시계 집결지 [타임피스 아시아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