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조태진 법조전문기자/변호사 ] 법관의 양심에 따른 적정한 양형인가, 아니면 ‘재벌 봐주기’를 위한 3·5공식(3년 징역, 5년 집행유예)이 적용된 기울어진 판결인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항소심 선고 결과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식지 않고 있다. 특히 이 사건 항소심 재판장을 맡은 정형식 부장판사에 대해서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특별감사를 요구하는 청원이 빗발치는가 하면 판사 개인의 신상이 SNS 상에 오르내리는 등 원색적인 비난이 난무하고 있다.

항소심 선고 결과가 미칠 사회적 파장이나 국민적 법 감정, 사안의 중대성에 대해서는 항소심 법원도 사전에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을 터, 항소심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느낀 항소심 법원의 고민은 과연 무엇이었는지 ‘법관은 판결문으로 말한다’는 법언에 따라 이 부회장 항소심 판결문을 바탕으로 항소심 재판의 전말을 복기해 보기로 한다.

`법관은 판결문으로 말한다`...항소심 재판부,  법리판단에 공 많이 들인 흔적

지난해 12월 27일 항소심 결심공판이 이루어진 후 항소심 판결 선고가 내리진 지난 5일까지 항소심 법원은 결론을 내리기까지 꽤 많은 시간을 소요했다. 이는 이 사건 1심 당시 재판부가 결심공판 후 18일 만에 판결 선고를 내렸던 것과 비교하더라도 알 수 있는 사실로, 재판부가 결심공판 1주일을 앞둔 시점에서 특검에 공소장 변경을 요구하는 등 사실관계 판단 이외에도 법리판단에 많은 공을 들인 까닭으로 보인다.

-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전 최순실)의 관계는?

우선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과 최서원 간의 공모 여부에 대해 판단했다. 이 부분은 항소심 재판 내내 법리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단순뇌물공여죄’, ‘제3자 뇌물공여죄’에 대한 논란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자, 1심 선고를 앞둔 박 전 대통령, 최서원 재판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서 재판부는 두 사람을 뇌물수수죄의 ‘공동정범’으로 보았다. 이로써 특검은 그 동안 자신들이 일관되게 주장해 온 박 전 대통령, 최서원 간의 ‘경제적 공동체’, ‘공모공동정범’ 주장이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재차 받아들여져 관련 재판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됐다.

- 포괄현안으로서의 승계작업 및 그에 대한 부정청탁이 존재하였는지

포괄현안으로서 이 부회장의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작업이 존재하는지, 또한 이 부회장이 이를 위해 박 전 대통령 등에게 부정청탁을 하였는지에 대한 판단은 이 사건 재판의 분수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중요했다.

이 부회장이 권력자에게 경영권 승계를 위한 부정한 청탁을 했다면, 이 부회장은 권력자와 공범 관계에 서는 것이지만, 만약 이 부회장이 권력자의 강요로 뇌물을 공여한 것이라면 이른바 ‘요구형 뇌물공여자’로서 권력자와의 관계에서 피해자의 위치에 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1심 재판부의 판단은 ‘포괄적’ 현안으로서의 승계작업에 대해 이 부회장이 권력자에게 ‘묵시적’ 부정청탁을 했다는 것이지만,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비록 삼성그룹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련의 조치들은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이는 사후적 판단에 불과할 뿐이어서 ‘부정청탁’이 인정되지는 않기에 ‘제3자 뇌물공여’혐의가 적용된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과 1심에서 유죄가 나온 한국 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대한 지원금 부분은 모두 무죄가 선고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이제 남은 것은 ‘정유라 승마지원’부분

뇌물공여와 관련한 대부분의 혐의가 ‘부정청탁’이라는 요소의 결여로 ‘제3자 뇌물공여’혐의가 모두 무죄로 돌아서자, 공소사실 중 남은 것은 ‘부정청탁’여부와 무관하게 유죄가 인정될 수 있는 정유라 승마지원에 대한 ‘단순뇌물공여’혐의와 그로부터 파생되는 공소사실들 뿐이었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서도 항소심 재판부는 판단을 달리했다. 승마지원 부분 중 뇌물로 인정된 부분은 36억여 원 상당의 용역대금 뿐이었고, 이로부터 파생되는 범죄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 및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경법)상의 횡령 역시 피해액은 1심 당시 64억여 원, 80억여 원에서 각 36억여 원으로 줄어들었다.

