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의 중요한 요소는 지수화풍(地水火風)이다. 地는 땅의 상태, 水는 배수와 상수 등 풍족하게 물을 얻을 수 있거나 흐르는 곳을 말하며 火는 온도 그리고 風은 바람이다. 이것은 인류가 정착을 하는 데 필요한 자연의 조건이었기에 그 힘을 이용하려는 것이 지혜의 출발이었다.

그렇게 풍수(風水)란 이 기본원리를 바탕으로 기세를 읽어 국운을 점치거나 자연을 이용한 방법으로 국가의 번성을 꿈꾸며 발전해왔다.

그러한 면에서 남산이라는 서울에 우뚝 솟아 있는 산은 큰 의미가 있다. 역사적으로도 그렇고 기능적으로도 그렇다.

조선왕조가 들어설 당시 번영을 위해 풍수적으로도 완벽함을 생각하며 설계했다. 그래서 모든 궁궐·관아·주거 등 도성 안의 모든 건물을 남쪽을 향해 앉게 설계했다. 그래서 당시 이름이 남산(南山)이 되었으며 지금까지도 그렇게 불리고 있다고 한다. 멋진 이름을 지닌 서울의 방패 역할을 하는 산들에 비하면 남산이라는 이름은 너무 단순하다. 하지만 당시 한양의 수도에 거주하는 모든 이들이 남산을 바라보며 앉았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한양 사람들과 남산은 특별한 관계인 것은 분명하다.

남산은 꽤 거친 산이다. 경사가 가파르고 경사가 가파르다는 것은 사람들이 생활하기에 불편하다는 것이다. 풍수적으로 보면 과거 한양으로 들어오는 기운은 남산의 정기가 내려와 평평해지는 곳이 사람이 살기 좋은데 그곳이 바로 남대문과 명동이다. 이 중 명동은 아직까지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싼 땅값을 자랑한다.

그리고 남산은 ‘해방촌’이라는 지역이 있는데 이 이름은 8·15 일제강점기의 해방 덕분에 생겨난 마을이라 해서 ‘해방촌’이라 불린다고 한다. 그리고 이 해방촌은 대한민국 최초의 대규모 판자촌이었다. 일제강점기 시절 남산 인근에는 일본인들이 모여 살았는데 그들은 주로 행상·노점·매춘·고리대금업 등을 했다. 그리고 남대문과 명동에서는 지금까지도 그 업종이 이어지고 있다.

가파른 산자락이 평지를 만나면 이렇게 사람들의 활기가 생기는 지역이 형성되는데, 주거 터가 되기도 하고 상업지역이 되기도 한다. 재테크 감각이 있다면 이런 지역의 투자를 눈여겨볼 만도 하다.

특히 남산은 조망권이 좋은데 이것은 1966년 12월 26일자 건설부 고시 제2986호에 의한 ‘노선미관지구 제3종 지정’으로 인해 이루어진 조망이다. 현재까지도 이 조망을 방해하는 건물을 지을 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산은 또 다른 비슷한 기운의 산을 마주하고 있는데 바로 북악산이다. 북악산의 모습과 조건도 남산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조망에서는 모두 좋지만 바라보는 방향과 기운이 다르기에 그들만의 매력이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남산은 북악산과 마주보고 있고 모두 가파른 산이다.

이 남산과 북악산에는 우리 현대사 아픔의 장소가 자리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안기부다. 이곳들은 풍수적으로 그 형세가 재미있다. 두 산(山) 모두 수도를 방어하는 역할과 기능을 지니고 있으며 현대사 군사정권시절 가장 힘이 강한 상징적인 곳이 네 곳 있다. 그것도 각각 두 군데로 청와대, 안기부, 보안사령부, 수도경비사령부다.

풍수 관점에서 보자면 서로 마주보는 기운이니 힘이 서로 부딪칠 수 있는 형세(形勢)인데 실제로도 이 기관들은 서로 충돌하며 부딪히는 일이 잦았다.

현재는 기관들의 위치가 변경되었고 부딪침 역시 그러한지는 알 수 없지만 당시의 상황을 보자면 상당히 거칠었던 것은 분명하다.

현재 남산 일대 중 용산 이태원 방향으로 가는 길들은 땅값이 상승하고 있으며 낙후한 해방촌 지역과 후암동 지역도 점차 땅값이 상승하고 있다.

수도의 산 기운 끝자락 지역은 언제나 풍요와 번영을 가져다줌을 참고한다면 그리고 그 시기를 인내할 줄 안다면 재테크로써의 풍수활용은 매우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설사 재테크가 아니더라도 도심 속에 조망권 좋은 남산의 정상에서 트인 기운을 맞이한다면 답답했던 일도 술술 풀릴 것이기에 이곳을 도심 속 기운을 받는 터로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