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애플이 중국산 낸드플래시를 차기 아이폰에 탑재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D램과 함께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양대산맥 중 하나인 낸드플래시를 둘러싼 업계의 복마전이 심상치않다.

일본의 닛케이아시안리뷰는 18일 애플이 중국 YMTC(Yangtze Memory Technologies)와 낸드플래시 구매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보도했다. 계약이 성사되면 YMTC는 중국 기업 중 처음으로 애플에 낸드플래시를 제공하게 된다.

YMTC는 2016년 7월 설립됐으며 한 때 마이크론과 샌디스크 인수를 추진했던 중국 반도체 업계 거인인 칭화유니그룹의 자회사로 알려져 있다. 현재 240억달러를 투자한 중국 허베이성 공장을 중심으로 외연을 확장하고 있으며 기술 개발을 위해 향후 10년간 1000억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애플은 글로벌 낸드플래시 시장의 큰 손이다. 전 세계 낸드플래시 수요의 15%를 차지하고 있으며 YMTC와의 협상은 공급처 다변화를 위한 전형적인 ‘애플식 전략’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애플은 삼성전자와 도시바, SK하이닉스로부터 낸드플래시를 수급 받았으나 가능하다면 다양한 업체로부터 부품을 조달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내적 하드웨어 수직계열화가 아니라면, 최대한 수급처를 늘려 안정적인 부품 수급에 나서기 위함이다.

▲ 애플이 중국산 낸드플래시를 차기 아이폰에 탑재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출처=픽사베이

두 회사는 낸드플래시 계약을 두고 노코멘트로 일관하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애플의 중국 시장 공략을 위해서도 이 계약이 반드시 필요한 절차라고 본다. 시장조사업체 다이제스트 ICT는 “정치적 요인도 작동했을 것”이라면서 “중국 정부와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이번 계약을 추진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현재 중국에서 아이폰이 화웨이, 비보, 오포 등에 밀리는 분위기를 타개하는 한편 중국 정부와의 스킨십을 통해 거대 스마트폰 시장 재장악에 시동을 걸었다는 해석이다. 애플은 중국 울란카브(Ulanqab)에 중국의 두 번째 데이터센터를 건설할 예정이며 이를 통해 아이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지난해에는 중국 사이버 보안법 준수를 약속하며 구이저우(Guizhou) 지방에 처음으로 데이터센터를 설립하기도 했다.

중국 반도체 산업의 발전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현재 중국의 반도체 제조 영향력은 글로벌 무대에서 영향력이 낮은 편이지만, 최근 중국 정부는 반도체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자국 반도체 산업의 육성에 나서는 중이다. 실제로 YMTC의 모회사인 칭화유니그룹은 인텔과 협력해 3D 낸드플래시 라이선스를 받는 한편, 자체 생산력을 키우고 있다. 부품 수급처 다변화와 중국 시장의 장악을 원하는 애플과, 어느정도 자체 제작 기술력을 확보한 중국 반도체 제조업체의 합종연횡이 벌어질 가능성은 충분하다.

문제는 낸드플래시가 포함된 메모리 반도체의 수급 균형이다. 당장 중국 제조업체가 빠르게 생산력을 키우며 전체 낸드플래시 시장의 공급 과잉 현상이 불가피하다는 말이 나온다. 중국이 본격적으로 낸드플래시를 양산하며 제작 난이도가 낮은 시장부터 차근차근 공급을 확대하면 메모리 반도체 수퍼 사이클(장기호황)이 끝날 수 있다는 경고음이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 3D 낸드플래시 신규 공장을 건설하고 있고 인텔은 중국 다롄에서 2단계 팹을 확장하고 올해 말까지 3D 낸드플래시 생산력을 두 배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SK하이닉스도 청주의 신규 공장 M15에 투자를 진행하며 96단 이상 3D 낸드플래시 생산에 나서는 한편 도시바는 일본 욧카이치(Yokkaichi) 공장에 이어 기타카미(Kitakami)에 팹7을 설립하며 2019년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여기에 중국까지 가세하면 낸드플래시 시장의 수요와 공급 균형이 단숨에 깨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시스템 반도체를 포함한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확인되는 애플의 행보에도 관심이 쏠린다. YMTC와 협력해 부품 수급처 다변화를 꾀하는 한편, 자체 반도체 제작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애플은 2008년 반도체 회사 P. A. 세미를 인수했고 GPU 파트너이던 영국의 이미지네이션 테크놀로지와 결별한 상태다.

블룸버그는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애플이 반도체를 자체 생산해 하드웨어 수직계열화를 성공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당장 낸드플래시에는 해당사항이 없어도, 큰 틀에서 애플의 수직계열화 전략 추이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애플의 구매 점유율은 9.2%로 삼성전자에 이은 2위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