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견다희 기자] 계약재배는 선진국형 농식품 공급 모델 중 하나로 주목받고 있다. 사전 계약을 바탕으로 농사물의 안정적 판매로 재배농가의 경영 위험을 완화해 소득을 안정시킬 수 있고, 나아가 채소 수급과 가격 안정에 기여하는 거래방식이다. 기업도 고품질의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어 서로의 위험부담을 나눌 수 있다.
미국은 계약재배 규모가 지난 30년간 세 배 증가해 농업 생산의 약 40%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식자재의 저장 기술이 발달돼 있고 식자재의 신선도를 덜 중시하는 소비자 인식 때문에 계약재배 비율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일본도 외식부문에서 농산물 원료 조달을 위해 계약재배의 활용이 늘어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신선 식자재를 선호하는 소비자 취향 때문에 오래 보관해야 하는 계약재배 농산물 시장의 성장속도는 더딘 편이다. 그러나 농가소득 증대와 식자재 안정 수급이라는 측면에서 계약재배는 농업계와 식품유통업계에서는 불가피한 선택이 되고 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이용선 선임연구원은 <이코노믹리뷰>에 “우리나라에서 상생재배가 안착되기 위해서는 4가지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1. 상생재배 매뉴얼 작성
상생재배는 계약당사자 간의 이해관계, 효율적인 계약방식 채택 등 초기 정착이 어려워 표준 매뉴얼을 작성해 배포할 필요가 있다. 매뉴얼은 계약 재배를 도입하려는 산지 조직을 지원할 수 있도록 이해하기 쉽고 구체적인 사례를 포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계약재배 매뉴얼은 크게 계약재배 도입을 돕기 위한 지침과 계약 시행을 위한 관리지침 내용으로 구분할 수 있다. 관리지침은 사업대상자, 사업시행자, 계약체결, 계약관리, 계약물량 판매, 정산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는데 주로 계약재배 시행을 위한 절차별 관리지침이다.
계약재배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부족한 점을 고려하면 계약재배 도입을 검토하려는 생산자(조직)나 후보사업자에게 계약재배 사업이 왜 필요한지, 계약재배를 하려면 어떤 점이 요구되는지, 생산자에 대한 설명 및 교육방법, 계약사업자가 유의해야 할 사항 등을 상세히 설명하고 이해를 돕는 매뉴얼이 필요하다. 계약재배 도입을 위한 매뉴얼에 포함될 만한 내용으로는 ‘산지의 마케팅 대응 방향과 계약재배의 필요성’, ‘계약재배를 지속하기 위한 요소’, ‘생산자(조직)에 대한 계약재배 설명·교육 방법’, ‘계약재배 사업자의 유의사항’ 등이 있다.
2. 정부의 상생재배 관련 교육·컨설팅 지원
정부는 1995년 이후 계약재배를 농산물 수급안정사업의 주요 수단으로 삼고 있다. 정부는 기업에서 필요한 국내 농산물이 계약재배로 유통될 수 있도록 기업의 담당자를 교육하고 컨설팅해 계약재배 전문가로 육성해야 한다. 기업이 상생재배를 통해 원료농산물 구매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해당 품목의 재배관리, 수급과 가격분석을 통한 계약단가 산정, 효율적 상생재배 방식 도입 등 해당 기업 담당자의 전문성이 반드시 요구되기 때문이다. 해당 기업의 전문가 육성을 통해 계약재배가 확대되면 원료 농산물의 가격변동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으며, 농가는 안정적인 소득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3.이익을 공유하는 손익분담형 계약 도입
국내에서 CJ프레시웨이가 업계 최초로 초과수익공유제를 운영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상생재배가 안착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부분은 이익 공유다.
배추·무와 같은 쉽게 저장하기 어려운 비(非)저장성 채소가 가격 범위에 따라 농가와 농협의 손익 분담비율이 달라지는 것은 농가를 보호하기 위한 방식이다. 계약재배 계약 당시 고정된 단가가 재배 시 시세와 차이가 생겼을 때 수익 분담 비율과 손실 분담 비율을 서로 다르게 적용해 농가를 보호하는 측면이 있으나 손익 분담구조는 복잡해지고 있다.
손익 분담비율을 가격 상승 시와 하락 시에 동일하게 적용하는 방식은 계약당사자가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계약당사자가 정해진 비율에 따라 가격 등락 시 동일하게 손익을 부담한다면, 각자의 성과에 따라 보수가 비례적이라는 점에서 보수 구조가 분명하고 일관성을 갖게 될 것이다. 더불어 최저가격 보장이 적용되거나 자체 안정 기금을 조성해 활용한다면 가격하락 위험을 줄일 수 있다.
손익을 분담하지 않는 경우에도 생산자의 동기를 유발할 수 있는 인센티브 체계를 갖출 필요가 있다. 품질이 우수하거나 생산성이 뛰어난 농가에 별도의 등급을 부여하거나 일부를 추가 매입하는 등 다양한 방식이 강구될 수 있다.
4. 물량확대
계약재배가 사전에 물량을 정해놓는 것인 만큼 농가가 원한다고 해서 참여할 수 없다. 농가들의 참여가 늘려면 계약재배 물량이 더 늘어나야 한다. 참여하고 싶어도 참여할 수 없는 일이 자주 벌어진다. 일례로 계약재배 계약을 맺고 제주도에서 대파 농사를 짓고 있는 강길남 씨는 “계약재배 전에는 그냥 내 마음대로 농사를 지었다”면서 “상생재배를 통해 대파의 연백부(흰색 줄기)가 길어야 상품성이 높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판로 걱정 없이 온전히 농사에만 집중하니 재배법에 대해 연구하게 됐고, 전보다 좋은 품질의 대파를 생산할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강 씨는 “농가들 사이에서 계약재배의 장점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제한된 물량에 모두가 참여할 수 없다”면서 “안정적으로 계약재배 제도를 운영하려면 먼저 기업 측의 재배 물량 확대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