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갑을(甲乙)관계'라는 말이 있습니다. 계약서에 표현에서 파생된 이 냉정한 말은 권력의 상하관계를 뜻하는 일종의 사회적 언어로 작동합니다. 우리 모두가 갑을 꿈꾸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간혹, 누가봐도 갑 그 자체인 사람들이 목청을 높여 "내가 을이요"를 외치는 미묘한 상황이 발생하고는 합니다. 방송통신위원회를 중심으로 인터넷 상생발전 협의회가 발족하자 성명서까지 발표하고 반발한 한국인터넷기업인협회 이야기입니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습니다. 지난해 네이버와 관련된 논란 세 가지가 불거졌습니다. 시장 독과점, 콘텐츠 노출 조작에 따른 플랫폼 공공성 부재, 글로벌 ICT 기업 역차별 문제. 국정감사 당시에도 큰 화제였는데 이 때 네이버가 보여준 전략아닌 전략이 재미있습니다.

이해진 네이버 창업주는 시장 독과점과 플랫폼 공공성에 대한 질타가 이어질 때마다 구글의 예를 들며 "글로벌 ICT 기업 역차별 문제가 시급하다"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기승전 구글'로 이어지는 이 창업주의 발언에 국감에 참여한 의원 일부는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구글이 문제 없다는 것이 아니다"면서  "거기는 괜찮고 네이버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고 논점을 흐리지 말아달라는 당부까지 했습니다.

물론 글로벌 ICT 기업 역차별 문제는 실체가 있습니다. '유튜브와 페이스북 모시기'에 나선 국내 통신사들의 캐시서버 헌납만 봐도 기울어진 운동장은 존재합니다. 이 문제는 이해진 네이버 창업주의 주장에 구글 코리아가 반박하고, 네이버가 재차 공격에 나서며 한때 큰 논란으로 번졌습니다.

재미있는 장면은 이후 벌어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코스포)의 행보입니다. 코스포는 글로벌 ICT 역차별 문제를 두고 성명서까지 내며 네이버를 두둔했기 때문입니다. 코스포 자체가 인기협의 강력한 후원으로 탄생했고, 지금도 인기협 직원들이 코스포의 사무처 역할을 지원하고 있다는 점. 여기에 인기협 회장사가 네이버이기에 표면적으로 보면 이상할 것도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재미있는 이유'는 분명 있습니다. 코스포에도 글로벌 ICT 기업의 한국 진출 사업체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얽혀버리자 결국 정부가 나섰습니다. 당장 방송통신위원회가 글로벌은 물론 국내 인터넷 기업의 역차별 문제를 비롯해 첨예한 방안의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한 인터넷 상생발전 협의회를 발족했습니다. 23일 1차 회의를 열었으며 총 48명으로 구성, 김상훈 광운대학교 경영학부 교수가 위원장을 맡았습니다.

▲ 인터넷 상생방안 협의회가 발족했다. 출처=방통위

이제 논란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더 심해졌습니다. 크게 두 가지 쟁점이 존재합니다.

절차의 정당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부가 현황조사에 나서며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KAIT)에 위탁을 준 대목이 중요합니다. KAIT는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 등 통신사들이 포진한 단체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네이버와 카카오 등 인터넷 기업들과 통신사들의 신경전은 시간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습니다. 트래픽 사용에 대한 정당한 비용 처리는 물론 인공지능 스피커 등 ICT 전 영역에서 거칠게 충돌하고 있습니다. 네트워크의 강자인 통신사들은 플랫폼 사업 중심의 ICT 기업이 '무임승차'만 거듭하고 있다는 주장이며, ICT 기업들은 통신사들의 초월적 갑의 행태가 불편합니다.

인기협이 나섰습니다. 인기협은 23일 성명서를 통해 "(KAIT는) 포털, 검색, SNS, 앱마켓, 전자상거래, 결제 등을 이용해서 거래하는 광고주, 콘텐츠 공급자와 개발자 등으로 시장구조와 매출액, 거래현황, 수수료, 광고비, 수익배분 기준 및 부당한 차별여부 등을 조사할 방침 이라고 한다"면서 "인터넷 서비스의 불공정 사건들이 현재 심각한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지도 않는 상황에서 업계 전반을 면밀히 조사하겠다고 하는 것은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여 규제를 완화하고 네거티브 규제를 추진하겠다는 정부의 기조에 반하는 것"이라고 반발했습니다.

