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가 지속되면 권리로 착각한다. 배려해준다는 것은 누군가가 희생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예전에 사진 한 장이 세간의 관심을 끌었던 적이 있었다. 양팔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장애인에게 한 아가씨가 빵을 먹여주는 모습이었다. 빵을 뜯어서 다 먹여주고는 자기 목에 두르고 있던 목도리까지 벗어서 감싸주고는 자신의 일터로 돌아갔다. 여기서 친절과 배려의 차이가 회자됐다. 빵이나 목도리를 전달해 주기만 해도 친절했다고는 할 수 있다. 하지만 배려는 직접 빵을 뜯어 먹여주고 목도리를 직접 둘러준 한 걸음 더 나아간 행위를 말한다.

그 아가씨가 배려를 베풀기 위해서는 하던 일을 멈춰야 했고, 빵을 조금씩 먹여줘야 했기에 시간을 소비해야 했다. 주위의 시선도 있었을 것이고, 일하던 가게에 손님이 오거나 했다면 아마도 몇 명의 손님을 포기해야 했을 수도 있다. 목도리를 벗어 줬다면 당연히 약간의 따뜻함도 포기해야 했다. 자신의 시간과 물건을 가지고 있을 때는 소중한 마음이 들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게 주기란 쉽지 않다.

한 사례가 있다. 미국의 어느 마을에서 이상한 실험을 했다. 어떤 사람이 집집마다 돌면서 아무런 조건 없이 매일 10달러씩을 줬다. 첫날 그 사람이 알지도 못하는 집 현관에 10달러를 놓고 나오는 것을 보고 모두 의아해했다. 심지어 제정신이 아니라며 마을 사람들은 그 돈을 가지기를 주저했다. 둘째 날도 비슷한 시각에 집집마다 같은 금액을 돌렸고,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미안하기도 하고 신기해 하기도 했다. 두 번째 주에 들어서자 사람들은 계속 그 사람이 나타나서 돈을 두고 갈 것인가 궁금해 했고, 다른 마을까지 소문 나면서 구경 오기도 했다.

세 번째 주가 되자 사람들은 더 이상 돈을 주고 가는 것을 신기하게 생각하거나 고맙게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넷째 주가 되었을 때는 매일 정해진 시각에 10달러씩 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고, 그 마을의 일상이 되었다.

실험을 진행했던 그 달의 마지막 날, 그 사람은 평소와 달리 돈을 주지 않고 그 길을 그냥 지나갔다. 그러자 이상한 반응들이 쏟아졌다. 사람들이 투덜거리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서 성난 목소리로 ‘내 돈을 달라’고 따져 묻기도 했다고 한다.

 

화난 투자자 납득시키기보다 먼저 들어라

이런 상황들이 우리 주위에서도 벌어진다. 고객을 맞이해 종업원들이 과하게 친절하고 특별한 서비스를 베풀면 한두 번은 미안한 감정을 느끼기도 하지만 몇 번 지나지 않아 당연지사로 받아들인다. 그 뒤로는 사람들이 지난번에 과한 친절과 서비스를 받았다는 생각이 아니라 이전만 못함에 대한 불만이 쌓이게 된다. 서비스를 하는 입장에서는 잘한 것을 기억하지만 반대의 입장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만 기억에 남긴다.

주주가 연락해서 뜬금없는 불호령을 내리거나 야단을 치는 경우가 있다. 주가가 오를 때는 이런 일이 없지만 떨어질 경우 종종 생긴다. 회사 경영상 발생하는 다양한 일이 주가에 민감하게 반영된다. 이럴 경우 회사 재무나 IR팀에서는 가끔 주주와 큰 소리가 오가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떨어지는 주가에 답답한 투자자가 급한 마음에 따지듯 연락을 한 경우가 대부분인데, 요령 없는 직원들이 원론적인 답변만 늘어놓을 경우에 이런 불상사가 생긴다. 재무나 회계 파트에서 주주들의 연락이 감당이 되지 않을 때 필자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화난 투자자가 협박이나 욕설을 하면서 불같이 화를 내곤 했다.

“당장 칼 들고 회사로 가겠다.”

“퇴근할 때 뒤통수 조심해라.”

“휘발유 들고 찾아가겠다.”

“회사 1층에서 만나자.”

이렇게 막무가내로 나오면 웬만해서는 감당할 수가 없다.

“누가 주식 사라고 했습니까?”

“본인이 판단하고 사셨던 거 아니었나요?”

“오를 때도 있고 내릴 때도 있는 거지, 떨어졌다고 매번 화만 내십니까?”

거기다 대놓고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러지 않아도 터지기 일 보 직전인 투자자의 울화통을 폭발시켜버리는 셈이다.

한 번은 울면서 하소연하는 여성과 통화를 하게 됐다. 재무파트의 직원이 SOS를 치면서 전화를 돌려줬는데, 경상도 억양을 쓰는 중년 여성이었다. 남편의 퇴직금을 은행에만 넣어두기 아까워서 좀 늘려 보려고 몰래 주식에 투자했는데 주가가 떨어져버린 것이었다. 막무가내로 책임지라고 울고 불며 큰소리쳤다.

