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장영성 기자] GM이 한국 정부에 재정 지원을 요구하면서 ‘거버먼트 모터스(Government Motors)’라는 지적이 재조명되고 있다. GM이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정부 지원을 받아 회생했을 때 붙여진 별명이다. GM은 경영 위기 때마다 정부에 손을 벌려왔으나 이익을 위해 공장을 폐쇄하고 고용 축소를 강행해왔다. 업계에선 산업 전반 우려와 함께 최근 GM이 본색을 드러내고 있는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 미국 디트로이트에 위치한 GM 본사. 사진=야후픽처

정부지원 받아넘긴 글로벌 금융위기
“생산 통한 마진확대 아닌 파이낸싱 통한 이윤 창출”

GM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 정부 지원으로 가까스로 회생한다. 2009년 6월 기업회생을 신청했는데, 당시 GM의 자산은 823억달러(약 88조원)인데 비해 부채는 1730억달러(약 186조원)나 됐다. 조기 회생은 고사하고 살아날 가능성조차 불투명했다.

GM이 몰락한 원인은 고유가와 경제 위기에 취약한 제품 포트폴리오 구축과 막대한 유산 비용(Legacy Cost)에서 비롯된 고비용 구조의 고착화에 있다. 여기에 자동차 사업보다 금융 사업에서 수익을 올리는 본말이 전도된 사업 모델의 운영도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때 미국 정부는 495억달러(약 52조원)의 공적자금을 지원한다. 이로 인해 미국 정부가 GM 지분을 60% 이상 보유하면서 사실상 ‘국영기업’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거버먼트 모터스(Government Motors)’라는 오명도 이때 생기게 된다.

미국 정부 덕분에 GM은 2009년 235억달러 적자에서 2010년 47억달러 흑자로 실적이 급반등한다. 2004년 이후 6년 만에 처음으로 이익을 냈다. 파산 신청과 함께 상장(上場) 폐지됐던 GM 주식은 2010년 11월 다시 뉴욕 증시에 상장된다. 회생에 성공한 GM은 2012년 980만대의 자동차를 판매하면서 세계 자동차 3위에 자리까지 오르게 된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2013년 지분을 모두 처분했지만 회수한 돈은 392억달러(약 41조원)에 그친다. 10조원이 넘는 국민 세금이 축난 것.

박상인 서울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당시 GM이 청산과정(파산)을 거치게 됐다면 단기 일자리까지 고려한 실직자 수는 330만개에 이를 수 있었으나, 정부 지원을 통해 일자리를 보존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러나 GM의 경영진을 제외한 누구도 회사 재건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본 투입은 옳은 해결책이 아닐 것”이라고 지적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당시 GM이 기업회생에 들어갔을 때 공적자금 손실보다 GM을 최대한 빠르게 시키는데 중요하다는 큰 공감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문제는 그다음부터 일어난 것인데, GM이 파이낸싱 위주로 운영됐다”면서 “GM이 파산에 들어갔던 이유 중GM내 금융회사의 유동성 문제도 있었는데 이로 회귀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회생 이후 성공 가도를 달리던 GM은 파산의 주요 원인이었던 금융사업에서 탈피하고 자동차 기업으로서의 미래를 위해 사업을 재편하는 것처럼 보였다. 많은 이들이 GM의 판매량 상승에 대해 전통적인 자동차 기업으로 복귀하여 세계 수위를 놓고 경쟁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이 시기에 댄 애커슨 전 GM 최고경영자(CEO)는 “GM은 이윤과 마진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판매량 순위권에 들려고 노력하는 것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라는 말을 한다. GM의 자동차 판매량 상승에 대해 다른 금융 이윤 창출을 이야기한 것.