통신사 중심의 KAIT가 조사에 나서는 대목에서는 노골적인 반감을 보였습니다. 인기협은 "(KAIT)는 정부기관도 아니며 특정사업자 중심의 하나의 산업계 협회인데 이를 통해 인터넷 서비스 산업계 전반을 점검하겠다는 것은 정부의 선한 정책추진 의지와는 별개로 조사기관의 공정성을 충분히 담보한다고 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인기협의 주장은 타당해 보입니다. ICT 업계와 경쟁하고 있는 통신사 중심의 KAIT가 ICT 업계 실태조사에 나서는 것은 분명 어색하기 때문입니다.

▲ 인기협이 성명을 통해 반발하고 있다. 출처=갈무리

방통위는 즉각 해명자료를 냈습니다. 방통위는 "현황조사는 이용자와 중소CP를 보호하고 산업의 건전한 발전을 목적으로 시장현황을 파악하여 정책자료로 활용하는 것이지 처벌을 위한 조사가 아니다"면서 "KAIT는 정보통신 발전을 위하여 정부의 인가를 받아 설립된 법정법인으로 민법에 따라 설립된 사업자 이익단체와는 다르며, 업무수행에 대한 법적근거를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시장현황 조사 결과 나타나는 문제점은 충분한 사회적 공감대를 거친 후 제도개선(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해명에도 불구하고, KAIT가 공정하게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는 상대적으로 낮은 것이 현실입니다.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할 대목도 있습니다. 인기협의 말처럼 포털, 검색, SNS, 앱마켓, 전자상거래, 결제 등을 이용해서 거래하는 광고주, 콘텐츠 공급자와 개발자 등으로 시장구조와 매출액, 거래현황, 수수료, 광고비, 수익배분 기준 및 부당한 차별여부 등을 조사하는 것이 규제를 완화하고 네거티브 규제를 추진하겠다는 정부의 기조에 반하는 것일까요?

이해진 네이버 창업주가 '기승전 구글'로 글로벌 ICT 기업 역차별 문제를 강하게 제기했을 때 들었던 위화감의 실체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국내 ICT 대기업, 특히 인기협의 주축인 네이버와 카카오는 국내 스타트업 업계와 비교했을 때 분명 '갑'이며, 분명 '을의 눈물'을 쥐어짠 원죄가 있습니다. 많이 개선되고 있다지만 최근만 봐도 네이버페이를 마치 기본 결제툴로 보이게 만드는 등 '장난'을 쳤기 때문입니다. 카카오는 어떤가요. O2O 사업을 전개하며 한 때 스타트업 업계와 전면전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인터넷 상생발전 협의회는 초반부터 파란만장한 앞날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무수히 많은 이해 관계자들을 한 자리에 모아둔다고 극적인 결론이 도출되지 않는다는 점은, 22일 종료된 가계통신비정책협의회의 초라한 105일이 잘 보여줬습니다. 사회적 합의기구를 만들어 이해 관계자들을 모은다고 모든 일이 만사형통으로 풀리지 않습니다. 보편요금제를 둘러싼 논란을 한 번 복기해보세요. 강대강 대치에 결국 소득은 없고, 정부가 시장원리에 개입한다는 통신사의 반발만 사고 말았습니다.

인기협 이야기에 더 집중하자면, 글로벌 ICT 대기업 역차별을 말하려면 자기들의 국내 기업에 대한 역차별 문제도 분명 털고가야 합니다. 이해진 네이버 창업주가 지난해 국감에서 글로벌 ICT 대기업 역차별 문제를 진심으로 풀어내고 싶었다면 자기 과거를 돌아보고, 시장 독과점과 플랫폼 공공성 침해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있었어야 했습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주장이 변죽만 울리고 겉도니 모두의 동의를 얻기 어려워진 겁니다.

물론 냉정하게 말해 ICT 플랫폼 사업은 독과점이 최종목표입니다. 네이버와 카카오같은 차세대 기술기업들은 육성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육성의 대상이라고 무조건 족쇄풀기, 혹은 일방적 지원을 원한다면 그건 오만입니다. "내가 을이요"를 외치기 전, 진짜 을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노력을 해야 글로벌 기업이 갑이고 네이버가 을이라는 점을 모두 이해할 수 있습니다.

코스포에도 조심스럽게 제안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인기협의 지원을 받고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구석도 있지만, 조금이라도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원포인트 지원도 필요할 수 있습니다.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를 명확하게 풀 수 있는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실들의 색을 명확하게 나눠 처음부터 차근차근 풀어가는 것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