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희준 기자]정부가 와인 등 주류 수입 유통구조를 개선한다며 주류 수입업자 겸업금지 폐지 등 주류 수입업 제도를 개선한지 6년이 지났지만 유통과정이 여전히 복잡하고 와인판매가격은 수입가격의 열배가 넘고 있다.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로 관세가 없어졌지만 그 과실을 와인 수입업체와 세금을 걷는 정부가 나눠 갖는 바람에 소비자들은 여전히 비싼 값에 포도주를 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정이 이런데도 한국소비자보호원은 “유통구조 개선이 필요하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어 빈축을 사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와인 수입액은 2억1003만달러로 전년(1억9144만 달러)보다 9.7% 증가했다.

와인 판매가 수입가의 11.4~9.8배

한국소비자원은 19일 와인 원산지와 종류, 용량의 다양화 등으로 소비자 선택의 폭이 확대되고 있지만 다른 품목에 비해 수입가격과 판매가격의 차이가 크게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소비자원은 2016년 7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수입와인 평균 수입가격과 판매가격 간의 차이를 본 결과 레드와인은 평균 11.4배, 화이트와인은 평균 9.8배로 다른 품목에 비해 큰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 출처= 한국소비자원

지난해 3월부터 5월까지 주요 수입가공식품의 가격을 조사해 7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생수는 6.6배, 맥주 6.5배, 마요네즈소스 4배, 케첩소스 3.2배, 오렌지주스 3배의 차이가 났다. 수입 쇠고기는 지난 1~6월 조사해 11월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3.5배로 나타났다.

와인은 가격차가 이보다 훨씬 컸다, 2016 7월 수입가격이 5183원인 레드와인의 판매가격은 11.4배인 5만8140원이었다. 그해 12월 수입가격이 5256원인 레드와인의 판매가격은 11.3배인 5만9524원이었다.

지난해 1월 수입가격 4982원짜리 레드와인의 판매가격은 12.4배인 6만2074원이었고 6월 수입가격 6005원인 레드와인의 판매가격은 6만546원으로 10.1배였다. 평균해서 레드와인 판매가격은 11.4배였다.

같은 기간 화이트와인의 판매가격은 수입가격의 평균 9.8배로 조사됐다.

소비자원은 “이처럼 수입와인의 수입가격 대비 국내 판매 가격이 높게 형성되는 이유는 세금(관세 제외시 운임보험료 포함 가격의약 1.46배) 외에도 운송과 보관료, 임대료와 수수료, 판매촉진비, 유통마진 등의 유통비용이 주요 원인인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소비자원은 이번 조사를 바탕으로 중소 수입사들의 시장 참여 확대 등 가격경쟁 활성화를 위한 유통구조 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관계부처에 관련 내용을 건의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수입원가의 30%이상 붙는 세금이 1차 원인

소비자원의 주장대로 와인에는 높은 세금과 높은 유통업체들을 위한 높은 마진이 붙는다. 와인 소비자 가격은 수입원가(산지가격+운임+보험료)에 세금(주세+교육세+부가가치세), 각종 비용(통관+보관+운송비), 수입상 마진, 도매상 마진, 소매상 마진을 모두 합쳐 정해진다.

우선 세금은 주세가 수입원가의 30% 부과된다. 여기에 교육세가 주세의 10% 붙는다. 수입원가+주세+교육세의 10%인 부가가치세가 추가된다.

관세는 과거 기본세율 30%가 적용됐으나 FTA 체결로 EU, 미국, 칠레산 와인은 모두 관세가 철폐돼 붙지 않는다.

문제는 정부가 거둬 들이는 세금은 산지가격 등 원가에 비례해서 불어나는 종가세를 따른다는 것이다. 수입원가가 비싸면 비쌀수록 붙는 세금도 더 커지고 이것이 소비자 판매가격에 상당한 기여를 한다는 점이다. 소비자원은 이 문제에 대해 입을 다물었다.

세정당국인 기획재정부는 세금을 줄여 소비자가격을 내릴 생각은 절대로 않는다.

기획재정부, 경쟁유도해 가격 인하한다고 했지만 효과는 전무

대신 기재부는 유통구조를 개선하는 노력을 한 적이 있다. 수입 주류의 유통 구조는 수입업체 → 중간도매상(중개업자, 수입전문도매상)→ 소매상 → 소비자로 연결되는 구조로 돼 있다.

기획재정부는 2011년 12월 수입주류의 복잡한 유통구조를 개선한다며 주세법 시행령을 고쳐 주류수입업 이외의 제조업, 유통업과 판매업 등 다른 업종 겸업을 금지한 규정, 수입주류를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것을 금지한 규정을 폐지해 2012년 1월부터 시행했다.

기재부는 당시 “이와 같이 개정될 경우 주류 수입업자가 소비자에 대해 직접 수입주류를 판매할 수 있어 거래단계가 줄어들고 유통과정에서의 경쟁이 촉진되어 주류가격 하향안정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 와인 유통구조.출처=기획재정부

이에 따라 수입업체들은 중간상을 거치지 않고 일반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길이 열려 와인 소비자가격이 내려갈 발판이 마련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개정 주세법 시행령의 시행으로 많은 업체들이 시장에 참여했다. 신세계 L&B라는 대기업 계열사가 참여하면서 현재 수입와인 시장에는 100여곳 업체가 난립하고 있다고 한다. 업체가 난립하면 경쟁이 심해져 가격이 내려갈 것으로 보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도 이런 상식은 통하지 않는다. 소비자원의 이날 발표는 이런 평가가 착각이었음을 웅변한다. 와인 소비자 판매가격은 여전히 수입가격의 몇 배가 넘고 유통과정은 여전히 복잡하다고 정부 기관이 자인하지 않는가. 기재부가 밝힌 기대효과는 반만 현실화했고 가격은 요지부동이다.

중간 유통상의 높은 마진 책정도 문제

와인업계는 와인 소비자 가격이 여전히 높은 이유를 여러 가지로 꼽는다. 소비자원은 유통과정을 문제로 지적했지만 와인업계는 종가세의 세금과 중소 영세 수입상 난립 등 복잡한 유통과정을 지적한다.

주류 업계 전문가는 “우리나라 와인 세금은 수입원가에 따라 불어나는 종가체계를 따르기 때문에 똑같은 와인이라도 종량세를 채택한 나라에 비해 소비자 가격이 훨씬 비싸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중소 영세상 난립도 수입원가 상승에 기여한다고 지적했다. 규모의 경제가 되지 않는 중소 수입상은 협상력이 떨어져 수입원가 자체가 올라간다고 그는 설명했다.

셋째로는 다품종 소량 수입에 따른 재고관리 비용 증가도 한몫을 했을 것으로 그는 추정했다.

이밖에 중간 도매상과 백화점, 마트 등 유통업체들이 지나치게 높은 유통마진을 책정했을 가능성도 있다.

소비자원이 정말로 소비자가격 인하를 요구하고 싶다면 기획재정부가 6년 전에 시행한 제도 개선을 뒤늦게 건의하기보다는 유통업체들이 가져갈 적정 마진의 산정, 유통시장 재점검부터 점검해보는 일이 먼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