GM 회생 당시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정부의 자동차 태스크포스(TF) 팀은 GM 경영진들의 수익성을 강조하는 것을 보면서, 그것이 점유율 하락에 따라 향후 GM의 수익성 자체에도 엄청난 위협이 될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GM 경영진들의 이윤과 마진에 대한 강조는 그들이 단순히 기업의 기본적인 목표에 충실하게 임하고 있다고 볼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러한 사례는 GM의 경영은 재무적 관점에 크게 의존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 GM 호주 법인 '홀덴'. 사진=홀덴 홈페이지

‘먹튀 논란’ GM호주법인 ‘홀덴 공장’ 폐쇄

GM의 '정부 의존 기업'이라는 오명과 함께 나오는 일명 ‘먹튀 논란’이 있다. 이는 GM호주 공장인 ‘홀덴’ 폐쇄에서 사례를 두고 나온 말이다. 지난해 10월 미국 GM은 홀덴을 69년 동안 운영하다가 공장을 폐쇄했다. 공장 폐쇄는 지난해 이뤄졌으나 GM이 공장 철수 방침을 결정한 것은 2013년 12월이었다. 앞서 GM은 호주정부로부터 2001년부터 12년 동안 1조7000억원의 지원금을 받았다. GM은 호주 정부가 지원금을 끊자 곧바로 공장 폐쇄를 결정한 셈이다.

홀덴 공장 철수는 ‘고비용 저효율’과 ‘판매량 급감’이 근본 원인이었다. 한국GM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철수를 선언한 이후 GM호주 법인은 실적은 악화가 갈수록 불어났다. 최저임금은 미국의 2배를 웃돌아 높은 인건비로 인해 경쟁력이 떨어졌다. GM 본사는 호주 내 자동차 생산 비용이 다른 해외 GM 공장보다 1대당 평균 300만원 이상 높다고 밝혔다.

당시 GM은 호주 노조의 경영 정상화를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공장을 폐쇄했다. GM의 글로벌 경영 문제를 연구해온 황현일 사회학 박사는 “호주 노조는 2013년 GM의 폐쇄 결정에 3년간 임금 동결 등 양보를 통해 사업을 계속 유지하기를 원하였지만 GM은 결정을 되돌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 GM캐나다 법인의 오샤와 공장. 사진=윈저스타

캐나다 오샤와 공장폐쇄
“회생자금까지 지원하고 노동자까지 애썼건만”

GM 캐나다는 1990년대 4만명을 고용하여 캐나다 자동차 기업 중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다. 그러나 2012년에 8000명을 고용하는 기업으로 규모가 감소하게 된다. 당시 고용 인원 급감은 1990년대 초에 토론토(Toronto)와 생뜨떼헤스(Ste. Therese)의 조립 공장, 오샤와(Oshawa)의 트럭 공장, 윈저(Windsor)의 변속기 공장이 폐쇄가 원인이었다.

최근 폐쇄를 염두한 고용 축소에 돌입한 오샤와 공장의 경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본격적으로 고용 축소가 시작된다. 금융위기에 회사가 출렁이던 GM을 위해 캐나다 정부는 100억달러(약 10조7000억원) 규모의 구제비용을 지원한다. 노조는 임금 동결을 선언하고 근무시간을 늘리는 등 회사를 살리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맸으나, GM은 캐나다 생산 축소를 위해 근로자를 줄여나간다.

GM은 2005년에 오샤와 공장의 두 개 조립라인 중 하나를 2008년부터 생산 중단하겠다고 발표하였지만, 이 계획은 실행되고 있지 않다가 2012년 단행한다. 생산 중단이 결정된 오샤와 공장 쉐보레 임팔라를 생산하고 있었고, 잉거솔 공장에서 운송된 쉐보레 에퀴녹스를 최종 조립했다.

GM 캐나다는 오샤와 조립라인을 폐쇄하면서 임팔라는 유연생산공장(Flex plant)로 불리는 오샤와의 다른 조립라인으로 전환한다. 쉐보레 에퀴녹스는 미국의 새턴 공장으로 배치한다. 이때 미국에 위치한 섀턴 공장은 폐쇄됐다가 에퀴녹스를 배치받으면서 재가동에 들어가게 된다. 캐나다 공장 생산량을 줄이고 자국에 신차를 배치해 공장을 재가동 시킨 셈이다.

이후에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한다. 2012년 조치 이후 유연공장 하나만 운영되었던 오샤와 공장에서 생산되었던 쉐보레 카마로는 미국 미시간 랜싱 공장으로 이동시킨다. 이로 인해 오샤와 공장에서 근무하는 약 1000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는다.

