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이인종 삼성전자 부사장 (최고기술책임자, CTO)가 구글로 이직한다. 이 전 부사장은 12일 자기의 SNS에서 구글 이직 사실을 알리며 "구글에서 EIR(사내기업가)를 맡아 사물인터넷 사업을 맡게 됐다"면서 "알파벳의 다이앤 그린에게 업무보고를 하는 자리"라고 밝혔다.

다이앤 그린 이사는 구글 클라우드의 최고경영자(CEO)다.

출근은 오는 20일 하며 미국 본사에서 일한다. 구글과 알파벳의 사물인터넷 사업을 총괄하는 한편 커넥티드카와 구글홈 등 파편화된 초연결 인프라를 하나로 묶는 작업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EIR이라는 직책은 구글이 이 전 부사장을 위해 따로 신설했다는 설명이다.

현재 구글의 알파벳은 하드웨어 수직계열화를 통해 모토로라 전 CEO 릭 오스텔로를 중심으로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통합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14년 구글이 인수했던 스마트홈 업체 네스트가 지난 7일부로 구글 하드웨어팀에 통합되는 등 프로젝트 일원화가 이어지는 상태에서 사물인터넷 경쟁력도 전열을 추스리는 분위기다. 이 전 부사장의 역할도 이 지점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 삼성페이와 비브랩스의 아버지로 불리던 이인종 전 삼성전자 부사장. 출처=갈무리

이 전 부사장은 2011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삼성전자의 소프트웨어 인프라 경쟁력 확충에 큰 역할을 했다. 보안솔루션 녹스와 간편결제인 삼성페이 개발을 주도했으며 지난해 비브랩스 인수를 통한 인공지능 기술력 확보에도 나섰다. 하드웨어 일변도인 삼성전자의 DNA에 소프트웨어 인프라를 연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공지능 빅스비와 삼성페이는 물론 보안 솔루션 녹스는 삼성전자 소프트웨어 전략의 최전선에 있으며, 최근 삼성전자는 동남아시아의 그랩택시와 협력해 녹스 솔루션 글로벌 시장 진출에 속도를 내는 중이다.

그러나 이 전 부사장이 삼성전자에서 마냥 탄탄대로를 걸었던 것은 아니다. 당장 인공지능 빅스비 개발을 주도했으나 생각보다 경쟁력이 살아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는 지난해 글로벌 스마트폰 인공지능 비서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빅스비 점유율이 12.7%를 기록했으나 2020년 6.5%로 반토막 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한 상태다. 빅스비가 비브랩스의 기술력이 아닌, 삼성전자의 기존 인공지능 기술만 답습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삼성전자도 공식 인정했다. 고동진 삼성전자 IM부문장은 지난 1월 CES 2018 기간 열린 기자회견에서 "빅스비 경쟁력이 낮다는 지적에는 겸허히 받아들인다"면서 "앞으로 등장할 빅스비 2.0은 완전히 다를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이 전 부사장은 지난해 말 개발 최일선에서 물러났으며, 그 후임으로 정의석 부사장이 등판했다.

삼성페이를 둘러싼 논란도 있다. 현재 삼성페이는 네이버페이와 함께 국내 간편결제 시장을 장악한 최강의 플랫폼으로 꼽히지만 그 이상의 비즈니스 모델이 없다는 지적도 만만치않다. 데이터도, 수수료 모델도 없기 때문에 유지비용만 쌓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중이다. 이 전 부사장의 입지가 좁아진 결정적인 배경이라는 말이 나온다. 다만 삼성전자는 삼성페이와 관련된 논란에 대해 "삼성페이는 원래 수익을 올리는 구조가 아니다"라며 일축했다.

결국 이 전 부사장은 지난해 12월19일 삼성전자를 퇴사한다고 밝혔다. 직접적인 퇴사원인은 가족문제였다. 이 전 부사장은 지난해 7월 딸이 이라크에 파병됐다며 "앞으로 가장의 역할에 충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전 부사장이 고작 2개월만에 구글로 이직하자 '가장의 역할에 충실할 것'이라는 삼성전자 퇴사의 변은 결국 진심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 삼성전자 내부에서 입지가 좁아지자, 새로운 대안으로 구글로 이직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 전 부사장의 구글 이직을 지난 2016년 천재해커 이정훈 씨의 구글 이직과 비교하고 있다. 역사상 최고의 천재 해커라는 평가를 받던 이정훈 씨는 삼성 SDS에 입사하며 자신의 뜻을 펼쳤으나, 2016년11월 갑자기 구글로 이직했다. 직접적인 이직 사유는 '해커로 더 성장하기 위해'였지만 업계에서는 자유로운 가능성을 보장해주는 구글의 사풍이 이정훈 씨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