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전현수, 황진중, 김태호, 한현주 기자] 청년 실업률이 높아질수록 구직에 나선 청년들의 고된 경험담은 많아진다. 청년들은 좁은 취직의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만들 수 있는 스펙(사회 통념상 취업 자격요건)이라는 스펙은 모두 만들고 있다. 그러나 취업 관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오히려 좁은 문은 기업들이 특정 대학 출신, 임직원 자녀 특혜 채용 등의 차별의 문을 추가하면서 더욱 좁아지는 형국이다. 20번의 탈락은 보통이고 60번 떨어진 청년층의 눈에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다. 청운의 품을 꾸고 대학에 들어갔으나 졸업과 취업의 관문을 통과하지 못해 꺾이고 풀이 죽은 채 눈치를 보는 청년들은 절규한다. 울분을 삼키고 묵묵히 취업 준비를 할 수밖에 없는 청년들의 좌절과 분노, 소망을 모았다.

60군데 지원했다가 낙방한 지방국립대 출신 A씨(26)

“이력서를 쓰다가도 ‘어차피 떨어질 텐데 왜 써야 하지’라는 생각에 자괴감이 든다.” 회계직 취업을 희망하는 A씨(26)의 하소연이다. 그는 2016년부터 2년간 약 60곳의 회사에 지원서를 냈다.

그는 강원도의 국립대학교에서 회계학과를 졸업했다. A씨는 취업을 위해 재경관리사, 전산세무, 전산회계, ERP회계 등 회계 관련 자격증을 여러 개 취득했다. 또 토익, 토익스피킹, 컴퓨터활용능력, 한국사능력검정자격증도 취득했다. 해외 봉사단체에 들어가 봉사도 했고 국내 기업의 홍보팀에서 인턴생활도 했다.

A는 취업하기 위해 열심히 스펙을 쌓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올해 1월 기업들과 공기관의 채용 비리가 하나둘 드러났지만 분노하지 못했을 만큼 그는 깊은 실망감에 빠졌다. 취업이 너무 절박하기 때문에 자기도 특혜채용 제안이 들어오면 거절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공기업 전기직을 준비하다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서울 상위권 대학 출신 B씨(29)

B씨(29)는 올해 2월 지방 전기직 공무원에 합격했다. 그는 서울 상위권 대학의 전자공학과 출신인데 전공과 무관한 공무원을 평생의 업으로 삼았다. 그는 공무원 시험에 응시한 것에 대해 “일에서 보람을 느낄 여지는 적지만, 정년까지 이직 걱정 없이 근무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B씨 역시 숱한 고배를 마셨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기 전 약 1년간 공기업 취업을 준비했지만, 스펙 등이 부족하다고 판단해 공무원 준비로 전환했다. B씨는 “채용 내정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 상실감이 매우 클 것”이라면서 “회사도 공무원 시험처럼 점수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해서 합격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B씨는 몇몇 기관에서 발생한 SKY 우대에 대해서는 의외로 긍정 의견을 표시했다. 그는 “사람을 판단하는 데 매우 적은 시간밖에 없는 상황에서 학력은 가장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면서 “학력은 사회의 첫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학입시를 어떻게 준비했는지를 볼 수 있는 일종의 ‘됨됨이 지표’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그는 ‘블라인드 채용’에 대해서도 “긍정적이지만 상위권 대학 출신자가 줄어들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블라인드 채용제도 도입으로 상위권 대학 출신 우대가 사라져도 상위권 대학 출신이 상대적으로 스펙이나 능력 등이 우세해 여전히 더 많이 합격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금융권 계약직을 전전하는 서울 사립대 출신의 은행직원 C씨(28)

C씨(28)는 현재 두 번째 직장인 유럽계 은행에 다니고 있다. 서울 소재 사립대학을 졸업한 그의 전공은 경영학이고 일어일문학을 부전공으로 공부했다. 졸업 학점은 4.5점 만점에 3.5점 이상이다. 그는 취업 준비를 위해 통계자격증(SAS), 컴퓨터 자격증(ICDL) 등 각종 자격증을 준비했다. 토익, 토익스피킹 같은 어학성적도 물론 있었다.

C씨는 주로 은행과 대기업, 중견기업 위주로 서류를 넣었다. 그는 첫 번째 구직활동에 서류를 100개 이상 넣으며 취업난을 실감했다. 이른바 ‘인 서울’ 대학을 나왔고, 어학성적, 각종 자격증을 준비했는데도 취업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어렵게 들어간 첫 직장의 계약 기간이 만료되고 두 번째 직장을 구할 때도 취업난은 여전했다. C씨는 “1년 경력을 쌓아서 전보다 취업이 수월할 줄 알았는데 여전히 힘들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C씨는 두 번째 구직에서도 60개 이상 회사에서 떨어지는 등 힘든 시간을 보냈다. 경력이 있는데도 서류에서 계속 탈락하는 걸 보면서 ‘내가 상위권 대학 출신이 아니라 그런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생각이 완전히 틀리지만은 않는다는 걸 C씨는 두 번째 직장에 취직한 후 확인했다. C씨는 “출신 대학이 취업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학연이 여전히 중요한 사회인 것 같다. 고위 계층 사람들이 동문을 뽑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 같다.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만들고 자리를 굳히기 위해서. 우리 부서만 봐도 부서 대표가 Y대 출신인데, 부서에 Y대 출신 사람들이 많다. 물론 직원들이 입사한 이유가 출신학교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 영향은 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C씨는 최근 금융권에서 SKY 대학 출신을 우대해 부당하게 인사를 결정한 사건에 대해서 “SKY 출신들이 본인들의 권력을 형성, 보존하기 위한 형태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런던 예술대학을 졸업한 유학파 재원 D씨(33)

D씨(33)는 교육열이 치열하다는 분당 학군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2014년 8년간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본격 취업 준비를 했다. 언론계나 문화예술계, 국제기구, 공기업 등 다양한 곳에 입사원서를 냈다. 그리고 취업하기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최선을 다하면 결과도 좋을 것이라는 긍정적 생각과 성실히 살아왔던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여곳의 면접을 보면서 사회에 ‘보이지 않는’ 끈과 벽이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실력보다는 학벌과 인맥이 취업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걸 알고 나서 그는 사회에 대한 불신과 열등감에 시달렸다.

