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일 오후 청량리역 일대 모습. 청량리역 앞으로 옛 롯데프라자 터가 공사중이다. 이 자리에는 오피스텔이 들어설 예정이다.(사진=이코노믹리뷰 정경진 기자)

[이코노믹리뷰=정경진 기자] 1975년 그 당시 무려 36만1000여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그해 최고의 흥행영화로 꼽힌 작품이 있다. 바로 <영자의 전성시대>다. 요즘 젊은 세대에게는 생소한 이름이지만 이 작품은 이후 70~80년대 넘쳐나기 시작한 창부영화의 효시이자 한국영화 대표작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그리고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곳이 바로 서울 청량리588이다. 청량리588의 정확한 주소는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588번지다. 이곳은 지금으로부터 40여년 전부터 청량리588(오팔팔)이라고 불렸다. 청량리역에서 나와 왼쪽 골목길로 들어가면 붉은 빛이 비추고 있는 커다란 유리창의 집들이 죽 늘어서 있고, 그 안에서 화려하게 꾸민 채 호객행위를 하는 윤락여성이 있는 모습을 희미하게 기억하는 이들이 있겠으나 이제 이곳은 강북권에서 가장 투자가치가 높은 곳 중의 하나로 부상하고 있다.

과거의 청량리588… 현재는 ‘천지개벽’

▲ 6일 오후 청량리588 거리 모습. 철거가 시작된 가운데 청소년 출입 금지를 알리는 황량한 간판만이 남아있다.(사진=이코노믹리뷰 정경진 기자)

“어떻게 하면 용의 눈에 눈동자를 그려 넣을 수 있을까.”

수백개의 성매매 업소 집결지였던 청량리588은 사실 20여년 전부터 개발 압력이 높았다. 1994년 도심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됐지만 윤락가 업주들의 반발로 좀처럼 첫 삽을 뜨지 못했다. 이곳은 불과 5년 전인 2013년까지만 해도 대낮에 업소를 찾는 남성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청량리4구역 재정비촉진구역으로 지정돼 복합건축물 5개동이 재개발될 예정이었지만 사업 추진이 지지부진하면서 주변 아파트값 역시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2003년 균형발전촉진지구로 지정된 후 10년 동안 개발 논의가 이뤄졌지만 집창촌과 주변 상인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사업추진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0년 당시 서울시는 청량리588 일대와 성바오로 병원, 왕산로변 상가 등을 포함해 통합 개발할 예정이었지만 개발 속도를 내기가 쉽지 않았다. 이에 서울시는 2013년 당초 계획됐던 통합개발이 아닌 분리개발로 방식을 바꿨다. 분리개발로 바뀌면서 성바오로 병원과 왕산로변 상가 일대는 존치하고 청량리588 집창촌을 중심으로 개발이 변경되면서 본격적인 개발에 속도가 붙었다.

병원 등 1만7031㎡부지가 개발구역에서 제외돼 4만3207㎡만 개발이 추진되게 된 것이다. 4만3207㎡ 부지에는 용적률 990%를 적용받은 주상복합 65층짜리 2개동과 62층짜리 2개동으로 개발이 추진됐다. 비록 분리계획으로 변경되면서 당초 계획된 소공원과 어린이 공원은 폐지됐지만 청량리 588 개발사업의 핵심인 랜드마크 타워는 기존 계획대로 진행을 했다.

롯데건설은 이곳에 주상복합단지를 짓는다. 2021년까지 최고 65층 규모의 주상복합·호텔·쇼핑몰로 재탄생시킬 예정이다. 아파트는 전용면적 84~101㎡ 총 1425가구(일반분양은 1297가구) 규모로 분양할 예정이다. 또 오피스텔도 총 528실이 공급되며, 이 중 417실을 일반 분양한다. 오는 4월 청량리588을 재개발한 ‘청량리 롯데캐슬’(가칭)도 드디어 분양에 나서면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20여년의 숙원사업이 마침내 결실을 맺게 되는 셈이다.

청량리588 인근 동부청과시장 역시 재개발이 답보상태였지만 지난 2016년부터 변신을 준비 중이다. 동부청과시장은 동대문구 용두동 39-1번지 일원으로 이 지역은 재래시장육성특별법에 따른 시장정비구역으로 용적률이 무려 1000%에 달하고 주거용 건축비율도 85%까지 인정받았다. 최초 사업권자인 금호산업이 워크아웃으로 사업이 중단됐지만 2015년 보성그룹 자회사인 청량리엠앤디가 용지를 매입하며 사업이 진척되기 시작했다. 시공은 한양이 맡으며 완공목표는 오는 2021년이다. 최고 59층 높이의 건물과 공동주택 1160가구 및 상업시설 등이 건축될 예정이다. 현재 이곳은 철거 마무리 단계다.

