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여기 두 개의 기업이 있습니다. 네이버와 KT. 네이버는 이견의 여지가 없는 국내 ICT 업계의 최고 기업이며 KT는 대한민국 통신역사의 산증인으로 부를 수 있습니다. ICT와 통신의 대표주자인 이들은 각자의 경쟁력을 키우는 한편, 필요하다면 상대방의 영역까지 빠르게 진격해 충돌하기도 합니다. 그 연장선일까요. 최근 이 두 기업은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표하며 묘한 연결고리를 보여주고 있어 눈길을 끕니다. 바로 '골목상권 접근법'입니다. 비슷하지만 다른, 두 기업의 방식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KT는 20일 가상현실 시장 발전을 위한 로드맵을 발표했습니다. 3월 초 신촌에 브라이트라는 가상현실 테마파크를 개관하는 한편 국내 가상현실 시장을 1조원 규모로 키우겠다는 청사진도 공개했습니다. 그리고 하루 뒤 네이버는 커넥트 데이를 열어 스몰 비즈니스 사업에 인공지능을 덧대는 새로운 플랫폼 전략을 공개했습니다.

두 기업의 행보에서 공통으로 뽑아낼 수 있는 키워드는 골목상권입니다. KT부터 보겠습니다. KT는 가상현실 테마파크인 브라이트 개관, 일체형 HMD(Head Mounted Display)를 포함한 개인형 VR극장 서비스를 예고하는 한편 상생을 위한 다양한 대의명분을 걸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중소 가상현실 게임방 업주와의 상생방안입니다. KT에 따르면 국내 가상, 증강현실을 아우르는 실감형 미디어 시장 규모는 약 1800억원 수준입니다. KT는 이를 1조원 규모로 키우겠다고 발표하며 가상현실 게임방 업주들과 보폭을 맞추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가상현실 게임방 하나를 차리기 위해서 행정안전부(공간), 과학기술정보통신부(플랫폼), 문화체육관광부(콘텐츠)의 심의를 각각 받아야 하는 상황을 고려해 복잡한 규제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한편, 심의문제를 해결한 플랫폼과 콘텐츠를 중소 중소 사업주들과 적절한 가격에 공유할 방침입니다.

하반기에는 법규와 제약사항의 개선을 위한 협력관계 구축에도 나섭니다.

실감형 미디어 업계의 발전을 위한 전용 펀드 조성도 나섭니다. 실감형 미디어 콘텐츠 제작을 위한 국내 사업자 협업은 물론 유명 글로벌 콘텐츠 저작권을 확보해 이를 공유합니다. 단말 제조사, 게임 등 콘텐츠 업체, IT기업 등이 참여하는 가상현실 얼라이언스를 연내에 출범할 예정이며 스카이라이프, KTH 등과 협업해 콘텐츠 플랫폼 기반 고도화를 위해 적극적인 투자를 할 예정입니다.

KT의 행보는 순수하게 5G를 키우기 위한 핵심 콘텐츠 사업 육성에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KT는 5G의 '특이점'이 가상현실에 있다고 보고, 이를 키워 궁극적인 초연결 네트워크의 강자가 되려고 합니다. 훌륭한 전략입니다. 가상현실을 효과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방대한 데이터를 빠르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하며, 당연히 5G의 발전이 전제돼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상현실 테마파크 브라이트 개관 설립에 숨은 진짜 의도입니다.

재미있는 대목은 가상현실 시장의 규모를 1조원 규모로 키우는 한편, 중소 게임방 업무들과의 협력을 끌어내기 위해 펀드를 조성하고 규제 문제까지 공동으로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지점입니다. 가상현실은 글로벌 ICT 업계의 뜨거운 키워드지만, 아직 뚜렷한 실체를 증명하지 못했다고 봐야 합니다. 글로벌 SNS 기업인 페이스북을 중심으로 다양한 플레이어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시장 자체의 성장은 아질 갈 길이 멀기 때문입니다.

현재 국내 시장에서도 '고작' 1800억원 수준의 시장일 뿐이며 가상현실 특유의 사용자 경험이 게임사업과 만나면서 주로 중소 게임방 업주들이 핵심 플레이어로 뛰고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국내 가상현실 업계는 가상현실 게임방 업주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일종의 골목상권에 가깝습니다.

▲ 모델들이 KT 브라이트에서 가상현실 게임을 즐기고 있다. 출처=KT

KT 입장에서 가상현실 시장의 발전이 5G의 주도권 경쟁에 유리하기 때문에, 생태계의 볼륨을 키우려는 작업에 나서는 것은 당연한 수순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왜 '굳이' 골목상권 플레이어들인 가상현실 게임방 업주들과 손을 잡으려는 것일까요.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혼자 시장의 확장을 꾀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굳이 ICT 오픈 생태계 트렌드를 설명하지 않아도, 이제 하나의 대형 권력이 광범위한 세상의 패러다임을 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졌습니다. 다양한 플레이어의 참전이 있어야 경쟁과 견제, 협력의 시너지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KT의 가상현실 경쟁력 강화에 국내 중소 플레이어들이 반색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여기서 네이버의 사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네이버는 21일 커넥트 데이를 통해 스몰 비즈니스와 기술기반 플랫폼 강화를 통해, 다양한 플레이어의 판매자 경험을 고도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한성숙 네이버 대표는 기조연설에서 스몰 비즈니스와 프로젝트 꽃의 성과를 설명하는 한편 기술기반 플랫폼을 자사의 생태계에 빠르게 이식했음을 강조했습니다. 한 대표는 "창작자와 스몰 비즈니스가 성장의 기회를 확장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면서 “사용자에 집중, 기술에서 답을 찾겠다”고 강조했습니다.

