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허지은 기자] 블록체인(분산원장기술)을 기반으로 한 은행 간 자금이체 테스트 결과 송금 속도가 기존 시스템보다 느린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금융권이 앞다퉈 블록체인 기술 적용을 검토하고 있는데 현재 기술력만으론 그동안 지적돼 온 '거래속도' 문제가 현실로 드러난 셈이다. 

13일 한국은행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모의테스트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해 9월부터 올 1월까지 진행한 모의테스트는 현행 한국은행 금융망 업무 중 하나인 은행 간 자금이체 업무를 블록체인 기술로 구현해 진행됐다. 모의테스트를 진행한 한은 금융정보화추진협의회에는 16개 시중은행과 3개 증권∙보험사를 비롯, 금융결제원 등 6개 유관기관 등 28개 기관이 참여했다.

▲ 이번 테스트에서는 원장을 블록 형태로 연결하는 블록체인과는 조금 다른 건 별로 연결하는 분산원장기술이 사용됐으나 한은 관계자는 같은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고 설명했다. 사진은 블록체인 개념도. 출처=피넥터, KTB투자증권

테스트에는 국내외 대형 금융기관이 참여한 R3컨소시엄의 블록체인 플랫폼 ‘코다(Corda)’가 적용됐다. 코다는 금융서비스에 특화된 블록체인 플랫폼으로 미국 핀테크 기업 R3와 골드만삭스, 씨티그룹 등 20개 글로벌 은행과 국민, 신한, 하나, 농협, 우리은행 등 5개 은행이 참여하는 R3컨소시엄에서 개발된 프로그램이다. 

테스트는 ▲효율성(처리 속도) ▲복원력(시스템 장애 시 복구 가능성) ▲보안성(권한없는 자의 시스템 접근 차단) ▲확장성(시스템 참가 금융기관의 확대 허용) 등 네 가지 기준으로 진행됐다. 해당 기준은 일본, 캐나다 등 주요국 중앙은행이 진행한 테스트 결과를 참고해 마련됐다.

테스트 대상은 한은 금융망 140개 참가기관을 기준으로 선정했다. 거래건수 기준 상위 4개 은행을 뽑아내고 나머지 136개 기관을 1개 은행으로 선정한 5개 거래은행에 한국은행을 더해 총 6개 은행 간의 자금 이체를 테스트했다. 모의시스템 데이터로는 2014년 3월 140개 한은 금융망 참가기관이 실제로 거래한 자금이체 데이터 9301건이 사용됐다.

한국은행 금융망 VS 블록체인, 결과는 2대2 ‘무승부’

테스트 결과 현재의 블록체인 기술을 사용한 은행 간 자금 이체는 보안성과 확장성 측면에서는 양호했으나 효율성과 복원력은 기존 방식에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9301건의 자금 이체 지급지시를 처리할 때, 현행 시스템은 9시간이 소요된 데 반해 블록체인 플랫폼 하에서는 2시간 33분이 추가로 소요돼 11시간 33분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스템 장애 시 복구 가능성 여부를 파악하는 복원력 측면에서도 현 기술 수준에서 복원력 확인은 불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 이번 모의테스트는 거래당사자(은행)과 이들 간의 자금이체 거래를 시스템적으로 연결하는 12개의 핵심 구성요소(노드)로 이뤄졌다. 사진은 모의테스트 개념도. 출처=한국은행

테스트를 진행한 김민선 한은 금융결제국 과장은 “블록체인을 적용한 처리 속도가 지연된 것은 블록체인의 거래기록 검증 과정이 기존 중앙집중형 시스템에 비해 복잡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장애 시 복구가 어려웠던 부분에 대해서 그는 “비밀유지를 위해 정보공유 범위를 제한한 데 주로 기인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결과는 블록체인 관련 여러 프로그램을 이용한 주요국 중앙은행의 모의테스트 결과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지난해부터 일본, 스위스, 캐나다 등 주요국 중앙은행은 비슷한 내용의 테스트를 여러 번 진행해왔는데 현존하는 블록체인 기술로는 기존 시스템을 완전히 뛰어넘는 결과는 나오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처리 속도와 관련해 '은행 간 자금이체'가 아닌 '해외 송금'의 경우 기존 시스템보다 크게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가상통화 리플을 적용한 블록체인 플랫폼의 경우 수일이 걸리는 해외송금을 단 몇 분만에 이뤄낼 수 있다. 이미 SBI홀딩스 등 일본 기업과 우리은행은 지난달부터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해외 송금 테스트에 나서고 있다.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해외 송금에는 중개수수료도 필요없을 뿐 아니라 네트워크 참여자 모두에게 송금 기록이 남기 때문에 복제나 해킹, 장부 조작이 불가능하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김 과장은 “다만 블록체인 관련 기술의 발전 속도가 매우 빠른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면서 “업계의 동향을 주의 깊게 모니터링하고 지급결제 서비스에 대한 적용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연구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