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의 복개공사가 끝난 후 김현욱 시장은 유료 고가도로의 건설계획을 발표하는데 그 후 8월 12일자 <동아일보>에는 ‘고가도로 건설의 재고를’이라는 기사가 실린다.

김현옥 시장의 계획은 무리수라는 것이 이 기사의 골자인데, 1967년을 기준으로 서울시에 등록된 차량의 숫자는 2만5680대, 그중 자가용의 경우는 4075대밖에 되지 않아 이것이 과연 경제적인 가치가 있는 일인가에 대한 의문이었다.

풍수의 원리로 보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물을 복개하고 위에 도로를 건설하면 형세론(形勢論)적 이론으로 간룡법(看龍法)의 모습이다. 간룡법이란 산등선을 용의 등으로 보고 감정하는 풍수법이다. 형국론(形局論)적 이론으로 보면 뱀이 기어가는 모양을 인공적으로 만든 모양이 된다. 형국론이란 자생풍수로써 지리의 모습을 상(象)에 빗대어 보는 풍수법이다. 또한 팔괘상(八卦象)으로는 바람을 상징하는 손(巽)괘와도 같은데 강한 바람이 부는 곳은 생명이 사는 데 어려움이 많다. 실제로 이런 곳은 사람이 사는 터로 적합하지 않아 부동산 시세가 낮은 곳이 많다.

청계고가의 건설 내막에는 박정희 정권의 워커힐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당시 박 대통령은 집권 중 워커힐에 자주 갔다고 한다. 워커힐은 1963년 4월에 개관되었다. 이 워커힐을 가장 빠르고 편리하게 연결하는 통로가 청계천고가도로였던 것이다. 그래서 김현욱 시장이 무리수를 두어가며 경제적 효용성이 없는 청계고가 건설을 추진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의 잦은 워커힐 방문은 1970년대 중반 청와대 앞 궁정동에 안가(安家)라는 이름의 비밀 휴식처가 마련될 때까지 계속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그 안가에서 총격사건으로 생을 마감했다. 참고로 청계고가의 유료화 정책은 실시되지 못했다.

풍수적으로 바라본 바 만약 김현욱 시장의 처음 계획대로 미아리고개·시내 중심부·청계천로·홍제까지 연결했다면 도시 한복판에 뱀이 기어 다니는 형상이 되어 매우 흉물스러운 도시풍수가 됐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행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산의 맥의 기운이 인공적인 구조물로 연결된 사례는 있다.

고대 로마 시대에는 산악지형의 장소에 구조물을 설치해 상수도로 물을 끌어들여와 도시로 이은 흔적이 있다. 이 모습이 흡사 간룡법의 용 능선의 모습이라든가 형국론의 용의 모습과도 같다. 자연의 기운을 도시풍수적 활용해 인간들의 터를 보다 윤택하게 한 사례이다. 이는 도시풍수적인 기능을 수행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청계천 고가도로는 경우가 달랐다. 차들이 다니는 도로의 기능만을 수행했을 뿐이다. 물의 기운이 순기능으로 작용했다고 보기 어렵다. 참고로 청계천 위에 세워진 고가도로의 원래 이름은 3·1고가도로였고 1984년 11월 17일에 그 이름이 청계고가도로로 바뀌었다고 한다.

비용을 절약하려 값싼 시멘트를 쓰고 철근이나 철판을 적게 쓴 고가도로는 2002년 기준 차량 총 수 260만대, 승용차만 200만대에 달해 그 수명을 다하고 이명박이 시장으로 당선되면서 철거됐다.

그리고 이명박 시장은 초반에 많은 반대가 있었지만 이를 해결하고 청계천의 속살을 드러냈으며 공사를 통해 폭과 깊이를 넓혀 유사 시 홍수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설계했다.

기능적으로는 훌륭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청계천이라는 풍수적 혈을 근대사에서 개인의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한 권력자들이 하나 같이 몰락했음을 보면, 풍수학자로서 이것이 옳은 길이었나 되새겨 보게 된다. 심지어 이명박 전 시장은 재단 이름도 ‘청계’로 했다. 돌이켜보면 물로 흥해 물로 망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현재 청계천은 주역으로 보면 천택리(天澤履) 괘의 모습이며 이 괘가 상징하는 것은 화합과 유순함이다. 산과 산의 기운을 끊는 풍수적 흉함이 있으나 이제는 산과 산으로 연결된 곳이 아니기에 그 영향은 없다고 보인다.

필자가 작년에 방문했던 청계천은 잠자리도 있고 풀벌레도 있었으니 비록 인공적이더라도 자연에 기여하는 도시풍수적인 모습이 있었다.

지금 필자의 눈에 비친 청계천은 600년 전부터 갈 곳 없는 시민에게는 휴식의 보금자리였고 권력자에게는 욕심내어 손대면 안 되는 흉(凶)한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