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오각진 기업인/오화통 작가 ]

3월을 맞으며 생각이 많아집니다. 단순히 월이 바뀐게 아니라,

계절이, 세월이 오고 가는 것이라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오래된 친구들을 만나러 가면서 우연히 큰 도서관에 들렀습니다.

산문집 코너를 둘러보다가 특이한 책 제목에 시선이 꽂혔습니다.

무르익다! 나이 드는 것이 시드는 것이 아니라 무르익는 것이라며,

세월 가는 것에 기쁘고, 감사하자고 조용히 일러주는 책이었습니다.

풋중! 법정 스님 입적 8주기를 맞아, 젊은 시절 친척과 주고 받은 편지를

산문집으로 묶어 냈다는 기사를 보니,

그가 이십대 후반 수련을 시작하던 시절

자신을 ‘풋중’이라 표현했더군요.

그런 시절을 거쳐 우리가 아는 그가 된 것이겠지요.

어떤 상태가 되어야 ‘무르익다’란 표현이 어울릴까요?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총무가 회비건을 얘기합니다.

앞으로 회비는 더 이상 걷지 않고, 쓰기만 하겠다며,

만약 친구중 먼저 떠나는 친구 있으면

이 돈은 그걸로 끝인줄 알고, 오래 살아 같이 쓰자고 얘기합니다.

우스개 소리이자, 다소 거친 제안이었지만,

건강하게 오래 보자는 뜻으로 알고 만장일치로 통과시켰습니다.

그러고 보니 과거 회사 근처 소공원에 노인분들 몇이

햇빛을 쬐며 나누었던 얘기도 생각납니다.

다가오는 한 분에게 ‘너 죽었는줄 알었더니 살아있었네’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의 표현이었겠지요.

이렇게 세월은 다소 거칠지만 익숙함으로도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오래 함께 한 후배 친구가 작년에 뇌졸중에 이어

신장 수술까지 받으며 겨울을 넘어왔습니다.

젊은 시절, 자신의 맘에 들고, 하고 싶은 일을 하기위해

몇 번이나 회사를 옮기고, 판을 바꾸는 등 ‘좀 참아라’고 말하는

나를 꼰대로 만든 멋있는 후배였습니다. 지금은 감기를 극도로 조심해야 하고,

짠 음식을 절대로 피하며 조심스레 살고 있습니다.

얼마전 그에게 지금 상태를 묻자 ‘아주 조금씩 조금씩 좋아지고 있습니다’

그 말이 왜 그리 가슴에 남던지요?

 

벌써 봄이라고 성급히 말하지만 봄 또한 조금씩 조금씩 오는 게 맞겠지요.

누가 뭐라 해도 세월은 하나 하나, 차곡 차곡,조금씩 조금씩 같은 말과

잘 어울리며 오고,가는 것 같습니다.

 

필자는 삼성과 한솔에서 홍보 업무를 했으며, 이후 12년간 기업의 CEO로 일했으며 현재는 기업의 자문역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중년의 일원으로 일상에서 느끼는 따뜻함을 담담한 문장에 실어서, 주1회씩 '오화통' 제하로 지인들과 통신하여 왔습니다. '오화통'은 '화요일에 보내는 통신/오! 화통한 삶이여!'라는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필자는 SNS시대에 걸맞는 짧은 글로, 중장년이 공감할 수 있는 여운이 있는 글을 써나가겠다고 칼럼 연재의 포부를 밝혔습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이코노믹 리뷰> 칼럼 코너는 경제인들의 수필도 적극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