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Me at the zoo!(나 동물원이야!)"

2005년 4월23일, 이름도 생소한 동영상 플랫폼에 한 편의 동영상이 올라온다. 약 19초 분량의 동영상에서 남자는 미국 샌디에이고 동물원에서 코끼리를 배경으로 이렇게 말한다. "All right, so here we are in front of the elephants, the cool thing about these guys is that they have really, really, really long trunks, and that's, that's cool. And that's pretty much all there is to say(좋아,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있는 곳은 코끼리 앞이고, 얘네들의 멋진 점은 정말, 정말로 코가 길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그것이 멋있다. 특별히 할 말은 그게 다야.)

남자의 이름은 독일에서 출생한 1979년생 자베드 카림,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동영상 플랫폼 유튜브의 공동 설립자다. 그러나 그가 쭈볏거리며 업로드한 동영상에서 중얼거린 말은, 앞으로 펼쳐질 글로벌 ICT 업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예고하는 일종의 예언과도 같았다.

▲ 최초 유튜브 업로드 동영상에서 자베드 카림이 코끼리를 본 소감을 말하고 있다. 출처=갈무리

유튜브 전성시대

유튜브는 2005년 2월 페이팔에서 퇴사한 자베드 카림, 채드 헐리, 채드 헐리, 스티브 천 등이 공동으로 설립했다. 동영상 한 편을 보려고 무한 버퍼링을 감내하는 것을 고통스러워하던 그들은 아예 새로운 형태의 플랫폼을 자신들의 손으로 만들기로 결심한 것이 유튜브 탄생의 동기였다. 그리고 2006년, 구글은 유튜브를 16억5000만달러에 전격 인수했다. 에릭 슈미트 알파벳 회장이 유튜브 설립자들과 점심식사를 한 후 그 자리에서 인수를 결정했다고 한다.

유튜브는 구글에 인수된 후에도 한동안 뚜렷한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다. 무료 동영상 공유 사이트의 기치를 걸고 아마추어 동영상 제작자들을 끌어모으며 외연은 커졌지만, 그와 비례해 적자의 폭도 커졌기 때문이다. 유튜브는 무려 2010년까지 적자에 허덕이던, 누군가의 눈으로 보면 애물단지에 불과했다.

그러나 2018년 현재 유튜브 제국의 미래를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동영상 콘텐츠 유통은 물론 가상현실 등 신기술 도입도 빠르게 이뤄지며 유료 비즈니스 모델까지 등장했고, 전문 유튜버의 성장과 함께 1인 크리에이터라는 새로운 시장을 끌어냈다. 전문적이고 어려운 것으로만 인식되던 동영상 제작과 유통을 빠르게 생활밀착형 서비스로 인식시켰고, ICT 기술 플랫폼이 성장할수록 유튜브의 존재감은 점점 무거워졌다. 소수의 방송사와 전문 제작사 중심의 동영상 생태계 권력을 빠르게 해체시킨 주역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한국어 서비스는 2007년 1월23일 시작됐다. 당시만 해도 유튜브의 암흑기였기 때문에 큰 각광을 받지 못했지만 지금은 압도적인 존재감을 자랑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유튜브의 지난해 12월 국내 동영상 시장 점유율은 74.9%에 이른다. 2위인 아프리카TV가 5%에 불과하기 때문에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국내 OTT(오버더탑) 시장 기준으로 봐도 비슷한 추이가 보인다. 시장조사업체 코리안클릭에 따르면 2016년 12월 유튜브의 국내 OTT 점유율은 57.5%였으며, 지난해 12월은 66.1%다.

국내 동영상 시장에서 유튜브가 '초월적 갑'의 지위를 가지자 통신사들은 역차별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무료 캐시서버라는 선물까지 안겨주고 있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OTT 플랫폼 '푹'을 출시하며 자신들의 콘텐츠를 유튜브에서 철수시키는 등 콘텐츠 저작권 반격에도 나섰으나 유튜브의 존재감은 점점 커지고 있다는 평가다. 2008년 말 점유율 2%에 불과했던 유튜브는 지난해 9월 국내 모바일앱 사용시간 기준으로 카카오톡을 누르고 1위에 오르기도 했다.

