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가 근로자나 서민들이 환영할 만한 정책을 두어 개 발표했다. 법정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한 게 하나다. 다른 하나는 건강보험 지역가입자의 평가소득 보험료를 없앤다는 게 하나다.

법정근로시간 단축은 전 세계에서 악명 높은 장시간 근로시간을 단축하고 근로자의 삶의 질을 높인다는 장점이 있음에도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비용 부담이 총 12조3000억원에 이른다는 연구결과도 있는 만큼 무조건 환영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더욱이 그 부담의 대부분을 우리나라 경제의 근간인 제조업이, 그리고 중소업체들이 져야 한다는 점에서 앞으로 해야 할 일이 한둘이 아니다.

건강보험료 제도 개선안 역시 문제가 있기는 하나 국민 대대수의 지지를 받기에 충분하다고 본다. 정부가 최근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국민건강보험 시행령 개정안은 오는 7월부터 고소득자 건강보험료는 올리고 연간 소득이 500만원 이하인 건강보험 지역가입자의 평가소득 보험료를 없앤다는 게 골자다.

이번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서 시행에 들어간다면 소득과 재산이 상위 2~3%인 지역가입자와 월급 외 고액의 이자·임대소득이 있는 직장가입자는 건강보험료를 더 내야 한다. 반면 저소득 지역가입자는 보험료가 줄어든다.

소득이 없거나 적더라도 가족의 성별, 연령 등에 따라 소득을 추정한 ‘평가소득’ 기준이 없어지는 데 따른 것이다. 정부는 또 배기량 1600㏄ 이하의 소형차, 9년 이상 사용한 자동차, 생계형으로 볼 수 있는 승합·화물·특수자동차는 보험료 부과 대상에서 제외하고 중·대형 승용차(3000㏄ 이하)에 대해서는 보험료를 30% 깎기로 했다. 이런 조치로 288만 세대(자동차를 보유한 지역가입자의 98%) 보험료가 평균 55% 인하된다.

직장에 다니다 실직자가 된 사람이라면, 나이가 들어 취직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자식이 연락을 끊고 산 지 오래인 사람이라면 이번 조치가 얼마나 ‘큰’ 부담을 덜어주는 조치인지 절감할 것이다. 직장에 다니다 실직자가 돼 소득이 없어도 수십만원의 건보료를 내야 하는 게 보통이었다. 10년 된 중형자동차가 있거나 전세로 살고 있고 혹은 수도권 변두리에 주택을 보유하고 있다면 건보강보험공단은 자동차와 자산을 평가해 건보료를 부과했다. 실직자는 실업보험료를 받아서 혹은 은행 대출을 받아서 건보료를 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건보 당국의 독촉에 시달려야 했다.

반면 임대료 수입 등 소득이 있으면서도 직장에 다니는 부모형제의 부양가족으로 편입한 사람들은 건보료 한 푼 내지 않고 건강보험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이는 건강보험 가입자도 알고, 건보공단도 알고 정부도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이런 모순은 아무런 제재나 해결 없이 유지돼 온 게 한국의 엄연한 현실이었다.

이런 점에서 정부의 조치는 뒤늦었지만 칭찬할 일이다. 고소득자들의 반발은 쉽게 예견할 수 있다. 큰 득도 보지 못하는데 보험료만 많이 낸다는 불평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고소득을 올리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 나라 저소득층의 희생으로 이뤄진 것 아닌가. 사회에 책임을 다 한다는 차원에서 수용하는 게 옳다.

고소득층이 합당한 책임을 지고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는다면 이번 건보료 개편은 뉴스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불행하고도 아쉽게도 우리 사회는 그렇지 못했다. 국세청은 수시로 고소득 자영업자의 소득 누락, 탈세, 적발 사례를 발표한다. 변호사든, 의사든, 임대사업자든 우리 사회의 고소득자들은 어떻게 하면 소득을 누락하고 세금을 덜 내는 등 책임을 회피하려고 안달이었다. 지금도 그렇지 않은가.

고소득자들이 현금거래 등을 통해 소득을 감추는 탓에 지하경제는 독버섯처럼 번졌다. 정부 당국의 노력 덕분에 지하경제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20% 아래로 내려갔다고 하나,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인 우리나라가 하위권이라는 것은 창피한 일이다. 건보공단 당국이 평가소득이라는 편법을 동원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는 따지고 보면 모두 정부의 책임이요 잘못이다. 우리나라처럼 전산망이 잘 갖춰진 나라가 지하경제의 확산을 방치한 결과다. 소득 탈루와 탈세를 조장하는 각종 제도가 즐비하다.

이번 제도 개선은 출발점에 불과하다. 고소득층들은 아마 이번 개정안에 대해 불만을 품고 저항할 것이다. 표를 먹고 사는 정치권은 국민 편익증진, 과세형평성은 안중에도 두지 않고 이들의 편을 들 것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갈 길은 멀다. 정부는 정치권의 목소리에 더 이상 현혹돼서는 곤란하다. 그것은 최면을 걸어 파멸로 이끄는 사이렌의 속삭임과 같다. 정부가 가야 할 길은 하나다. 절대다수 국민 편익만을 기준으로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는 것이 문재인 정부가 가야 할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