황현일 박사는 “오샤와 공장 생산비중 감축 사례는 GM 본사가 고용 축소 정책을 어떻게 해왔는지 알 수 있는 예시”라면서 “이는 한국GM이 처한 상황과 유사한 점이 있다. 그것은 모든 자회사들이 향후 생산 물량이 안정적으로 책정되지 않아 고용 불안을 느낀다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황 박사는 “매번 교섭에서 향후 생산 물량 할당이 주요한 교섭 의제로 등장하는데, 이는 노조가 그간 경영진의 고유 권한으로 여겨지던 투자에 개입한다는 측면이 있다”면서도 “그러나 결과를 보면 노동자들에게 과연 안정을 가져다주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향후 생산 보장의 방식은 영구적인 것이 아니라 차기 모델의 생산 주기에 한정되기 때문이다”라고 꼬집었다.

황 박사는 “예를 들어 캐나다의 2016년 교섭 결과를 보면 차세대 생산을 2019년까지 보장한다는 식으로 체결되었다”면서 “한시적인 투자 보장과 노동조건에 대한 양보는 장기적으로 볼 때 지속적인 고용 감축을 가져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울러 “GM이 이러한 정부지원 방식의 경영은 비단 호주와 캐나다뿐만이 아니다”라면서 “유럽GM은 금융 위기 때 독일 정부에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당시 메르켈 정부는 지원을 약속했으나 GM이 독일 공장 매각을 철회하면서 흐지부지되기도 했다”라고 설명했다.

한국에서도 이어지는 ‘정부 의존병’

GM이 정부에 의존한 사실은 앞선 사례에서 극명히 드러났다. 이러한 GM의 정부 의존은 한국에서도 되풀이된다.

GM은 적자난에 시달리는 한국GM을 살리기 위해 한국 정부에 여러 지원책을 요구해 왔다. 정부는 여러 경영상 의혹을 사고 있는 GM의 요구에 대해 거절해 왔다. 그러자 배리 엥글 GM 총괄부사장 겸 해외사업부문(GMI) 사장은 “글로벌 신차 배정을 위한 중요한 갈림길에 있다”면서 “한국GM의 경영 정상화와 관련해 지엠이 다음 단계에 대한 중대한 결정을 내리는 2월 말까지 한국 정부, 노동조합, 주요 주주 등 이해 관계자와 지속적인 논의를 통해 의미 있는 진전을 이뤄내야만 한다”고 말했다. 이후 엥글 사장은 군산공장 폐쇄를 결정했다.

업계에서는 지난 2013년부터 실적이 부진한 해외사업부를 정리해온 GM이 일자리와 신차물량 배정을 무기로 한국 정부를 압박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을 내고 있다. 여론도 비슷하다. 위기 때마다 정부에 손을 벌리다 보니 지원이 끊기면 사업을 접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GM측은 이러한 요구가 수용되지 않을 경우 2월 안으로 부평공장 철수뿐 아니라 한국 철수도 불사르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댄 암만 GM 사장은 최근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 그리고 노조와의 협상 결과에 따라 몇 주 안에 한국 내 다른 공장들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면서 “시간이 없고 모두가 긴박하게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GM은 미국 트럼프 행정부와 보조를 맞추는 모습도 비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군산공장 폐쇄 결정 직후 트위터를 통해 “GM 한국 공장은 디트로이트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GM은 20일 미국 캔자스주 캔자스시티 페어팩스 공장에 2억6500만달러(약 2840억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투자금은 크로스오버 스포츠유틸리티(SUV) ‘캐딜락 XT4’를 생산하는 데 투입된다.

현재 GM은 한국 정부와 산업은행의 지원을 전제로 한국GM의 부평·창원 공장 유지 의사를 밝혔다. 군산공장은 회생이 어려워 매각 진행한다. GM은 자회사 GM홀딩스가 한국GM에 빌려준 대출금(3조원)의 상당 부분을 자본금으로 전환하고 향후 10년간 28억달러(약 3조110억원)를 투자하는 등 자체 회생 방안을 우리 정부에 전달했다. 정부는 한국GM 부실 경영 실사와 GM 본사의 장기 투자를 조건을 판단하여 지원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국내 구조조정업계의 한 전문가는 “대기업 구조조정이 정부 지원 없이 이뤄지기 어렵다”면서 “국내 자본시장에서 한국GM을 살릴 수 있을만한 자본 여력을 가진 기업이 없는 만큼 정부 지원은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GM에 이번 자금 투입이 결정되면 지난 2009년 뉴GM(New GM) 출범 때와 같이 정부에 의존하고 있는 사실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