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문주용 편집국장] 평창 동계올림픽 축제가 안겨준 감동은 지금도 생생하다. 큰 영웅신화가 아니라, 작은 영웅들의 당당함에 국민들은 환호하고 찬사를 보냈다.

대회 초반 임효준 선수가 깜짝 금메달을 딸 때 이번 올림픽 역시 거인들의 잔치가 될 줄 알았다. 승리자들에게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리라 예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울림이 컸던 것은 올림픽 영웅들의 신화보다, 실패 속에 잦아들지 않았던 작은 영웅들의 포효였다.

올림픽 3연패에 실패한 이상화 선수(스피드 스케이팅)는 1등 한 일본 선수와 함께 링크를 돌면서 눈물을 쏟았다. 그 모습에 국민들이 눈시울을 붉혔다. 두 선수가 포옹한 장면은 평창올림픽축제 최고의 명장면이었다. ‘배추보이’ 이상호가 은메달에 만족해하자, 국민들은 ‘대견하다’며 아낌없이 박수를 보냈다.

최고 영웅은 금메달리스트 윤성빈, 최민정, 이승훈 중 누구도 아닌, 은메달의 여자 컬링팀이었다. ‘영미’를 시작점으로 얽히고설킨 ‘팀 킴’은 결승전에서 힘없이 무너졌지만, ‘우린 잘했다’며 다들 만족해했다. 1등을 했다면, 이보다 더 환호했을까 의문이 들 만큼 즐거운 마음으로 2등 순위에 만끽했다. 경기에 집중하며 승리를 뽑아내려는 그들의 몸짓에 국민들은 열광했다.

연속 패배로 꼴찌에 머물렀지만, 남자 아이스하키팀은 ‘최고 등급 내의 꼴찌’였지만 외국계와 한국계가 섞여 멋진 팀워크를 연출, 꼴찌여도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강력한 우승후보들과 몸싸움하며 뒹구는 그들의 버거운 자부심에 다들 안쓰러웠다.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은 또 어땠나. 단일팀으로 꼭 한 번 승리를 바랐지만,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일본팀에게도 두 번이나 분패했지만 그들은 아름답기만 했다. 국민들은 우리 선수끼리 경쟁하다 탈락해도, 예약된 금메달리스트를 위해 페이스메이커를 하다 뒤처져도 그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그들의 열정 앞에 순위는 무의미했고 국민들 호응은 드높았다.

우리가 언제 이렇게 변했을까. 금메달이 아니라는 이유로 버럭 화를 내던 선수(이번엔 캐나다 선수가 그랬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지만)가 아니었고, 1등 못 하면 변명할 자격도 주지 않던 국민들이 아니었다. 국민들은 우리나라를 대표한 누구든 대견해 했고, 성적과 상관없이 선수들이 고개 숙이지 않았다. 우리는 이렇게 갑자기 성숙해 있었다.

현실의 삶에서 우리들 대부분 ‘2등 이하’다. 꼴찌일지도 모른다. IMF(국제통화기금) 위기 후 신자유주의적 구호 “부자 되세요“가 전 국토를 휩쓴 뒤, 세상은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 되어버렸고 우리는 그 잊혀진 인생이다.

‘언젠가 나도 1등이 될 것’이란 헛된 기대 속에 몸을 만신창이로 굴렸지만, ‘1등 강박’에 정신까지 망가뜨렸지만, 10%가 안 되는 상위 소득자들이 국민경제적 부의 90%를 가져가는 세상을 막지 못했다.

길거리를 바쁘게 스쳐가는 이들, 콩시루 같은 지하철 속에 부대껴야 하는 ‘너와 나’들, 소신보다 눈칫밥으로 직장생활을 버텨야하는 우리 10명 중 9명은 생활비에 허덕댄다. 또 학원비가 부족해 아이 눈치 봐야 하고, 결혼은 포기한 채 집 대신 할부로 구입한 차에 억지 만족하는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다. 상위 10%에 들어갈 가능성이 거의 없어졌음을 이젠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2등이라고, 패배자라 해서 절망할 필요는 없다. 성공 강박관념을 버리면 된다. 지금껏 버텨왔고 앞으로 버텨갈 것이다. 맘만 먹는다면 외롭지도 않을 것이다. 거기에 덧붙일 게 있다면 ‘연대’다. 고인이 된 신영복 교수는 이런 말을 남겼다.

“머리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고, 마음 좋은 것이 손 좋은 것만 못하고, 손 좋은 것이 발 좋은 것만 못한 법입니다. 관찰보다는 애정이, 애정보다는 실천적 연대가, 실천적 연대보다는 입장의 동일함이 더욱 중요합니다. 입장의 동일함 그것은 관계의 최고 형태입니다.”(저서 <담론>에서)

똑같은 처지는 아니더라도,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연대하려 손을 내미는 마음이 우리 모두 절실하다. 그리고 우리는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자. 또 남 눈치 보며 망설이다 후회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자. 성공보다는 최선을 다하기로 목표 삼자. 1등보다 더 좋은 2등을 위해 손잡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