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MWC 2018의 핵심은 5G다. 이를 위한 로드맵이 경쟁적으로 쏟아지고 있으나 국내 통신사들은 미래의 5G만큼 실질적인 요금제 도입에 따른 수익성 문제도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가계통신비정책협의회(협의회)가 종료된 지금 보편요금제 현실화 동력이 크게 약화되고 무제한 요금제가 등장하는 내막은 무엇일까? 파격적인 요금제 너머에는 통신사들의 '비즈니스 모델 고수'가 숨어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약해진 가계통신비 인하 동력

정부와 시민단체, 학계, 통신사가 참여한 협의회가 지난달 22일 마지막 회의를 끝으로 105일의 대장정을 마쳤으나, 실질적인 소득은 없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무사안일하게 현안에 접근한 정부, 강공모드로만 일관한 시민단체, 어떻게든 통신비 인하에서 발을 빼려고 '플랜B' 가능성도 열어두지 않은 통신사 모두의 책임이다.

협의회는 지난해 6월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가계통신비 인하 4대 대책을 발표하며 사회적 합의기구의 등장을 예고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최민희 당시 국정기획자문위원회 경제2분과 위원은 "사회적 합의기구를 설치해 통신요금의 타당성을 면밀히 살필 것이며, 필요하다면 통신비 원가공개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협의회 결과만보면 변죽만 울린 상황이 돼 버렸다.

물론 성과도 있었다. 협의회가 단말기와 서비스 유통을 분리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합의를 도출하고 자급제 전용단말기 출시, 유심전용요금제, 온라인가입자 추가할인 등의 정책도 끌어냈지만 단말기 자급제 측면으로 보면 성과가 거의 없었고, 보편요금제는 성과가 아예 없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던 가계통신비 인하 정책은 결국 동력을 상실했다. 통신비인하국민연대의 조찬영 사무국장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일단 모아두고 조급하게 결과를 도출하라고 압박한 셈"이라면서 "정상적인 의사결정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협의회 초기부터 제기되었던 문제"라고 지적했다. 공은 국회로 넘어갔지만 협의회에서 도출된 결과물이 거의 없는데다 지방선거를 앞둔 여당과 야당 모두 가계통신비 인하 논의를 두고 부담스러워하는 눈치다.

▲ 통신3사가 보편요금제를 반대하며 고가 요금제를 속속 출시할 전망이다. 출처=각 사

트래픽 폭증...무제한 요금제 전성시대

협의회가 공전을 거듭한 후 사실상 소득없이 끝나자, 보편요금제 전반에 대한 논의고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분위기다. 단말기 완전 자급제는 삼성전자의 갤럭시S9에 첫 도입되기로 결정되는 등 소득이 있었으나 보편요금제는 '정부가 시장논리에 과도하게 침범하고 있다'는 통신사의 반발에 가로막혔다.

논란이 거듭되는 도중 느닷없이 무제한 요금제를 기반으로 하는 고가 요금제 출시가 시작됐다. 보편요금제를 통해 가계통신비를 잡으려는 정부의 노력과 180도 다른 접근방식이다.

포문은 업계 3위 LG유플러스가 열었다. LG유플러스는 지난달 23일 국내 최초 데이터 제공량과 속도에 제한을 두지 않는 '속도'용량 걱정 없는 데이터 요금제’를 출시했다.

지금까지 무제한 요금제는 기본 데이터 제공량을 모두 소진할 경우 속도 제한을 통해 고용량 데이터 사용을 제한해왔다. 데이터 트래픽 과부하를 막고 네트워크 품질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LG유플러스는 내부적으로 시뮬레이션을 통해 증가하는 LTE 데이터량을 예측해 파악하고, 이번 요금제 출시로 급증할 수 있는 트래픽에 대한 대비를 모두 마쳤다는 설명이다.

