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2018년 1월10일 아일랜드 더블린 컨벤션 센터. 7000명의 유명 정재계 인사들이 참여한 리셉션이 열린 가운데 아일랜드 출신의 세계적인 파이터인 당시 UFC 라이트급 챔피온 코너 맥그리거가 초청됐다. 그렇게 현장의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갑자기 67세의 남성이 웃통을 벗고 챔피온의 앞을 막아섰다. 그는 코너 맥그리거의 바로 앞으로 다가와 허리에 손을 올린 후 파이터 특유의 도발을 감행해 모두의 폭소를 자아냈다. 유쾌한 장난이었다.

챔피온의 앞을 위풍당당하게 막아섰던 남자의 이름은 리처드 브랜슨. 글로벌 항공사 버진 애틀래틱을 비롯해 300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으며 2000년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은 세계적인 최고경영자(CEO)이자 모험과 기행을 좋아하는 괴짜다.

▲ 익살스러운 포즈를 취하고 있는 리처드 브랜슨. 출처=위키디피아

리처드 브랜슨의 도전, 기행
1950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리처드 브랜슨은 평범한 중류층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어렸을 때 난독증을 심하게 앓았다. 결국 17살에 학교를 자퇴하고 방황의 시간을 가지는 듯 했으나, <스튜던트>라는 잡지를 창간하며 사업의 길로 들어선다. 난독증을 앓았던 10대 청소년이 느닷없이 잡지를 창간한 순간, 도전과 기행으로 점철된 그의 역사도 시작됐다.

당시 교회 자히실에서 만든 <스튜던트> 잡지가 불티나게 팔리자 리처드 브랜슨이 다니던 학교 교장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넌 백만장자가 되거나, 감옥에 갈 것이다"

그는 우편사업으로 돈을 번 후 1970년 음반사 버진 레코드를 설립하고 당대의 인기 뮤지선들을 특유의 인간적인 매력을 앞세워 계약해 단숨에 영국을 대표하는 음반사로 성장시킨다. 이후 버진 레코드를 매각하지만, 음반 산업에 대한 열정을 거두지 않은체 1984년 버진 애틀래틱 항공을 설립했다.

버진 애틀래틱 항송사를 설립하게 된 계기가 재미있다. 그가 탑승해야할 비행기가 기체 결함으로 결항되자 그는 화를 내는 대신 곧장 전세기 가격을 현장에서 알아봤다고 한다. 그리고 공항에 '전세기를 빌리고 싶다'는 팻말을 들고 돌아다녔고, 결항으로 발을 구르던 사람들이 그에게 몰려들었다고 한다. 그는 그 사람들에게 돈을 걷어 전세기를 빌렸고 본인은 무료로 비행할 수 있었다. 그 순간 항공사를 차리겠다는 결심이 선 그는 브리티시 애틀랜틱 항공을 인수했다.

그렇게 탄생한 버진 애틀랜틱은 철저한 저가 항공사 전략으로 세계 주요 도시 취항을 이루며 빠르게 성장했다. 초기에는 다른 항공사의 견제로 재정이 악화됐으나 항공사 처음으로 기내 안마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재미있는 항공'을 표방하며 이후 승승장구했다. 여세를 몰아 그는 버진 애틀랜틱을 알리기 위해 직접 다리털을 제거하고 스튜어디스 복장을 한 상태에서 기내 서비스에 나서는 기행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냥 스튜디어디스 복장을 한 것은 아니고, 에어아시아의 토니 페르난데스 CEO와 2010년 포뮬러 원 시즌 우승자를 맞추는 내기를 제안했다가 진 후 벌칙처럼 벌인 행동이다.

▲ 리처드 브랜슨이 스튜어디스 복장으로 기내 서비스를 하고 있다. 출처=리처드 브랜슨 블로그

그의 사업영역은 다양하다는 표현을 넘어 '이렇게 일을 벌여도 되나' 수준이다. 유럽 내 휴대 전화 산업과 식수, 음료수, 영화, 웨딩, 금융, 심지어 금융산업에도 손을 댔다. 재미있는 것은 그가 진출한 산업 영역 중 1등을 한 사례는 거의 없다는 대목이다. 주력인 항공도 저가 항공사 중심인데다 진출하는 영역 모두 뚜렷한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도 나온다. 이에 리처드 브랜슨 CEO는 "우리는 인생의 80%를 일하는 것에 사용하는데, 왜 퇴근해서 재미를 찾으려고 하는가? 직장에서 재미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굳이 1등을 고집하지 않는 특유의 경영관과, 직장과 재미에 대한 그의 독특한 철학은 간혹 파격적인 마케팅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버진 애틀랜틱을 알리기 위해 스튜어디스 복장을 한 것은 비교적 얌전한 편에 속한다.

그는 버진 콜라를 미국에 알리고 코카콜라를 제압하겠다며 뉴욕 타임스퀘어 한복판에 탱크를 몰고나와 코카콜라 광고판에 콜라를 쏘아댔고 버진 모바일 홍보를 위해 영화 <폴 몬티>를 패러디, 중요부위만 가린 알몸 차림의 사진을 찍어 '굳이 그의 알몸을 궁금해하지 않는' 미국인들에게 뿌리기도 했다. 카리브해에 있는 영국령 버진 제도의 무인도인 네커 섬을 30만달러에 구입해 자신만의 휴양지로 만들기도 했으며 요트로 대서양 일주에 나섰다가 조난당해 익사 직전 구조되기도 했다.

