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이 되면 학교가 개학, 개강을 한다.

의대 본과 1학년의 3월을 기억한다. 생애 첫 카데바(시체) 해부실습의 포르말린 냄새와 싹 다 암기해야 할, 끝도 없는 신경, 혈관, 근육, 뼈의 해부학 명칭들.

사실, 지금 필자가 돌출입수술, 윤곽수술을 하는데 기본이 되는 해부학적 지식은 그 때 머릿속에 각인이 된 것이다.

 

족보이야기를 좀 하려고 한다.

필자는 청주한씨다. 청주 한씨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성 중 하나라고 한다.

‘한’이 바로 대한민국의 그 한(韓)이니 어쩐지 그럴 법 하다. 청주 한씨는 조선시대 왕비도 6명을 배출했다고 하는데 그것이 미모 때문인지, 재색을 겸비해서였는지는 모르지만 여하튼 아름다운 여배우 중에는 한씨가 참 많다. 한지민, 한효주, 한예슬, 한가인, 한지혜, 한고은, 한은정, 한채영, 한혜진..그런데 이 중 실제 한씨는 몇 명 되지 않고 예명이 많다고 한다.

놀랍게도 청주 한씨 족보의 첫 장은 고조선 이후 후조선의 태조, 문성왕부터 시작된다. 계속해서 마한의 무강왕, 원왕에 이어 왕자의 계보로 이어지다가 한씨 1대조로 이어진다. 이쯤 되면 필자에게 왕자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폼 잡고 싶지만, 사실 조선시대에 의원이라는 직업은 왕자는 커녕, 벼슬아치도 아닌 그저 중인 계급이었다.

이번에 필자가 쓰려는 족보 이야기는, 청주 한씨 이야기도 아니고, 진짜 어느 명문가의 족보이야기도 아니다. 바로 의대생시절, 그리고 병원 전공의시절의 ‘족보’ 이야기다.

의대공부는 정말로 뇌세포 안에 책 몇 권을 통째로 구겨 넣는 작업과도 같다. 아주 잔인하고 괴로운 일이지만,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요즘 같은 빅데이터가 구축된 시대에도 의사의 머릿속에 전문지식은 들어있어야 한다. 환자가 쓰러졌는데, 데이터 검색으로 대처법을 찾아볼 수는 없다.

의대 시험은 전날 밤새도록 달달 외운 것들을 시험지에 미친 듯이 쏟아내는 작업이다. 그렇게 ‘한 판’ 쏟아내고 나면, 바로 그 다음날 시험 볼 과목을 외우기 시작한다. 머리가 쓸 수록 좋아지는 게 맞다면, 나는 의대 공부를 마치면서 엄청나게 머리가 좋아졌을 것 같다.

그런데 세상에 더없이 미련한 것이, 모두 다 외우겠다고 마음 먹는 것이다. 사전을 A부터 Z까지 다 외우면 영어를 잘하게 되는 것이 아니듯이, 아무리 암기과목이라도 중요도가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이 소위 족보다.

의대에서는 매년, 늘 시험에 나오는 아주 중요한 것을 족보라고 부른다. 어느 집안의 가계 혈통을 가리키는 족보라는 말이, 대대로 내려오는 아주 중요한 문제나 정도(正道)라는 뜻으로 쓰이는 것이다.

족보에도 급이 있다. 안외우면 큰일 나는 것, 꼭 나오는 것은 대개 큰 별 몇 개와 형광펜으로 표시되며 ‘왕족’이라고 불린다. 왕족보의 준말이다.

왕족보를 안외우는 학생은 무모한 학생이다.

병원에서도 족보가 있다. 꼭 그렇게 해야만 하는 정석 이라는게 존재하는 것이다. 전공의 시절 수술에 들어가면 같은 수술이라도 집도하는 교수님에 따라 족보가 다르다. 어떤 교수님은 석션(suction)기계로 출혈부위를 흡인해야 하고, 어떤 교수님은 젖은 거즈로 출혈을 닦아 드려야 한다. 반대로 했다가는 수술장 분위기가 험악해진다.

늘 하는 돌출입수술이지만, 초심으로 돌아가 돌출입 수술의 왕족보는 무엇인가 생각해본다. 돌출입, 윤곽수술을 하거나, 받는 사람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족보는 무엇일까?

성형외과 병원이 넘쳐나고, 멋진 수술명칭에 최고의 의료진, 최고의 수술결과라는 홍보가 쏟아진다. 일종의 성형정보 과잉 상태다.

그러나, 진정한 수술의 고수는 자칭 명의라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의학자인 의사로서의 품격, 겸손함과 양심, 환자에 대한 배려심과 인성, 원칙과 안전을 지키는 정교한 수술솜씨와 실력, 풍부한 임상적인 경험,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제되고 아름다운 자연스러운 수술결과라고 생각한다.

수술이라는 테크닉 뿐만 아니라, 집도의의 진료와 수술에는 진심이 있어야 감동적인 결말도 있다. 의사가 수술을 보람있어 해야 마음도 따뜻해지고, 환자를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아야 정직해진다.

필자는 이 왕족보에 얼마나 근접한 의사일까 스스로를 되돌아본다.

심리학과 교수직을 때려치우고 갑자기 그림공부를 했던 김정운 전 교수는 감동하라, 감탄하라고 역설했었다. 부모의 감탄이 아기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듯, 감탄은 우리 삶의 동력이 된다고 한다.

필자가 의사로서 앞으로 만나게 될 돌출입 환자에게는 또 어떤 사연이 있을지 모른다. 늘 서로에게 공감하고 감탄하는 만남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