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태호 기자] “솔직히 기업 임원 출신은 큰 문제가 없습니다. 돈도 있고 인맥도 있으니까요. 문제는 임원이 되지 못하고 은퇴하는 사람들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끓는 물 속의 개구리처럼 자기가 처한 상황을 모르다가 퇴직 후에야 비로소 위기인 걸 알게 됩니다.”

올해로 퇴직 6년째를 맞는 대기업 임원 출신 김중년(66·가명) 씨는 ‘인생 이모작’의 현주소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김 씨는 퇴직 이전부터 은퇴 이후를 설계했다. 지금은 대학원에서 청소년상담학과 3학기를 마쳤고 졸업을 앞두고 있다.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했던 김 씨는 퇴직 후 방송통신대학 2학년으로 편입해 학사학위를 취득한 후 대학원까지 진학했다. 영화나 CF에서나 봤음직한 60대 만학도 인생이다.

자식에게 의존도 올인도 하지 마라

김 씨는 “퇴직 후 주변을 돌아보면 일반 회사에서 중간간부급 정도의 경력으로 퇴직한 사람들이 가장 많다”면서 “요즘은 퇴직이 빨라져 50대 초반 퇴직자들도 눈에 많이 띄는데 가장 큰 문제는 이 시기가 보통 자녀들에게 가장 많은 돈이 들어갈 때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단호하게 인생을 자식교육에 ‘올인’하는 것이 은퇴 이후 삶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말했다. 은퇴 전부터 소득의 대부분을 자식농사에 투자하다가 정작 자식에게 의존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는 것이다. 또 퇴직이후에도 퇴직금 등 남은 재산의 일부를 자식에게 주저없이 써버리면 그것은 미래의 행복이 아니고 불행이 될 수 있고 그런 사례를 주변에서 흔히 본다고 말했다.

김 씨는 “인생 이모작 준비는 미리미리 해야 한다”면서 “예를 들어 평소에 공부하지 않은 사람은 퇴직 후에도 습관이 들지 않아 공부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면 결국 실패하고 자식에게 의존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돈 욕심 버리고 씀씀이 줄여라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에 나오는 말이다. 김 씨는 <무소유>가 인생에 큰 도움이 됐다며, 이모작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선 우선 돈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김 씨는 “보수가 적더라도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에 도전하는 것이 좋다”면서 “돈 욕심을 버리고 자기의 능력과 경험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보람을 추구하다 보면 벌이가 부족해 생업이 어려워지는 등의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힐 수 있다. 대신 김 씨는 “더 벌어야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씀씀이를 줄여야겠다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면서 자신의 경험을 들려줬다. 김 씨는 “경조사비를 줄여야 한다”면서 “장례식은 도리인 만큼 꼬박꼬박 참석하지만,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결혼식은 마음으로 축하해 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실직시’… 자존감은 자존심을 내려놓을 때 빛난다

또 김 씨는 욕심을 버리기 위해서 자존심을 내려놓고 현실을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도 내가 이만큼 벌던 사람인데’ 혹은 ‘내가 이런 걸 할 나이가 아닌데’라는 마음 때문에 새로운 일에 도전하지 못하면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의미다. 김 씨는 “자존심을 내려놓고 사회적으로 낮은 위치의 보수가 적은 일을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어차피 보수가 높고 사회적 인정을 받는 일은 젊은 사람에게 돌아가는 것이 당연한 수순 아니겠는가”라고 덧붙였다.

작은 봉사활동이라도 주저 말라

김 씨는 퇴직 후 시각장애인들의 골프 캐디로 일했다. 그는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필드를 걸으며 큰 보람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어떤 시각장애인의 말이 기억난다. 필드를 걸으면서 잔디 내음을 맡는 자유가 너무 좋아 골프 치는 날만 기다린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내가 이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는 게 정말 행복한 일이구나’ 싶어 기뻤다”고 말했다.

김 씨는 새로운 도전을 위해 실패했다는 자격지심을 버리라고 조언한다. 김 씨는 “은퇴를 앞두고 인생을 돌아보면서 자신의 인생에 대해 자학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면서 “수십년 다닌 회사에서 임원이 되지 못했다는 괴로움에 빠지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자학은 도전을 방해할 뿐이다. 실패감에 빠져 있는 사람은 결국 이모작에 실패하기 쉽다”고 얘기했다.

‘인생 이모작’ 새로움에 도전하라

그는 은퇴 후 낯선 것을 경험하겠다는 도전의식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직장이나 사업에서 손을 떼고 은퇴를 했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얘기다. 냉정하게 말하면 퇴직은 자기만큼 혹은 자기보다 잘하는 후배에게 자리를 물려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은퇴자들은 대부분 자기가 평생 해온 업종 안에서 새로운 직업을 물색하는 경우가 있다. 이미 자기보다 나은 후배들이 같은 일을 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퇴직자라고 해서 경쟁을 안 하는 것이 아닌데 이런 전략만으로는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김 씨는 “과거의 경험이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예전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은 착각”이라면서 “새로운 직업에 도전해야 인생 이모작의 성공확률이 높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이어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먼저 공부하고 정보를 얻어야 한다”며 “남이 하니까 나도 해본다든지, 내가 해봤던 일을 계속 이어서 한다는 생각 등이 은퇴 후 직업을 찾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라고 덧붙여 말했다.

새롭게 청소년교육학을 전공하고 있는 김 씨는 대학원을 마친 후 청소년 전문 상담소 등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학교 밖 아이들이라고 불리는 이른바 '비행 청소년'들을 계도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면서 “이런 일을 통해 인생은 실패하면서 조금씩 전진해 나아간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