특히 특경법 상의 횡령은 피해액이 50억원이 넘을 경우에는 법정형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지만, 이번과 같이 피해액이 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일 경우에는 법정형이 3년 이상의 징역이어서 항소심 재판부의 이 같은 판단은 이 부회장의 양형을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됐다(특경법 제3조 제1항 참조).

- 논란을 남긴 ‘특경법(재산국외도피)위반’

항소심 재판부는 1심 재판부와 달리 특경법 상의 재산국외도피죄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특경법상의 재산국외도피죄(특경법 제4조 제1항)에서 ‘도피’의 개념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행위가 법령을 위반하여 국내 재산을 해외로 이동한다는 인식, 대한민국 법률제도의 규율과 관리를 받지 않고 자신이 해외에서 임의대로 소비·은닉하는 행위라는 인식이 있어야 하는데, 장차 사용하기 위해 재산을 빼돌린 것이 아니라 삼성 측이 최서원에 대한 공여자로서 금품을 제공하였다면 이는 삼성 측이 용역대금에 대하여 소비, 은닉 등 지배관리를 하였다고 볼 수 없어 무죄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항소심 재판부의 입장은 지금껏 대법원이 일관되게 유지해 온 특경법상 재산국외도피죄에서의 ‘도피’개념을 그대로 답습한 것(대법원 2005. 4. 29. 선고 2002도7262 판결 참조)이고 이 부회장을 피해자로 보는 관점에서는 충분히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실무에서는 결과적인 책임을 물어 ‘도피’를 인정한 사례도 많아 논란은 대법원에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 이 부회장, 집행유예 받기에 충분한 양형

결론적으로 항소심 재판부에서 이 부회장에게 적용한 혐의는 36억여 원에 대한 단순뇌물공여죄 및 이에 따른 특경법 상의 횡령, 범죄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위반이다.

각 죄는 형법 제37조 상의 경합법 조항에 따라 유기징역을 선택할 경우 형량이 가장 무거운 죄의 형량을 기준으로 50%를 가산하지만, 항소심 선고 결과 형량이 가장 무거운 특경법 상 횡령의 법정형은 징역 3년 이상에 불과하고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따른 양형기준은 징역 2년 ~ 5년, 그 다음으로 형량이 무거운 뇌물공여죄 역시 양형기준이 징역 2년 6월 ~ 3년 6월에 불과했다.  1심이 항소심에 미루어 온 작량감경까지도 가능한 상황임을 고려한다면, 이 부회장이 집행유예까지 받는다 하더라도 법적인 문제는 없다.

특히 이 부회장의 경우에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 선고를 받기는 했으나, 이미 1년 가까이 실형과 다름없는 구금생활을 했으므로 항소심 재판부로서는 이 부회장에게 집행유예 선고를 하더라도 사실상 징역 1년형을 선고한 것과 같은 실제적 효과가 있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도 보인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이 내린 선고 결과에 대해 작량감경을 하고 이 부회장에게 집행유예 선고’를 할 것이라는 세간의 예측을 깨고 전체적인 사건의 구도를 달리해 ‘사실상 무죄에 가까운 집행유예 선고’를 했다.

어쩌면 쉬운 길을 마다하고 도리어 욕먹을 각오로 쓴 판결문이기에 여러 뒷말이 나오고 있는 형편이지만, 법조계 일각에서는 어차피 상고심이 이어질 마당에 설마 항소심 재판부가 상고심에서 파기 환송될 것이 뻔한 터무니없는 판결문을 썼겠느냐는 의견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사건의 진실은 결국 기록을 본 자만이 알 수 있는 것이기에 상고심에서 어떠한 결론이 나올지 지켜볼 문제다.

▲ 조태진 법조전문기자/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