재무파트에서 어떤 변명을 했을지 짐작이 됐기에 우선은 그냥 하는 얘기를 듣기만 했다. 그러다가 ‘아, 그러셨군요’ 하면서 리액션을 했다. 재무파트나 주식 담당자들의 경우 듣기보다는 논리를 앞세워서 납득시키려고 애썼다. 그럴수록 전화한 주주들과의 마찰은 불가피했다.

몇 마디 듣지 않아 금새 그 여성의 목소리는 차분해져 갔다. 그때쯤 ‘회사는 재무개선에 전력을 다하고 있으며, 악재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임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재무 개선이라는 것이 짧은 기간에 쉽게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점을 염두에 두시라’고 덧붙였다.

잠시 뒤 그 여성은 ‘회사 직원들도 많이 힘드시겠어요. 파이팅 하세요’라고 오히려 위로의 말을 전해왔다. 솔직히 손절매를 권유하고도 싶었지만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었던 상황은 충분히 이해했을 것이다.

조폭 수준의 말투로 협박하는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 그런 말을 듣게 되면 화부터 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딱 한 타이밍만 늦추고 들어주면 의외로 쉽게 풀렸다.

전화를 돌려받으니 욕설에 협박까지 했다. ‘칼 들고 가겠다’, ‘휘발유를 들고 가겠다’는 말도 서슴없었다. 가끔은 뜬금없이 ‘밤길 조심하라’거나 ‘뒤통수 조심해라’는 말도 들었다. 진지하게 ‘예, 오십시오’하고 대답했다. 그 답은 예상치 못했는지 잠시 후 ‘장난하냐? 말이 그렇지 진짜로 가겠냐?’고 반문했다. ‘저 역시 장난 아닙니다. 답답해서 그렇게 말씀하셨을 텐데, 오시면 차 한 잔 대접하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임직원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덧붙였다. 주가가 언제 오를지는 알 수 없지만 화난 주주는 ‘수고하시라’는 말을 남겼다.

커뮤니케이션은 출발은 경청에서 시작된다. 들으려 하지 않고 자기 입장만 내세우고 납득시키려 한다면 통할 리가 없다. 논리만 앞세운다면 이미 떨어진 주가로 인해 상처 받은 마음에 왕소금 뿌리는 격이 될 뿐이다.

 

어려운 상황 막기보다는 머리 맞대고 함께 의논하라

2010년 초에 퇴임한 경영진에 대한 소송이 있었다. 엉뚱한 곳에서 횡령 배임 사실이 드러났다. 몇몇 주간 매체 기자들이 파고들기 시작했다. 이런 사건의 경우 일간지는 비교적 간단한 내용이 기사화되지만 주간매체는 다르다. 매체 특성상 심각한 톤은 물론이고 사진 실릴 공간을 감안한다고 해도 타블로이드 신문 1면당 원고지 15~16매 정도의 엄청난 분량이다. 거기다 이런 심각한 사안이라면 2페이지까지 이어질 수도 있었다. 매체 인지도 측면에 따른 노출이 좀 적다 하더라도 최소 원고지 30매 이상 긴 내용의 심각한 기사는 일간지 기사의 충격에 비할 바가 못 된다.

회사가 이미 엄청난 손실을 본 마당에 악재가 드러나 봐야 회사만 힘들어질 뿐이었다. 다행이 몇몇과 친하게 지내던 사이라 기자들 대여섯과 함께 남대문 시장통의 식당에서 만나기로 했다. 이를 본 주위의 선후배들이 ‘피해도 시원찮을 판국에 섶을 지고 불길로 뛰어든다’며 걱정했다.

며칠 동안 온갖 기사들을 분석했다. 매체 입맛에 맞을 만한 이슈를 찾았다.

식당에서 만난 기자들 분위기는 심각했다. 주간 매체 특성상 기사는 상당히 아픈 생채기가 된다. 재무개선에도 악영향이 뻔했다. 이런 상황 설명에 대해 다들 이해는 하지만 그냥 덮을 수는 없다는 태도였다. 그때, 준비해 간 자료를 꺼내 보였다. 막 이슈가 되기 시작한 사안인데 제대로 기사화되지 않은 아이템이었다. ‘나 같으면 이렇게 취재할 겁니다’라며 힌트를 던지자 사람들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일주일쯤 지나자 그때 모였던 기자들로부터 전화가 왔다.

“처음으로 단독 기사를 써서 보너스를 받았는데, 저녁을 한 턱 낼게요.”

그렇게 인연이 된 기자들은 그때 인정받은 실력으로 지금은 더 나은 무대에서 열심히 뛰고 있다. 뭘 주거나, 자르고 막기만 한다면 제대로 통할 수 없다. 답답한 심정을 잠깐 들어주는 것, 막무가내로 막기보다 관심 가질 만한 것을 찾고 노력하는 커뮤니케이션이 오히려 힘은 더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