동대문구청 임동훈 주무관은 “동부청과시장의 경우 외형상으로는 사업을 당장 진행해도 무리가 없지만 재래시장이다 보니 시장 상인들과의 이해관계 등이 다소 복잡하다”라며 “단정짓기는 어렵지만 이해단계 조정 등이 상당수 진행된 만큼 청량리588과 큰 시각에서는 궤도를 같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역 아성 넘보는 ‘청량리역’

▲ 지난 6일 찾은 청량리역 일대. 청량리역 오른편 옛 롯데프라자 터는 공사가 한창이다.(사진=이코노믹리뷰 정경진 기자)

청량리역 일대가 각광받는 것은 비단 청량리588의 개발 때문만은 아니다. 향후 청량리역 일대가 서울 동부권 최고의 상업 중심지가 될 것이란 기대감 역시 근거 없는 자신감만은 아니다. 현재 1호선과 경의중앙선, 경원선이 다니고 있는 청량리역은 지난해 12월 경강선KTX가 개통되며 교통집결지로 면모를 보이기 시작했다. 경강선을 이용하면 서울에서 강릉까지 86분 만에 도달이 가능하다. 여기에 강남과의 접근성을 향상시키는 분당선 연장선이 올해 말부터 운행된다. 철도시설공단 관리자는 “분당선 연장선은 현재 설계 중이며 올해 말 운행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분당선은 왕십리역에서 선릉~정자~수원까지 이어진다.

분당선이 연장되면 청량리역에서 선릉역까지 15분 내 도착할 수 있게 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김현미 국토부장관이 GTX A,B,C 노선의 2025년 완전 개통을 공언하면서 GTX B노선 예비타당성 결과에도 파란불이 켜진 상태다. 광역급행철도망(GTX)은 총 211㎞로 파주와 동탄을 잇는 A노선, 송도와 마석을 연결하는 B노선, 의정부와 금정을 잇는 C노선 등 3개 노선을 서울역, 청량리역, 삼성역을 주요 거점으로 해 방사형으로 교차되도록 구축한다.

국토교통부 이광민 민자철도팀 사무관은 “KDI에서 예비타당성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며 “사업규모가 크기 때문에 타당성 조사에 시간이 걸릴 수 있지만 사업성이 높다면 생각보다 빨리 진행이 될 것”이라며 “특히 청량리역은 GTX의 기본 축이라서 이 사업에서 제외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GTX를 이용하면 청량리역에서 여의도와 용산 등 주요 업무지구로 이동이 한층 수월해진다. 수서발 고속열차(SRT)를 청량리역에서 이용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현재 청량리역 환승센터를 중심으로 60여개의 버스노선이 갖춰져 있는 상황에서 이 같이 교통 환경이 개선이 될 경우 삼성역 못지않은 수준으로 도약할 것이란 평가를 하고 있다. 이러한 기대감은 청량리 집값을 끝없이 올리고 있다.

▲ 오는 6월 입주 예정인 롯데건설의 '동대문 롯데캐슬 노블레스' 단지 전경. 공사가 막바지에 접어들었다.(사진=이코노믹리뷰 정경진 기자)

지난 2015년 분양한 ‘동대문 롯데캐슬 노블레스’ 단지의 전용면적 84㎡ 분양가격은 5억2700만원에서 5억9600만원이었다. 2017년 초까지만 해도 분양권이 5억977만원~6억원 사이에 분양권이 거래되며 가격상승이 없다시피 했다. 그러나 올해 2월 같은 면적 분양권이 거래된 값은 8억9500만원으로 1년 사이에 3억원 가까이 올랐다. 전용면적 59㎡의 분양권 역시 지난해 1월 4억9000만원에 거래됐지만 올 1월 6억5395만원에 팔렸다.

청량리 역세권 아파트이자 재건축이 진행되고 있는 미주아파트는 1978년 9월 입주로 올해 40살이 되었다. 최고 15층 8개동 총 1089가구 규모다. 이 단지 역시 청량리역 개발과 함께 재건축이 진행되면서 매매가격이 뛰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이 단지 전용면적86㎡는 2016년 10월에만 해도 4억8000만원이었지만 현재 호가는 7억원에 이른다.

미주상가에서 공인중개사를 하고 있는 K공인중개사는 “청량리가 개발된다는 소식에 하루에도 10건이 넘는 상담이 들어온다”면서 “다만 그간 가격이 많이 올라서 이전의 청량리 이미지를 생각하고 구매 상담을 해온 사람들 중 아파트값을 듣고 놀라서 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이날 공인중개사 사무실에는 강남에서 한 투자자가 방문해 미주아파트 재건축 상담을 하고 돌아갔다.

강남도 한때는 그저 논밭에 불과했지만 현재 강남을 보며 당시를 떠올리는 사람은 없다. 청량리 역시 향후에는 집창촌이었던 과거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