▲ 한성숙 네이버 대표가 커넥트 데이 기조연설에 나서고 있다. 출처=네이버

이어진 세션에서 최인혁 네이버 비즈니스 총괄은 네이버 쇼핑 플랫폼의 방향성을 설명했다. 네이버는 구매자와 판매자를 단순히 연결해주는 다른 쇼핑 중개 사업자와 달리, 판매자가 주인공이 되는 플랫폼 제공자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미지 분석을 통해 상품을 등록할 경우 인공지능이 자동으로 태그돼 추천 큐레이션을 제공하고 코디 연관 상품, 구매할 상품 자동 등록도 지원할 전망입니다. 비즈 어드바이저(Biz Advisor)를 담당하는 김유원 리더는 데이터의 운용을 통해 판매자에게 특화된 솔루션을 약속하기도 했습니다.

네이버 파트너스퀘어도 빠질 수 없습니다.  지난 1월 네이버는 대표 직속의 ‘창업성장지원TF’를 조직하고, 지역별 로컬 비즈니스들이 파트너스퀘어를 기반으로, 온라인 창업을 시작하고, 오프라인에서도 새로운 비즈니스 성장 모델을 발굴할 수 있도록 창업 인큐베이팅 시스템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네이버 창업성장지원TF의 추영민 리더는 “온라인을 통해서는 AI를 접목한 진화된 기술플랫폼을 기반으로 스몰비즈니스와 창작자를 돕는다면, 오프라인에서는 전국 4곳의 파트너스퀘어가 스몰비즈니스와 창작자의 성장 거점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네이버가 스몰 비즈니스에 강화하는 것은 그 자체로 '골목상권과의 협력'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강력한 기술 기반의 플랫폼 강점으로 거대 ICT 생태계에 스몰 비즈니스를 대규모로 끌어들여 상생을 끌어낸다는 복안입니다. 그 중심에서 자신들의 생태계 강화도 이루겠다는 의지입니다.

KT와 동일합니다. ICT 플랫폼 역량을 키우기 위해 골목상권의 다양한 플레이어들을 규합해 오픈 생태계를 만드는 한편, 인공지능 기술로 특화된 판매자 경험을 제공하는 것은 5G 역량을 키우기 위해 골목상권의 다양한 플레이들을 규합해 오픈 생태계를 만드는 한편, 가상현실 관련 규제 개혁과 사업적 협력을 타진하는 KT의 로드맵과 같은 방식입니다.

흥미로운 대목은 네이버와 KT의 현재 상황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KT는 아직 불모지에 가까운 가상현실 시장을 5G로 향하는 동력으로 삼았기 때문에, 아직 국내에서 뚜렷한 경쟁자가 없습니다. KT를 중심으로 골목상권을 규합해 새로운 질서를 만들면 끝입니다.

그런데 네이버는 플랫폼 사업을 핵심으로 삼기 때문에, 이커머스 관점에서 무수히 많은 경쟁자가 있습니다. 오픈마켓과 소셜 커머스라는 기존 사업자들이 포진한 상태에서 네이버는 일종의 후발주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스몰 비즈니스를 내세워 플랫폼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전략을 짜는 순간, 시장 독과점의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생태계 객체들의 사정도 다릅니다. 국내 가상현실 골목상권은 전체 대한민국 경제에서 아직 차지하는 비중이 낮지만, 네이버의 골목상권 파트너들은 상거래라는 업의 특성을 고려해 볼 때 거의 '인류역사'에 가까운 볼륨을 가지고 있습니다. 업의 종류도 많고, 숫자도 압도적이며 자체의 스토리텔링이 거대하다는 뜻입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이들을 하나로 규합해 새로운 질서를 만들기 어려워집니다. 모든 플레이어를 네이버라는 플랫폼에 끌어당길 수 없지만, 끌어당길 수 없기 때문에 플레이어들의 진영이 갈리게 되고 잡음이 벌어지기 쉽습니다. '네이버의 ICT 경쟁력을 활용하지 못하면 도태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제법 무거운 이유입니다.

최근 SK그룹을 중심으로 기업의 사회적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위기가 엿보입니다. 여기에는 '상생'이라는 핵심적인 키워드가 존재합니다. 문제는 상생을 새로운 기업 환경의 성장 동력으로 삼았을 때 발견되는 업의 차이에서 생깁니다. 상대적으로 단순한 가상현실이라는 산업의 영역과, 모든 상거래의 플랫폼화를 꿈꾸는 기업이 비슷한 방식을 취한다고 해도 과정의 험난함은 차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플랫폼 사업의 핵심은 무엇인가? 오픈 생태계 전략의 세밀한 방법론은 무엇인가? 모든 근본적인 질문의 답은 여기에서 찾아야 합니다.

[IT여담은 취재 과정에서 알게 된 소소한 현실, 그리고 생각을 모으고 정리하는 자유로운 코너입니다. 기사로 쓰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한 번은 곰곰이 생각해 볼 문제를 편안하게 풀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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