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계 올림픽의 막이 내렸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선수들이 금메달을 놓고 선의의 경쟁을 벌였다. 세계 평화도 중요하고 스포츠를 통한 친선과 축제도 중요하지만 4년 동안 오직 올림픽을 위해 달려온 선수들의 꿈은 금메달이다.

필자가 젊은시절, 수술솜씨가 뛰어나셨던 한 선배님은 수술에 올림픽이 있으면 나가고 싶다는 농담을 하곤하셨다. 기능올림픽처럼 말이다. 세상 모든 성형외과 의사가 저마다 자신의 수술과 수술법이 최고라고 말하는 것에 대한 일갈이었을 것이다.

물론, 성형수술 올림픽이라는 것은 인권과 윤리적, 법적 측면에서 불가능한, 상상 속의 이야기다. 그러나 만약 동계올림픽에 쇼트트랙 종목처럼, 세계 성형올림픽에 돌출입수술 종목이 있다면 필자는 금메달일까?

올림픽 금메달에는 실제로는 순금은 1% 뿐이고 나머지 99%는 은이라고 한다. 올림픽 금메달의 가치는 물직적인 순금의 가치가 아니라, 세계 최고가 되기 위해 그 선수들이 흘린 땀과 노력에 상응하는 상징적이고 위대한 가치일 것이다.

필자가 하는 돌출입수술의 가치는 얼마일까?

사실 성형수술의 수술비는 재료비보다는 작품료라고 할 수 있다. 작품을 얼마에 내놓고 싶은지는 작가 마음이다. 자신이 열정과 정성을 들인 자식같은 작품을 헐값에 내놓고 싶은 작가는 없겠지만, 냉정하게도 가치있는 작품이 더 비싸고, 졸작은 팔리지 않는다.

몇 년 전 필자를 찾아온 환자는 20대 초반의 남자였다. 그는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공장에 근무한다고 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필자의 글을 탐독해왔다던 그는 나를 세 번 찾아왔다.

첫 방문때부터 돌출입수술을 꼭 하고 싶다고 했던 환자는 왠지 수술 결정을 하지 못하고 돌아갔다.

두 번째 왔을때는 학창시절 돌출입 때문에 놀림을 받았던 아픈 기억과 마음의 상처를 털어놓았지만, 그러고는 연락이 없었다.

이렇게 계절이 두 세 번 바뀌고, 세 번째 날 찾아 왔을때는 찬바람이 부는 겨울이었다.

세 번째 날 찾아온 남자는 목도리를 풀고 외투 속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게 내밀었다.

-원장님, 이런 말씀드리기 너무 죄송하지만, 제가 그동안 돈을 벌면서 최대한 아껴서 모았는데 지금 이정도입니다. 꼭...수술하고 싶습니다.

통장이었다.

통장을 집어들긴 했지만 금세 눈시울이 뜨거워져서 글자가 흐릿해졌다. 이상한 느낌이었다. 내가 약자를 괴롭히는 구두쇠 스크루지가 된 것 같은 근거없는 자책감과, 환자가 내게 이 수술을 받겠다고 먹고, 사고, 하고싶은 것을 견뎌왔을 시간의 무게, 그리고 부모 손 빌리지 않고 스스로 성실히 청춘을 일터에 바쳐온 대견함, 나에 대한 무한한 신뢰감이 뒤죽박죽으로 날 엄습했다.

정신을 차리고, 필자는 다시 통장을 고이 접어 남자에게 건넸다.

통장잔고는 돌출입수술 비용에 턱없이 모자랐다.

-알겠어요. 수술해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이 수술하고나면, 어떻게 생활하려구요?

-...

-제가 여기서 한달 생활비를 빼고 나머지만 수술비로 받겠습니다.

얼마를 생활비로 남겨드렸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자신의 작품을 싼 값에 내놓고 싶은 작가는 없고, 가치있는 작품이 더 비싸다.

그러나, 환자가 수줍게 그러나 용기 있게 내민 통장이 날 감동시켰다.

삶에는 계산기로 계산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

필자가 그 환자에게 ‘헐값’에 수술을 해준 셈이 되었지만, 수술로 얻은 아름다운 돌출입수술의 결과는 환자의 정직함과 성실함과 어우러져 더욱 가치있게 빛날 것이다. 돌출입수술이라는 치료를 통해 환자의 아픈 마음도 치유되었으리라 믿는다.

수술 후 필자를 찾아온 남자가 환하게 웃는다.

생각해보면 나의 환자들이 내게 주는 환한 웃음과 감사가 내게는 곧 금메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