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계올림픽은 짧았다. 감동적인 개회식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폐막했다. 올림픽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힘은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그것은 4년에 한 번 열리기 때문 아닐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한 번 탈락하면 4년 후에나 오는 올림픽. 혹은 한 선수가 지난 4년을 준비한 올림픽에선 경기 이외에 생각지 못한 다양한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그것은 눈물이 되고 이야기가 된다. 또 하나 떠오른 것이 있다. 국가를 대표한다는 무게감.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놓고 메달을 못 따고 예선이라도 탈락하면 죄송하다고 한다. 누구에게 무엇이 죄송하다는 것인지. 국가대표 선수들은 자기 노력의 결과물마저 부끄러워 한다. 그런 모습을 보노라면 오히려 미안할 때가 있다.

때론 숭고한 뭉클함을 줬던 동계올림픽 기간. 인터넷과 TV 화면에는 백발의 한 남성 얼굴이 유난히 많이 비췄다. 온 사회로 번지고 있는 미투 운동이 한 인물의 민낯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는 연극계에 교주처럼 군림했다고 한다. 청운의 꿈을 안고 연극 무대에 서기 위한 준비생들에게 그는 생사여탈권을 쥔, 자기와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큰 거인이었단다. 백발의 노인은 부끄러움을 몰랐다. 심지어 기자회견에 나서기 전 동정심 유발을 위해 리허설까지 가졌다 한다. 적어도 그 순간 그에게 ‘수오지심(羞惡之心)’이란 없었던 듯하다.

3월 초면 이명박 전 대통령이 검찰 앞 포토라인에 설 것으로 보인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은 그가 2007년 당시 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와 “이것이 다 거짓말인거 아시죠, 여러분” 하고 외치던 모습이다.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강산이 변했고 그의 이른바 집사급 측근들의 증언도 바뀌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변하지 않았다. 국민 앞에 사과하는 모습도 없다. 오히려 정치적 탄압 프레임으로 몰고 간다. 그의 돈에 대한 욕심으로 인해 코스닥업체에 투자했던 피해자는 여전히 존재한다. 그래도 그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듯하다.

동계올림픽이 열리기 전, 은행권에 채용 비리가 화제였다. KB국민은행, KEB하나은행 등 내로라하는 시중은행들의 지난 3년간 채용 비리가 금융감독원 조사에서 적발됐다. 이 같은 조사 결과를 보고받고 세상에 알린 것은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다. 적발된 시중은행 임원들은 심 의원실로 찾아가 해명했다고 한다. 서울대·고대·연대 졸업생들을 우대한 것은 내규에 따른 것이고 사외이사 자녀를 채용한 것은 거래처 사외이사 자녀 채용이 와전됐다는 것 등이었다. 이로 인해 상처받은 젊은이들에게 미안하다, 잘못했다, 부끄럽다는 해명은 아니었다. 그들 역시 부끄러움을 모르는 듯하다.

한국지엠 군산공장이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다. 내용을 들여다보니 미국 GM 본사의 돈 빼가기로 한국지엠을 적자에 허덕이는 기업으로 추락시켰다. 속속 드러난 사실만을 놓고 보면 한국지엠의 부실한 재무구조는 GM 본사의 잘못에 기인했다. 그러나 한국지엠의 2대 주주는 산업은행이었다. 산업은행은 그동안 한국지엠에 대한 지분율을 28%에서 17%로 줄이는 과정에서 산업은행 동의 없이 GM본사가 한국지엠 공장 폐쇄를 단독으로 결정하는 것을 용인해 줬다. 2008년 이후 부도를 맞은 GM은 그동안 세계 10여개국에서 공장 폐쇄를 결정하고 먹튀 논란을 야기했다. 산업은행이 2대 주주로서 대주주 견제기능을 제대로 했다면 한국지엠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지 않았을 수도 있다. 산업은행 기업구조조정실에 있는 한 관계자는 “한국지엠 문제가 불거지니 산업은행에 뒤집어 씌우는 것”이라며 산업은행의 책임 방기 지적에 못마땅했다. 국민의 세금, 이른바 공적자금을 운용하는 산업은행으로부터 책임을 다하지 못해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찾을 길은 없었다.

지난 세월, 영어의 몸이 돼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검찰 출두를 앞두고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을 옹호하고 칭송했던 수많은 글들이 있다. 언론 기사도 있다. 그들 역시 반성하지 않는다. 그들은 사람을 잘못 본 것이었든지, 알면서 그랬든지에 관해 아무에게도 용서를 구하지 않았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은 우리 사회의 대부분 언론도 마찬가지다.

맹자가 말한 인의예지 사단설(四端說)에 의에 해당하는 것이 수오지심이다. 부끄러움이 없는 사회는 정의롭지 않은 사회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정의롭지 않은 사회에서 기회가 공정할 순 없다. 특권의식이 난무하고 금권이 판치는 사회다. 그동안 우리가 1988년 서울올림픽과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치르면서 경제적 성장에 만족해 하는 동안 사회 한켠에선 금권으로 치장한 특권의식이 수오지심은 승부에서 패배하는 것이라는 왜곡된 가치관을 심어놓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이제 다시 부끄러움을 가져야 할 때다. 정의로운 사회는 아무런 대가 없이 찾아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