D씨가 취업에 계속 실패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자기가 부족하다는 자괴감이었다. 최선을 다해 지원해준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나이 든 부모님에게 의존하며 지내는 생활이 견디기 힘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공공기관과 금융권에서 채용 비리 사건을 보고 울화통이 치밀어 견디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D씨는 “SKY 대학 출신들이 인맥으로 채용되고 자기들끼리 자리를 나눠 먹는 행태는 심각한 사회문제다. 반드시 엄벌해야 한다”며 울분을 터뜨렸다. 그는 “SKY 대학을 우대하는 것은 8세부터 19세까지의 노력만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것이다. 그 이후의 발전은 평가할 수 없는 도태되기 쉬운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노력하는 과정과 일에 대해 얼마나 준비했는지 성실함을 평가하고 정당하게 평가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나름 보완책도 제시했다. 그는 “블라인드 채용을 해야 한다”면서 “학벌로 면접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취업 준비생들이 많은데, 블라인드 채용으로 진행하다가 학벌 쏠림 현상이 어느 정도 해소되면 일정 기간 이후에는 블라인드 채용과 학벌 오픈 채용을 병행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채용 비리가 생기는 원인에 대해서는 “윤리의식 부재와 타인의 어려움에 공감하지 못하는 뒤떨어진 사회구조와, 치열한 경쟁 환경에서 자기만의 특권의식에 사로잡힌 세대가 문제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D씨는 “그들은 영향력 행사를 사회 공익이 아닌 사익으로 남용하고 있다. 채용 비리가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내정자 면접 경험한 서울 중상위 대학 출신의 중견기업 직원 E(28)

서울 중상위 대학 물류학과 출신 E씨(28)는 내정자가 있는 중견 기업 면접을 본 경험을 털어놨다 그는 “1차 면접 때 같이 본 5명이 2차 면접 인원이라고 면접관이 설명했는데 1차에 없던 사람이 갑자기 나왔다. 그 사람은 2차 면접에서 평균 구직자들보다 낮은 실력이었으나 결국 붙었다”고 답했다.

E씨는 “내가 실력이 없어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무슨 짓을 했어도 떨어졌을 거라는 생각이 위안이 될 정도였다”면서 “내가 부족해서 떨어졌다고 한다면 자존심이 더 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E씨는 기업들의 특혜 채용 비리는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고 있었다. 그는 “채용 비리 때문에 떨어지면 운이 안 좋았다고 생각한다”면서 “불합리한 채용 상황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구직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 현실에 지장이 있기 때문에 생각을 지우고 구직활동에 전념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채용 특혜를 받을 정도라면 금수저일 것이고 그런 사람들은 대개 유치원부터 학업에 사용하는 비용이 다르다”면서 “열심히 공부해 대학에 입학했더니 부자들은 외국 대학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E씨는 “사회구조적인 문제는 해결하는 데 오래 걸리니, 안타깝지만 스트레스를 받지 말고 구직하는 것이 일단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중위권 대학 출신 ‘고스펙’ 제2금융권 직원 F씨(27)

F씨는 서울 중위권 대학 경제학과 4.0이라는 높은 학점으로 졸업했다. 그렇지만 그는 1년 동안 구직 생활을 해야 했다. 쓰라린 경험을 통해 그는 대한민국에서 취업할 때 구직자에게 가장 중요한 자격은 ‘출신 대학’이라는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본인의 약점을 ‘출신 대학’이라고 말한 F씨는 스스로 약점이라고 생각한 부분을 만회하기 위해 토익, 토익스피킹, 펀드·증권투자권유대행인, 한국재무설계사(AFPK), 은행텔러(CBT) 자격증을 따고, 대외활동으로 은행 서포터즈, 해외 봉사, 봉사 동아리, 시민단체 서포터즈, 발표 동아리, 주식투자 동아리에 참가했다. 취직에 대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다 했다고 한다. 하지만 경제학도인 그는 제1금융권에 취업하지 못하고 제2금융권에서 일하고 있다.

F씨는 금융권 채용비리에 충격을 받았다. 그는 “그나마 학벌 차별이 없고 공평하게 채용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 제1금융권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데 충격을 받았고, 한편으론 씁쓸하다”고 말했다. 그 역시 학교차별에 울분을 토로했다. 그는 “고교 시절에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교에 진학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좋은 대학교와 학벌은 다르다”면서 “고교 공부로 정해진 학벌이 4년 뒤의 취업을 결정하는 것은 절대 말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F씨는 “책임자를 퇴출하고 부정 합격자의 응시를 5년간 제한하는 등 강력한 공공기관의 조치를 민간기업에도 적용해야 한다”면서 “쉽지는 않겠지만, 바람직한 세상이 되려면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