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이미지투데이

[이코노믹리뷰=김윤선 기자]여성들의 성폭력 피해 공개 운동인 ‘미투(#MeToo)’로 온 사회가 들썩이고 있다. 문학계, 영화계, 연극계 등 문화계를 비롯해 종교계에서도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성범죄가 일어났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

의료제약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미투 운동이 일어나기 전부터 의료계에선 한 병원이 간호사에게 선정적인 의상을 입혀 장기자랑을 강요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우리 사회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또 술자리에서 남자 교수들이 간호사나 병원 여직원들에게 부적절한 스킨십을 하거나 유흥업소에서 하듯 돈을 옷 속에 꽂는 행동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의료계의 성추행 문제를 알리는 데는 페이스북(Facebook)과 같은 SNS의 공이 컸다. 업계 관계자가 병원 내 간호사 장기자랑 강요 문제를 알린 것도 페이스북의 한 익명 페이지를 통해서였다.

제약업계도 국적을 불문하고 성추행 사건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최근 굵직한 다국적 제약사에서 잇따라 성추행 파문이 일면서 긴장감이 감도는 중이다. P사를 비롯해 최근엔 일본계 A사에서도 직원 간 성희롱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들은 모두 SNS가 아닌 언론사의 취재나 사내 익명 커뮤니티를 통해 밝혀졌다.

P사에선 남자 직원이 수년간 여직원들을 성추행했다. 그러나 엄한 징계를 받지 않고 다른 부서로 발령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솜방망이 처벌 논란이 불거졌다. A사에서는 팀장급 남직원이 단체여행 중 여직원에게 강제로 스킨십을 해 직책 해제와 감봉 조치를 받았다. 이마저도 사건이 알려진 후 3주 만에 내려진 조치로 늑장 대처였다는 비난을 샀다.

남성 우월주의가 비교적 약하다는 다국적 제약사에서 성추행 파문이 일었다는 것이 더욱 충격을 줬다. 의료계나 국내 제약사는 모두 남성 중심의 권력이 형성돼 있지만 여성 임직원 비율이 높은 다국적 제약사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국적 제약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용한 국내 제약사는 괜찮은 것일까. 업계 관계자는 국내 제약사의 내부 성추행 문제는 더욱 심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 국내 제약사의 여성 임원은 “다국적 제약사는 그나마 여성들이 당한 성추행이 알려지기라도 하지만 국내 제약사는 모르거나 알아도 덮어두는 경우가 훨씬 많을 것”이라면서 “차라리 공개되는 것이 건강한 축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SNS를 활용한 미투 운동이 제약업계에서도 일어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조심스레 나오는 이유다. 아직까지 제약업계에서는 내부에서 성희롱 문제를 신고하는 경향이 많았지만 이 같은 내부 규정만으로는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할 수 없고 피해자의 고통도 완화해 줄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

미투는 여성들의 성폭력 피해를 경찰, 검찰 등 공권력이나 기업 내 신고 시스템으로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에 대중에 이 사실을 알려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자 시작된 움직임이다. 성추행 해결 장치가 국내사에 비해 낫다는 다국적 제약사에서조차 가해자 처벌이 약하다는 내부 직원들의 불만이 큰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침묵이 늘 건강한 것은 아니다. 많은 제약사들이 성추행에 대응하는 자체 지침을 갖고 있지만 미투 운동에서 최근 드러나는 사실에 비해 너무 적은 사례만 확인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