▲ 한성숙 네이버 대표가 커넥트 데이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출처=네이버

유튜브, 포털 부술까?

한성숙 네이버 대표는 21일 서울에서 열린 커넥트 데이에서 유튜브의 성장을 두고 "위기라고 생각한다"며 "동영상 투자를 늘릴 것"이라고 답했다. 단순히 유튜브의 등장과 존재감에 위기를 느끼는 것이 아니다. 동영상 제국을 완성한 유튜브의 다음 행보를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유튜브의 검색 플랫폼 대체 가능성이다.

유튜브가 포털의 검색 서비스를 대체할 수 있을까? 포털의 성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내 대표 포털 플랫폼인 네이버의 성장은 다양한 근거로 설명할 수 있지만, '지식인'과 같은 텍스트 기반 궁금증 해결 솔루션이 특히 큰 역할을 했다는 것에 이견의 여지가 없다. 사람들은 궁금한 것이 있으면 PC를 가동해 네이버에 접속, 단어가 아닌 장문의 형태로 질문의 답을 원했고, 집단지성이 화답하며 네이버의 생태계가 크게 확장됐기 때문이다. 네이버는 그 과정에서 카페와 블로그를 비롯해 다양한 텍스트, 그리고 이미지 기반의 데이터를 차곡차곡 확보하며 일종의 가두리 양식장을 구축했다.

네이버에 답을 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네이버 내부에서 제공하는 답안이 맞춤형으로 전달됐고, 네이버는 바다로 나가기 위한 항구가 아니라 바다와 비슷하면서 편리한 편의시설이 구비된 워터파크로 변해갔다.

문제는 궁금한 것을 묻는 행위와, 기반인 텍스트 및 이미지의 가치가 시간이 갈수록 퇴색되고 있는 점이다. 네이버 검색을 활용하는 사람들은 궁금한 것을 알기위해 찾아온다. 텍스트로 검색을 하면 지식인과 블로그, 카페에서 다양한 결과가 나온다. 즉 궁금한 것이 '무엇이냐(What)'에 대한 답을 '텍스트'로 얻어간다. 지금도 이 방식은 유효하다.

재미있는 대목은, 지금 10대들은 일반적인 방식과 전혀 다르게 ICT 세상과 소통한다는 점이다. 10대들은 무엇(What)은 기본이고, 어떻게(How)를 찾는다. 물론 무엇에 대한 궁금증에 대한 답도 전제되어야 하며, 현재의 포털은 '어떻게'도 비교적 자세히 보여준다. 만약 '피자를 만드는 법'이 궁금할 경우 지금까지 우리는 네이버 검색창에 텍스트로 입력해 텍스트와 이미지로 설명된 카페와 블로그 콘텐츠를 확인한다. 반면 동영상은 여기에서 '어떻게'를 더욱 확실하고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피자를 만드는 법'이 궁금한 사람에게 직접 밀가루 반죽부터 토핑을 올리며, 오븐에 굽는 전 작업을 생생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정보를 제공하는 행위에서 포털이 1차적인 질문의 답을 텍스트와 이미지로 제공한다면, 유튜브와 같은 동영상 콘텐츠는 2차적 질문의 답을 말 그대로 가감없이 보여준다는 점이 중요하다. 심지어 1차적 질문에 해당되는 '무엇'의 수요도 끌어오는 분위기까지 포착된다. 10대들을 중심으로 포털의 전통적인 기능이 유튜브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론도 있다. 동영상이 직관적이고 확실한 정보의 제공을 가능하게 만들지만 소요되는 시간과 번거러움을 고려하면 당장 텍스트 기반 콘텐츠의 아성을 넘을 수 없다는 지적이다. 대부분의 세대에게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현재의 10대들로만 범위를 한정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들은 Z세대, 아이젠 키즈다. 스마트폰을 오래 보여주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엄마 세대 이후, 즉 모바일 ICT 기기의 활용에 큰 거부감이 없는 부모들을 가지고 있으며 태어날 때부터 초연결 생태계에 익숙하다. 이들의 특징은 능동성이다. 대치동 일타강사 수업현장에 달려가는 것이 아닌, 1대1 온라인 튜터링으로 공부하며 궁금한 것이 있으면 바로 검색해 알아본다. 모든 정보가 연결되어 있음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 맞는 개인화된 최적화 환경을 구축하는 세대다. 이들은 텍스트와 이미지에 만족하지 않는다.

