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북한과 휴전 중이라는 독특한 상황 때문에, 1년에 한두 번 핵·생화학무기 등 북한의 공습에 대비하는 민방공 대피 훈련을 초등학교 어린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모두 받는다.

그동안 한국에 드물었던 지진도 최근 여러 차례 일어나면서, 여기에 재난 대피 훈련도 추가되었다. 이제 1년에 약 4차례 민방위 훈련을 받게 된다고 한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하던 민방위 훈련에서는 사이렌이 울리면 책상 아래로 들어가서 조용히 기다리다가 선생님을 따라서 운동장으로 나가던 기억이 난다.

미국의 학교들은 민방위 훈련이 아닌 총격범 대응 훈련(Active Shooter Training)을 실시하는 곳이 많다. 학교뿐만 아니라 병원, 회사, 공공기관 등도 정기적으로 총격범이 진입했을 경우를 대비한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이는 그만큼 미국 내에서 총기사고가 많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1999년 콜로라도주 콜럼바인(Colombine) 고등학교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 이후, 미국 학교들은 총기 난사 사고에 대한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2명의 학생이 900여발의 총알을 난사해 학생 12명과 교사 1명을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다. 이로 인해 학교들은 총기 난사가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콜럼바인 총기 사건 이후 32개주가 학교에서 총격범 대응 훈련을 하도록 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코네티컷의 샌디훅 초등학교에서 5~7세 어린아이들 20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미주리 등 6개주는 매년 총격범 대응 훈련을 경찰 등이 참여한 가운데 실제와 유사하게 하도록 강화했다.

전국 교육 통계 센터(National Center for Education Statistics)에 따르면 공립학교들의 총격범 대응 훈련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한 2003년과 2004년에는 전체 공립학교의 약 46.5%가 총격범 대응 훈련을 하고 있었다. 샌디 훅 초등학교 사고가 일어난 후인 2013년과 2014년에는 전체 학교의 70.3%가 총기 난사 사건과 관련한 훈련을 하고 있었다.

2015년에는 ‘비상대피훈련(Lockdown Drill)’으로 총기 난사를 비롯한 각종 비상시를 대비한 훈련으로 확대해서 조사한 결과 전체 공립학교의 무려 94.6%가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총격범 대응 훈련에서는 아이들에게 숨기보다는 우선 뛰어나가서 대피하라고 가르친다. 훈련을 맡은 경찰들은 아이들에게 나쁜 사람이 교실에 들어오면 구석으로 숨으려고 하지 말고 빨리 다른 문을 통해서 도망가라고 가르친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어린아이들에게 쉽게 설명하기 위해, 평소 좋아하는 달리기를 하듯이 소리를 지르면서 얼른 달려 나가라고 지도한다.

총격 사건 발생 시 지도 내용은 우선적으로 무조건 외부로 뛰어나가는 것(Get Out)이다. 만일 대피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모든 방법을 동원해 숨도록(Hide Out) 하고, 겁에 질리지 말고 주변 사람을 진정시키고 부상자를 도우라고(Help Out) 가르친다. 또한 모든 방법이 막힌 상황에서 총격범과 마주하게 된다면, 가능한 주변의 모든 물품을 동원해 던지거나 소리를 질러서 대항하라고(Fight) 가르친다.

성인 어른도 수백발의 총알을 장전한 총격범을 만난다면 얼어붙을 텐데 어린아이들이 이를 따를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이에 대해 담당자들은 비상상황에서는 생각할 틈이 없기 때문에, 평소 훈련한 대로 대응 방안을 따라서 몸이 움직여야 한다면서 정기적인 훈련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미국의 교실에는 수업에 필요한 물품 등을 넣어놓는 벽장이 있다. 비상 훈련이 시작되면 아이들은 교실의 불을 끄고 벽장 안으로 들어가 숨도 쉬지 말고 있도록 지시받는다.

이것도 부족했는지 최근에는 아이들의 가방에 총알을 막을 수 있는 방탄막을 사서 책가방에 넣어줄 것을 권유하고 있다.

아이들의 몸보다 커다란 책가방에 방탄막을 넣고 고개를 숙이고 도망가면, 만약 일부 유탄에 맞더라도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방탄막은 온라인 쇼핑몰 등에서 50~100달러에 구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발생한 플로리다 총격사건은 이런 훈련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범인이 화재비상벨을 울렸고, 이에 학생들은 평소 훈련받은 대로 운동장으로 나가기 위해 교실을 나갔다가 총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특히나 총격범과 바로 맞닥뜨린 경우에 대한 훈련이 부족한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총격범 대응 훈련은 좀 더 강화되고 정교화되겠지만, 아예 이런 훈련이 필요 없는 상황이 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