▲ 모델들이 LG유플러스의 진정한 무제한 요금제를 광고하고 있다. 출처=LG유플러스

요금제는 무려 8만8000원이다. 다만 별도의 기본 데이터 제공량 없이 무제한으로 LTE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며 기본 데이터 제공량 이상 후 소진되는 속도제한이 없다. 심지어 데이터 주고받기나 쉐어링 기능을 통해 한도를 업계 최대 월 40GB까지 제공한다.

LG유플러스 PS부문장 황현식 부사장은 “지난해 말 데이터 스페셜 요금제 가입자 비율이 국내 통신 시장 전체의 30%를 넘어설 정도로 고객의 데이터 사용량이 급증하고 있다”면서 “이번에 선보인 요금제는 업계의 실질적인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 출시를 이끄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LG유플러스의 요금제는 다양한 안전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속도 제한이 없는 진정한 무제한 요금제라는 지점을 강조하면서도 과도한 데이터 트래픽을 막기위해 네트워크 품질을 예측할 수 있는 기술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8만8000원의 고가를 걱정하는 사람들에게는 데이터 나눠쓰기를 제공해 가족이나 다른 모바일 기기와 나눠쓸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고가 요금제지만 다른 모바일 기기에 별도의 요금제를 가입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쓰기에 따라 요금을 더 절약할 수 있다.

기본 데이터 제공량을 모두 소진해 소량의 데이터 추가 요금이 꾸준히 발생하는 고객에게도 보다 경제적인 요금제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데이터 6.6 요금제를 이용하는 고객은 월 5만5990원으로 6.6GB를 기본으로 쓸 수 있다. 여기서 데이터 상품권으로 5GB를 더 사용할 경우 추가 과금은 3만3000원이 되지만 ‘속도 용량 걱정 없는 데이터 요금제’ 가입 시에는 동일한 가격으로 초과 요금 부담을 완전히 없앨 수 있다.

권영수 LG유플러스 부회장은 MWC 2018 현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반응이 아주 좋다"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줄 것"이라고 자신했다. 다른 통신사들도 움직일 전망이다. SK텔레콤은 다음달 로밍 요금제를 통해 약정할인 전반을 개정해 진정한 의미의 무제한 요금제는 어려워도, 비슷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할 각오다. KT는 아직 뚜렷한 행보는 없지만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가 움직인 이상,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요금제를 출시할 전망이다.

보편요금제 논의가 동력이 약화되고 고가 요금제가 등장하는 이유는 역시 수익성이다.

▲ 최초 단말기 자급제로 풀릴 갤럭시S9이 구동되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전체 LTE 가입자 중 무제한 요금제 가입자는 30%에 이르며, LGE 무제한 요금제의 전체 트래픽은 24만5376TB에 달했다. 무제한 요금제 트래픽을 최초로 집계한 2013년 6월의 1441TB와 비교하면 무려 170배나 늘었다. 1인 데이터 사용량도 가파르게 올라 지난해 12월 5191MB를 기록했다.

데이터 트래픽이 폭증하는 이유는 모바일 기술의 발전과 OTT(오버더탑)과 같은 1인 미디어 플랫폼의 등장이 주효했다. 협의회가 나서 보편요금제를 고집하며 가계통신비 인하를 주장하는 상황과 많이 다르다. 보편요금제가 제공하는 데이터로는 폭증하는 데이터 트래픽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공공 와이파이 등을 활용한다고 해도 턱없이 부족하다. '국내 통신비가 외국과 비교해 비싸다'는 지적에 대해 해석이 분분한 가운데, 트래픽은 폭증하고 있고 고가 무제한 요금제가 속속 출시되는 상황이다.

결국 고가 요금제는 트래픽이 폭증하는 지금의 모바일 현상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고, 통신사들은 이를 통해 수익성을 담보하려는 시도를 거듭하고 있다. 고가 요금제 전성시대가 이어질수록 가계통신비 인하 동력은 더욱 약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 간극을 메우려는 시도가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보편요금제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여전하지만 발상의 전환에 가까운 고가 요금제를 통해 반격에 나서는 통신사들의 수익성 추구 전략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