▲ 유튜브. 출처=픽사베이

82피플이라는 신조어에도 힌트가 있다. 82피플의 '82'는 82년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빨리(82)'라는 뜻이며 여기에 영어 피플(People)을 더해 만들어진 단어다. SNS 등에서 인기를 끄는 물건을 직접 만들거나, 혹은 주문해 파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다소 불법의 여지도 있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능동성이다. 스스로 제작하고 찾으며, 자신에게 맞는 확실한 개인화 환경을 찾아간다. 동영상을 통해 무엇과 어떻게를 동시에 확보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심지어 재미도 있다.

모든 정보가 연결되어 있으며, 능동성까지 가진 10대에게 텍스트와 이미지 기반의 1차적 질문의 답만 제공하는 포털은 매력이 크게 반감된다. 여기서 포털, 특히 네이버의 위기가 시작된다. 질문의 답을 찾으려는 행위 자체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정제된 콘텐츠를 모아 편리한 워터파크를 제공했던 과거의 정공법도 발목을 잡는다. 지금까지는 정보를 원하려던 사람에게 '정제된 메이드 인 네이버 콘텐츠'를 제공하면 끝이었지만, 10대들에게 '정제된'이라는 수식어가 들어가는 순간 플랫폼 가치는 반감된다.

▲ 카카오톡보다 페이스북 메신저를 더 활용한다고 말하는 10대들. 출처=스브스 갈무리

더 심각한 문제는 현재의 네이버가 단순히 동영상 인터페이스 변화를 꾀하는 수준에서 대응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튜브와 같은 오픈 동영상 플랫폼이 다양한 플레이어, 즉 고객들을 영입하며 바람을 일으키고 있으나 네이버는 이 지점에서 철저한 품질관리에만 집중하고 있다. 네이버 TV의 인터페이스 개혁이나 동영상 검색 개선 등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님에도, 문호를 개방하는 일에 소극적이다.

유튜브와 콘텐츠 저작권 분쟁을 일으키던 지상파 방송사와 협력하는 순간 정해진 결과라는 말도 나온다. 당연한 전략적 선택이지만, 네이버는 크리에이터의 손에서 자연발생적 콘텐츠 생성의 기회를 스스로 놓아버린 분위기다. 한 대표의 부사장 시절 야심작인 '브이 플랫폼'도 철저히 연예인과 같은 셀럽 중심이다. 양방향이 아닌 단방향 콘텐츠 파워만 키워 '우리가 만든 멋진 영상을 보라'는 일차원적 사고에 갇혀있다.

유튜브의 동영상 스펙트럼 확장은 모바일 메신저 시장에도 지각변동을 일으킬 수 있다. 이제 10대들은 카카오톡이 아니라 페이스북 메신저를 통해 소통한다. 기성세대와 선을 긋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자, 콘텐츠 확장과 재미를 극대화시키기 위함으로 해석된다. 지금까지와의 방식으로는 변화된 ICT 플랫폼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물론 10대들의 방식에 불과하며, 이들이 자연스럽게 포털이나 기존 SNS에 편입될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않다. 10대의 구매력은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당장 포털의 아성이 무너질 가능성도 낮다. 그러나 초연결 생태계는 능동적인 플레이어를 육성하고 있고, 이들은 자세한 정보와 직관적인 사용자 경험, 그리고 재미를 추구하고 있다. 많은 고민이 필요한 대목이다. 코끼리 앞으로 다가가 '이것이 전부야'라는 영상이 공개된 순간, 이제 정말 '동영상이 전부인 세상'이 오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