▲ 리처드 브랜슨이 멀쩡한 얼굴로 강연하고 있다. 출처=위키디피아

우주, 그리고 하이퍼루프
리처드 브랜슨 CEO는 괴짜, 기인으로 알려졌으나 그가 정말 생각없는 괴짜나 기인이었으면 300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세계적인 CEO가 될리가 없다. 즐거움을 추구하며 모험을 통해 활로를 뚫고, 큰 꿈을 꾸었기 때문에 현재의 리처드 브랜슨이 있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리처드 브랜슨 CEO가 집필한 '닥터 예스'에는 그의 이러한 경영관이 잘 나온다. 그는 "시작하고 즐겨라, 과감하게 시도하라, 매 순간에 충실하라'고 역설한다.

그의 모든 것이나 다름없는 도전정신은 우주사업과 하이퍼루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는 오일머니에서 탈피해 데저트 실리콘밸리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왕자의 난으로 실세가 된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를 중심으로 새로운 국가 성장동력을 모색하고 있다. 실제로 사우디 공공투자기금은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과 비전펀드를 설립했으며 우버에 투자하는 등 ICT 전반에 큰 관심을 두고 있다.

사우디 공공투자기금은 지난해 10월27일 리처드 브랜슨 CEO가 이끄는 버진그룹 산하 우주항공회사에 총 1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우주비행과 위성발사, 우주 엔터테인먼트에 관한 협력이며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는 "버진과의 협력으로 사우디가 지향하는 지식 기반 경제에 대한 비전을 기대한다"고 발표했다. 사우디 공공투자기금의 투자는 버진그룹의 우주 관광 회사인 버진 갤러틱의 미래에 배팅한 결과다. 버진 갤러틱은 우주관광을 목표로 2004년 설립되었으나 아직 실제 우주비행에 나서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억원에 달하는 예약금을 건 사람들이 줄을 섰다. 이 외에도 그는 저가 인공위성 발사 전문기업인 원웹과 버진오비트 등을 보유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리처드 브랜슨 CEO와 테슬라 모터스, 스페이스 엑스를 이끄는 일론 머스크를 비교하기도 한다. 숙명의 라이벌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따르지만, 두 사람 모두 삶의 궤적과 방향성에서 묘한 교집합이 있기 때문이다. 어린시절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방황했고, 일찌감치 사업의 길을 선택한 것은 물론 이후 행보에서도 두 사람은 파격의 연속을 보여줬다. 결정적으로 '우주'에 대한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다.

하이퍼루프 영역에서도 두 사람은 경쟁하고 있다. 우주에서는 전기차 로드스터를 팰컨 로켓으로 쏘아올린 스페이스 엑스의 일론 머스크 CEO가 단연 우위지만, 하이퍼루프에서는 리처드 브랜슨 CEO도 만만치않다.

▲ 하이퍼루프. 출처=위키디피아

하이퍼루프는 진공관을 활용한 수송 시스템이다. 2013년 일론 머스크 CEO가 처음 제안했으며, 현재 미국 라스베이거스 사막에는 536미터의 하이퍼루프 강관이 건설되어 있다. 공기가 없는 진공관에 운송 캡슐을 넣어 자기부상 현상으로 쏘아보내는 방식이다. 최근 200회가 넘는 실험을 성공적으로 끝냈다.

하이퍼루프는 대중교통의 혁신으로 평가받는다. 일론 머스크는 보링 컴퍼니를 통해 하이퍼루프 개발을 주도하고 있으며 현재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지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최근 미국 일리노이주와 오하이오주에서 하이퍼루프 타당성 조사에 나서는 등. 초고속 이동 시대는 성큼 우리의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

여기에 리처드 브랜슨 CEO도 출사표를 던졌다. 그는 2014년 버진 하이퍼루프원을 설립, 현재 초고속 대중교통 사업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12월 CNN머니는 버진 하이퍼루프가 정식으로 리처드 브랜슨 CEO를 회장에 임명하는 한편, 앞으로 세계 곳곳에 하이퍼루프 체계를 안착시킬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2016년 버진 하이퍼루프원은 2021년 완공을 목표로 세계 10개 도시에 하이퍼루프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으며 두바이와 러시아의 자금까지 포함해 약 3억달러의 자금을 모았다.

▲ 하이퍼루프 개념도. 출처=위키디피아

최근에는 인도 하이퍼루프 진출을 타진하고 있다. 리처드 브랜슨 CEO는 2월18일 인도 뭄바이에서 자신의 하이퍼루프 청사진을 공개하며 인도의 주요도시인 뿌네와 뭄바이 공항 사이에 하이퍼루프를 건설하는 방안을 전격 제안했다. 급속한 도시화로 심각한 교통체증에 시달리는 인도에 하이퍼루프가 대안이 될 수 있으며, 최근 인도 정부가 의욕적으로 전국 고속 철도망을 건설하는 것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주장이다.

▲ 괴짜 CEO로 유명한 리처드 브랜슨. 출처=위키디피아

즐거운 모험에 답이있다
리처드 브랜슨 CEO는 파격적인 경영과 기행으로 숱한 화제에 섰으며, 다양한 산업에 진출했으나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러나 특유의 도전정신을 앞세워 파격의 연속을 보여줬으며 그 과정에서 자신의 입지를 탄탄하게 쌓아올린 전략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열정과 냉정사이에 정확하게 위치해있는 셈이다. 리처드 브랜슨 CEO는 "내 인생 철학은 매일 매순간을 즐기는 것"이라면서도 "내 인생의 관심사는 거대하고 성취 불가능한 도전을 설정하며 이를 이루는 것에 있다"고 말했다. 계획, 도전, 즐거움이 어우러지는 그의 진면목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