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주에서 본 지구. 출처=NASA

[이코노믹리뷰=김태주 시계 전문 페이지 <블랙북> 운영자] 바야흐로 1961년. 유리 가가린이 보스토크 1호를 타고 1시간 29분 동안 지구 상공을 유영하며 "지구는 푸른빛이었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 유명하고 멋진 말은 세계인의 마음속에 빛을 심어주었지만 미국의 자존심엔 비수를 꽂았다. 이미 1957년 세계 최초 인공위성의 영광을 소련에게 한 차례 빼앗겼던 미국은 소련의 기술력에 두려움마저 느끼고 있었다. 결국 미국의 부통령 린드 존슨은 '1966년에서 67년 사이에 달 착륙을 성공하는 것이 소비에트와의 우주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방안이 될 것'이라고 케네디에게 조언했다. 첫 번째 우주 유영은 러시아에게 뺏겼지만, 절대로 달 착륙만큼은 첫 번째를 뺏길 수 없었다.

아폴로 11호

▲ 발사되는 아폴로 11호. 출처=NASA

하지만 미국은 1961년 단 한 명의 우주인만이 지구 궤도 선회에 성공했을 뿐인, 말하자면 달에 착륙할 수 있는 기술을 갖추고 있지 못한 나라였다. 그러나 미국은 단지 소련과의 경쟁에서 질 수 없었기 때문에 달 착륙 프로젝트를 멈추지 않았다. 달에 가려고 준비하는 우주인들도, 우주인을 보내는 나사도 달에 무사히 다녀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았다. 실제로 당시 어떤 보험사들도 우주비행사들의 생명보험을 들어주지 않아 아폴로 11호의 비행사였던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은 자필 사인지를 만들어 아폴로 11호의 발사일에 맞춰 사인지를 발송하기도 했다. 만약 자신들이 우주비행에 실패해 지구로 돌아오지 못하게 될 경우, 그 사인지가 높은 가격에 판매돼 가족들의 생계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당시 리처드 닉슨의 연설문 작성자였던 윌리엄 사파이어는 우주인들이 돌아오지 못할 것에 대비한 추도문을 준비하기도 했는데, 추후 인터뷰를 통해 이 당시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실패할 가능성도 높았고, 만약 그들이 실패한다면 그들을 달에 죽게 내버려 두고 떠나야 했을 겁니다. 그리고 관제센터는 모든 통신을 두절시키고, 그들은 굶어죽기를 기다리거나 자살해야 했을 겁니다." 당시 우주선은 지금의 스마트폰보다도 못한 기술력이었었다. 하지만 인류를 최초로 달에 보냈다 돌아왔던, 무엇보다 훌륭한 기술력이다.

오메가 스피드마스터

▲ 스피드마스터 프로페셔널. 출처=오메가

당시 우주선은 지금 보면 깜짝 놀랄만한 구식의 방법으로 달에 다녀왔다. 종이에 손으로 그린 계산식이 그들이 우주에서 사용했던 궤도 수정 방식이고, 정확한 시간을 측정한 것은 오토매틱 손목시계였다. 어떻게 달에 다녀왔는지 믿어지지 않을 만큼 미국의 기술은 조악했지만, 기술적 부족함을 채우고도 남을 만큼 우주비행사들의 집념은 대단했다. 그들에겐 우주선이 움직이지 않는 비상시에도 정확하게 임무수행을 하기 위한 무언가가 필요했는데, 그것이 바로 시계였다. 우주환경은 미스터리 그 자체였기 때문에 달에 다녀올 수 있는 시계를 선별하기 위한 테스트는 당시 지구인이 예상할 수 있는 가장 가혹한 환경 속에서 시작되었다. 수십 종류의 시계 브랜드들이 저마다 ‘달에 다녀온 최초의 시계’타이틀을 갖기 위해 지원했다. 

테스트는 아폴로 17호가 발사될 때까지 30년 동안 수차례에 걸쳐 계속됐다. 진공 테스트, 산소대기/온도 테스트, 저온 테스트, 가속 테스트, 랜덤 바이브레이션, EMI 테스트, 습도테스트가 당시 시계에 가했던 시험이다. 저온테스트만 하더라도 평상 온도에서 -17.8도의 온도를 오가며 기기의 상태를 측정하는 표현 그대로 ‘극한의’ 시험이었다.

 

집념의 시계

▲ 1969년 달 착륙 기념우표. 출처=셔터스톡
▲ 닐 암스트롱이 달에 남긴 인류 최초의 발자국. 출처=NASA

마침내 모든 테스트가 끝났을 때, 예상대로 시험을 통과한 시계보다 그렇지 못한 시계들이 더 많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단 하나'의 시계를 제외한 모든 시계는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 살아남은 단 하나의 시계. 오메가의 스피드마스터였다. 1965년에는 미국인 에드워드 화이트(Edward White)가 오메가의 스피드마스터를 착용하고 미국 최초로 우주유영에 성공했다. 우주에서의 유영 이후 오메가는 다이얼에 “Professinal"이라는 단어를 추가했다. 그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그리고 1969년 7월 21일 미 동부시간 오전 10시 56분. 인간은 최초로 달에 도착했다. 닐 암스트롱은 달 표면 위에서 유명한 대사를 남겼다. "이것은 개인의 작은 한 발자국이지만 인류에게 있어서는 위대한 도약이다.(That's one small step for a man, one giant leap for mankind.)" 스피드마스터는 버즈 올드린(Buzz Aldrin)의 손목에 채워져 최초로 달 표면을 밟은 시계가 되었고, ‘고요한 바다’위에서 우주비행사들과 함께 작업을 수행했다. 그렇게 스피드마스터는 훗날 달에 다녀온 시계라고 하여 세계에서 가장 낭만적인 별칭인 ‘문 워치(Moon Watch)'라고 불리게 되었다. 

스피드마스터는 시계는 실제로 중요한 순간마다 몇 번이나 우주비행사들의 생명을 구했다. 인류 3번째로 달에 발자국을 남기길 기대하며 발사된 아폴로 13호가 계기판이 사용이 불가능한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을 맞이하자 우주 비행사들은 스피드마스터를 이용해 대기권 진입 시간 계측, 엔진 가동 타이밍 측정 등의 작업을 했고, 14초의 궤도 수정을 정확하게 해내 지구로 돌아올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스피드마스터는 우주에서 3명의 생명을 구하게 됐다. 이로 인해 오메가는 나사가 우주작전에 가장 공헌한 이에게 수여하는 ‘스누피 어워드’를 수상하게 된다. 그야말로 우주비행사들과 스피드마스터는 뗄 수 없는 역사를 함께 공유하는 사이인 것이다. 오메가는 현재도 나사와 공동으로 화성 탐사를 위한 차세대 우주용 시계를 개발 중에 있다.

‘문워치’라는 별명에는 단순하게 달에 다녀 온 시계라는 의미만 담겨있는 것이 아니다. 30년간의 혹독한 테스트를 모두 통과한 검증의 역사와 인류 역사 한자리를 함께한 협력의 역사가 녹아들어 있다.

스피드마스터 프로페셔널의 디자인은 1957년부터 지금까지 거의 변함이 없다. 그리고 달에서 그랬던 것처럼, 오늘도 수많은 이들의 손목 위에서 새로운 한계를 돌파하길 응원하고 있을 것이다.  

▶ 지구에서 가장 매력적인 시계 집결지 [타임피스 아시아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