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 용산구 용산동6가 서빙고로 139에 위치한 국립한글박물관. 출처=이코노믹리뷰 황진중 기자

[이코노믹리뷰=황진중 기자]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훈민정음(해례본)이 2018년 평창 올림픽 엠블럼에 채택된 덕분에 그 화려함과 보편성으로 세계인의 마음을 사고잡고 있다.  

한글은 과학적인 제작 원리에 따라 만들어졌지만 사람들에게 물, 공기처럼 가까워 경제 가치가 정확하게 분석되지 않았다. 그동안 한글은 1950년대부터 광고 시장에서 한 축을 담당한 디자인 요소였지만, 1960년대 이후 산업 성장 시기 노동자들에는 근무를 위한 의사소통으로 활용되는 수준이었다. 

▲ 2018 평창동계올림픽 엠블럼. 평창의 초성 ㅍ, ㅊ을 응용한 엠블렘이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출처=평창동계올림픽 공식 홈페이지

평창 동계 올림픽 엠블럼에서 보여준 한글 디자인

세계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한글 디자인 중 하나는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엠블럼이다. 2018년 올림픽 개최도시 평창의 초성 ㅍ과 ㅊ을 이용했다. ㅍ에는 ‘축제의 장’이라는 의미의 무대 모양을, ㅊ에는 ‘눈과 얼음’, ‘동계 스포츠의 스타(선수)’를 형상화한 별의 모양을 담았다. 엠블럼은 ‘하늘과 땅이 맞닿은 곳, 평창’이라는 의미에 올림픽에 참여한 선수들과 지구촌 사람들 모두에게 열려 있는 축제 한마당이라는 의미를 더했다.

엠블럼 개발에 참여한 제일기획 강정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reative Director, CD)는 “5개의 시안 중 한글을 활용한 현재 엠블럼을 최종 채택했다”며  “가장 한국적인 디자인으로 세계인과 대화하자라는 의도가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강정호 CD는 엠블럼 작업을 의뢰한 평창 올림픽 조직위원회에 “한글이 한국을 가장 잘 대표할 수 있는 상징적 소재라는 점을 강조했다”고 말한다. 평창 엠블럼은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지만 결국 디자인이다. 그는 “서체는 그래픽 디자인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며 “한글은 글꼴이 아름답고 다양한 형태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디자인적으로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 윤동주 시인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토대로 디자인한 수첩. 출처=이코노믹리뷰 황진중 기자

한재준 서울여대 시각디자인 교수는 “한글은 이도(세종대왕)라는 작가가 만들어낸 하나의 예술”이라고 강조한다. 문자를 만들 때 기반을 둔 철학을 해설한 훈민정음 해례본은 한글이 생각(얼), 말하는 것, 말을 구현한 글의 꼴을 구현해 하나로 통합한 예술적인 행위라는 것을 보여준다. 

외신매체도 평창 엠블럼에 들어간 한글과 의미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였다. 미디어 웹사이트 버슬(BUSTLE)은 평창 올림픽 엠블럼이 나타내는 ‘모두에게 열린 세상’이라는 의미를 조명했다. 문화 매체인 브릿+코(BRIT+CO) 또한 “평창 올림픽 로고가 가진 아름다운 의미”라는 기사에서 한글로 만들어진 올림픽 엠블럼 디자인에 대해 “개최국이 협동과 공생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올림픽에 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재준 교수는 “세계인들에게 보여준 한글의 경제 가치는 산술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한글 디자인이 세계인에게 노출되고 있는 요즘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기회의 변화”라고 평했다.

▲ 국립한글박물관은 조선 22대 왕 정조(1752~1800)가 유년시절 쓴 언문 편지와 성인이 된 후 쓴 언문 편지를 전시하고 있다. 출처=이코노믹리뷰 황진중 기자

한글 가치 연구는 아직 미흡... 객관화 위한 연구로 나아가야

세계에 지속해서 보이는 한글과 달리 한글이 지닌 잠재적 가치를 제시하기 위한 객관적 연구는 미흡하다. 국립한글박물관은 지난해 11월 ‘한글 창제, 사용의 사회 경제적 효과’라는 결과 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는 한글이 문자로서 우수한 것에 대해 국내외의 학자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충분히 알고 있을 정도로 익숙한 내용이라면서도, 한글의 독창성과 학습의 효율성, 서체에서 나타나는 아름다움 등 우수한 문화 상징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한글에 대한 우리의 담론이 제한된 화제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또 한글에 대한 언론의 관심이 주로 ‘한글날’ 앞뒤에만 주목되는 바람에 한글의 파급 효과에 대한 구체적, 실제적 근거가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되고 있다고 했다. 

보고서는 한글이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근대화, 특히 산업화가 요구하는 지식인 기본 문해력, 최소한의 시민의식을 갖출 수 있는 기초 학문 교육에 상응하는 지식, 실업교육에 기반을 둔 지식, 전문성을 함양하는 지식 고양에 기여했다고 설명한다.

이승재 국립한글박물관 연구교육과 과장은 "한글의 가치를 모르는 외국인을 설득하려면, 한글이 우수한 우리의 문화라는 사실과 함께 한글에 대해 `혹독할 정도로 비판적인 시각`을 지닌 채 연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과장은 국가는 한글 가치의 파급을 위해 객관적 데이터를 토대로 한 기초 자료를 만드는 역할을 해야한다며 “문자 수출 등 사회적 필요성과 4차 산업 혁명에 있어서 한글의 경제ㆍ문화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 디테일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정확하게 연구해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국립한글박물관은 한글을 광고에 사용한 이유와 사례를 정리해 전시하고 있다. 출처=이코노믹리뷰 황진중 기자
▲ 한글 디자인은 다양한 상품에 디자인 요소로 활용되고 있다. 출처=이코노믹리뷰 황진중 기자

한국 문화의 근간인 한글과 경제의 만남

이철환 전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은 “문화는 경제발전의 핵심요소인 기술혁신과 불가분의 관계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한국이 직면한 위기의 본질은 경제문제가 아니라 세계에 내세울 만한 한국적 이미지 상품이 없는 문화의 위기”라는 프랑스의 문명 비평가 기 소르망(Guy sorman)을 인용, 최근 한국 경제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이용제 한글 활자 디자이너는  “한글의 경제적 가치가 무궁무진하다”며 "관련업계는 한글 폰트 시장규모를 200억원, 2차 파생 상품이나 서비스까지 확대한다면 2000억원 이상의 경제 가치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말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한글을 직접 디자인해 활용하는 이용제 디자이너는 “한글에 내재한 철학인 중용의 덕을 제품과 서비스에 적용하면 가치를 지속해서 창출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이승재 국립한글박물관 연구조사과 과장은 “문화는 강제로 전달하면 절대 성공할 수 없다”며 “한글의 부가가치 창출을 위해 미래 패러다임에 목적을 맞추면서 적확한 연구로 한글 브랜드, 이미지의 확장성을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국립한글박물관에서 보여주는 한글의 정신. 출처=이코노믹리뷰 황진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