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한영섭 내지갑연구소 소장] ‘군대를 막 제대하고 복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어느 날 고등학교 동창에게 연락이 왔다. 학교 다닐 때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었는데 군대 제대 하고 딱히 연락해오는 친구가 없어서 반갑기도 하고 심심해서 만나기로 했다.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친구가 솔깃한 이야기를 해왔다. 그 친구는 건강식품을 유통하는 곳에서 영업한다고 했다. 제품이 잘 팔려 급여가 300만 원이 넘는다고 했다. 무슨 제품인지 물어보니 따로 홍보를 많이 하지 않아서 잘 모를 거라고 했다. 홍보비를 아껴 제품이 싸다고 했다.

관심 있으면 한번 설명회 하는데 같이 가자고 했다. 처음에는 대학도 복학해야 한다고 안 간다고 했다. 집에 돌아서 며칠 지났다. 당시 형은 안정적인 직장에서 일하고 있던 터라 이제 막 제대한 나는 부모님으로부터 무언의 눈치를 받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초조했다. 300만 원 급여를 받는다는 그 친구가 떠올랐고 설명회에 따라갔다.’

앞선 이야기는 전형적인 다단계 대출사기를 당한 청년의 사례이다. 다단계 업체에서는 대출을 받게 했고 대출받은 대출금은 한 푼도 쓰지 못하고 업체에서 가져가고 제품도 받지 못했다.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저축은행 3곳에 700만 원의 대출이 남아 있는 상태다. 신용불량이 되면 인생 망친다고 하여 3년 동안 이자만 500만 원 넘게 상환하고 있었다. 행여 부모님이 아실까 봐 주변에 알리지도 못하고 혼자 고금리 이자를 상환하고 있었다.

이후 학교도 복학하지 못하고 있고, 아침 10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음식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일주일에 하루만 쉬고 일했다. 소득의 1/3이 이자 상환하는 데 쓰고 나머지는 자신의 생계비와 부모님 생활비로 쓰고 있어서 미래를 위한 저축은 꿈도 꾸지 못했고, 하고 싶은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오로지 휴일이면 피곤함에 온종일 잠만 잘 뿐이다.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면 되지...

부모님께 도움을 청해보지 않았냐는 말에, 그는 어떻게 이야기를 하느냐고 했다. 자신이 멍청하게 잘 알아보지 않고 사기를 당한 거라 어떻게든 혼자 해결하는 것 낮다고 했다. 변변한 직장도 못 다니고 대출까지 있다고 하면 부모님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 했다. 그리고 부모님 잔소리에 숨 막혀 더 힘들 거란 이야기다. 그래서 그는 3년 동안 이야기하지 않고 연체도 되지 않도록 진짜 열심히 상환했다.

상담하면서 절대 주변에 알리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주변에서 알면 너무 부끄럽고 한심하게 생각할 거라 조용히 해결하고 싶다고 했다. 다행히 이 청년은 채무상담을 통해 고금리 대출을 저금리로 전환을 준비하고 있다.

채무자는 죄인인가?

우리 사회는 피해자를 오히려 범죄자 취급을 한다. 최근 사회적으로 쟁점이 되는 ‘#Me too' 운동이 나오기 전에 성폭력의 피해자들은 사회적으로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하지 못했다. 이야기하면 ’네가 처신을 잘못해서 그렇지‘ 라고 2차 폭력이 가해지기 일쑤다. 또한, 이러한 사회적 시선 때문에 움츠러들게 되고, 더 나아가 자기를 혐오하기 쉽다. 이러한 사회적 환경 속에서 용기를 내서 말하기란 쉽지 않다.

채무자도 ‘빚진 죄인’처럼 자신의 부채 이야기를 꺼내 놓지 않는다. 앞서 청년도 금융피해자 임에도 불구하고 몇 년간 주변 사람에게 알리지 못했다. 돈이 없고, 부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어느 순간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이 되었다.

현대는 금융 자본주의사회다. 달리 이야기하면 금융 즉 부채로 경제가 돌아가고 있다. 가계부채가 1,400조 원이 넘었고, 20대 가구 중 약 50%가 부채를 보유하고 있으며, 30대 가구도 약 70%가 부채를 보유하고 있으니 부채는 이미 일상화되어 있다. 부채가 있는 것은 부끄러운 일도 아니고 수치스러운 일도 아니다. 심지여 정부에서는 빚내서 공부하고, 집 사고, 결혼하고, 창업도 하라고 권하지 않느냐.

‘빚밍 아웃‘하자

지금과 같은 환경에서 빚을 내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더욱이 처벌을 받아 마땅한 금융 사기꾼들을 잡아넣어야지 그리고 이것을 미리 막지 못한 정부와 사회를 욕하는 것이 마땅하다. 피해자는 구제해야지 혐오의 대상이 아니다. 또한,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기본권을 위해선 대출이 아니라 복지가 필요하다. 지금 우리 사회는 생활에 꼭 필요한 필수재를 대출로 조달하게 만들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학자금이다. 부모와 사회가 대학을 가지 않으면 사람 취급 하지 않으면서 대학 학비는 세계 최고수준이라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이라면 학비는 사회가 공공재원(세금)으로 공급해주는 것이 옳다.

현재 사회는 정상적으로 법과 제도가 작동되지 않는다. 정치인들은 자기 밥그릇 챙기기 바쁘고, 기득권들은 자신들만의 성을 더욱 단단히 무장할 뿐이다. 안타깝게도 당사자가 나서지 않으면 변화를 기댈 수 없다. 부채 문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지금 보다 훨씬 더 많이 말해야 한다. ‘나 빚이 있어요!’라고. 우리 함께 ‘빚 밍아웃’하자!

한영섭 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 부설 내지갑연구소 소장. 대기업을 다니다 사람들은 왜 돈 때문에 스트레스 받고, 고통 받는지 알고 싶어 회사를 때려치우고, 돈에 대해서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다. 특히 청년의 생활경제, 금융, 부채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칼럼 <에코세대의 경제학>은 청년들의 경제 현실과 사회를 바라보는 이야기를 통해 더 좋은 삶을 위한 살림살이 경제를 말하고자 한다. mywalletlab@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