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를 용서하기로 했다> 마리나 칸타쿠지노 지음, 김희정 옮김, 부키 펴냄

[이코노믹리뷰=최혜빈 기자] 수많은 감정을 안고 살아가는 인간에게, 용서란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진정으로 용서를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용서를 자기와 무관한 것으로 여기기 쉽고, 용서는 강인한 정신력을 가진 사람이나 종교적 깨달음을 얻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결론지어 버리기도 한다.

이 책은 세계 자선단체 ‘용서 프로젝트(The Forgiveness Project)’를 설립한 저자가 썼다. 용서 프로젝트는 비영리 자선단체로, 용서를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공유함으로써 용서가 상처와 트라우마를 탄력적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목표다. 2007년부터 영국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범죄자들을 위한 교정과 치유 프로그램을 해왔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아 그해 롱포드(Longford Prize) 특별상을 받았다.

용서 프로젝트를 통해 46명의 사람들이 자기의 용서 경험을 이 책에서 공유했다. 학대와 폭력, 테러, 학살, 전쟁 등으로 물리·정신의 외상을 입었지만 복수 대신 용서를 선택한 사람들이다.

2008년 영국 런던의 팀 아이도우와 그레이스 아이도우 부부는 당시 열네 살이었던 셋째 아들 데이비드를 잃었다. 단지 자기 학교와 사이가 좋지 않은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이유로, 가해자 엘리야 다이오니는 그날 처음 본 데이비드 아이도우를 칼로 찔렀던 것이다. 심장을 봉합하고, 다리를 잘라내기까지 했지만 데이비드는 결국 목숨을 잃었다.

엄마 그레이스는 “데이비드에게 아무 죄도 없다는 걸 확신했지만, 내 아이만 감싸고 보호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지 않”아서 데이비드도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석 달 동안 경찰이 사건을 조사한 결과, 데이비드가 잘못한 점은 아무것도 없다고 밝혀지자 그레이스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

데이비드의 가족은 자기들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각자의 방식으로 이해하려 애썼다. 그레이스는 이때 이상한 점을 발견했는데, “한순간도 데이비드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상한 것은 엘리야라는 소년도 자꾸 떠올랐다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엘리야를 만나야겠다고 결심한다.

그레이스는 엘리야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른 사람 앞에서 눈물을 보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고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고 회상한다. 그녀는 소년에게 충격적인 말 한마디를 했다.

“나는 데이비드가 아니라 너 때문에 울고 있단다. 네 인생에 무슨 짓을 한 거니?”

그레이스는 엘리야를 용서했고, 이들 부부는 아들을 기리기 위해 ‘데이비드 아이도우 재단’을 설립했다. 현재 청소년을 대상으로 총기와 흉기 범죄의 위험성에 대한 교육을 하고 있다.

1979년 캐나다의 앤 마리 헤이건은 아버지 토머스 헤이건이 도끼로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 역시도 도끼로 공격받았던 앤 마리 헤이건은 아버지를 잃고 “슬픔과 절망에 빠져 분노와 복수심, 비통함과 자기 연민”에 휩싸였으며, 가해자가 영원히 감옥에 갇혀 있기를 바랐다.

가해자의 석방을 막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던 그는 가해자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가졌는데, 이때를 계기로 모든 것이 변해버린다. 조현병에 시달리며 스스로를 자책하던 모습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달려가 그를 용서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는 이때를 “나를 사로잡았던 모든 아픔과 고통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앤 마리 헤이건은 사람들이 용서의 의미에 대해 쉽게 오해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용서는 승인이 아니다. 용서했다고 해서 가해자가 한 행동에 동의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들에게 그런 행동을 할 권리가 있다고 인정하는 것도 아니다… 용서는 가해자가 죄를 지었음에도 호의와 동정,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인간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행위다.”

저자는 책에서 완전한 용서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용서하는 대상은 범죄 행위 자체가 아니라 오류를 범한 인간의 본성’이라고 말한다. 결국 인간에 내재한 불완전성에 대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