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조태진 법조전문기자/변호사 ] 지난 5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항소심 선고 결과가 법조계에도 적잖은 충격을 던졌고 지금까지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법원이 이른바 ‘시국사건’에서 보여줬던 전형적인 ‘공식’에 따라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한 후 항소심에서 `작량감경`으로 집행유예를 선고할 것’이라 예상했던 법조계다. 

이재용 부회장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는 결론적인 측면에서는 법조계의 예상을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항소심 법원은 ‘작량감경’ 수준을 넘어 사실상 무죄 선고에 가까운 집행유예 선고를 내렸기 때문이다.

박영수 특검은 항소심 결과에 대해 `이 부회장에게 불리한 특검의 증거를 배척하는 채증법칙 위반의 오류가 있었음`을 주장하며 즉각 상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부회장 및 박근혜 전 대통령 사이의 정경유착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여 온 일부 재야 법조인들 역시 일제히 항소심 결과를 비난하고 나섰다.

특검의 이유있는 완패

수만 페이지 분량의 증거기록과 3400여개에 이르는 증거를 제출한 특검과 1년간 수십 회의 공판기일을 거치며 특검이 주장하는 공소사실에 대해 치밀한 논리로 응수했던 이 부회장 변호인단 등 이번 재판에 직접적으로 관여한 당사자 및 변호인 이외에는 사건기록을 열람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아직 항소심 판결문도 공개되지 않은 상황이라 제3자의시각에서 이번 항소심 결과를 논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그 동안 특검이 보여준 소송행위 및 언론을 통해 공개된 항소심 선고의 취지를 살펴본다면 특검의 완패에는 분명 이유가 있어 보인다.

지난해 2월 특검은 이 부회장을 기소할 당시, "이 부회장의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를 위한 ‘이재용-박근혜’ 간의 정경유착 ‘퍼즐’을 입증할 증거는 차고 넘친다"며 이 부회장 중형선고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허둥지둥 특검과 대조되는 차분한 변호인단

대개 ‘시국사건’은 증거에 입각한 치밀한 법리 다툼보다는 국민적 여론을 등에 업고 재판부를 압박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는 철저한 증거재판주의로 가더라도 이길 자신이 있다는 일종의 호언장담이었던 것이다.

이에 대응하는 이 부회장의 태도는 오히려 냉정하고도 이성적이었다. 특히 수사단계에서부터 항소심까지 혐의사실을 전면적으로 부인하여 사건의 프레임을 ‘정경유착’이 아닌 ‘요구형 뇌물’로 끌고 갔다. 또 이 부회장을 ‘정경유착’의 공범이 아닌 뇌물 사건의 ‘피해자’로 일관되게 이끌고 갔다. 이런 변호인의 전략은 피고인 진술의 일관성을 중시하는 형사사건에서는 확실히 ‘먹히는’ 전략이 됐다.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공소사실에 대한 거증책임을 부담하는 특검의 창은 철옹성 같은 변호인단의 방패를 관통하기에는 한없이 무뎌보였다.

무엇보다 공판진행 과정에서 특검이 공소사실을 확실하게 뒷받침할 ‘스모킹건’을 제시하지 못한 것은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그렇다고 국민적 법 감정을 고려할 때 이 부회장에게 무죄 선고를 할 수는 없었던 1심 법원은 특검의 징역 12년 구형에 대해 최하한의 양형을 적용해 이 부회장에게 5년형의 징역을 선고했다. 열정적인 특검과 냉정한 변호인단 사이에서 어느 쪽의 편도 들어줄 수 없었던 1심 법원은 결국 오랜 고민 끝에 절충적 입장을 취했던 것이다.

특검, 항소심서 더 허둥됐다...`0차 독대` 공언은 자충수

특검과 이 부회장 쌍방 항소로 항소심은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간 듯했지만, 항소심에 이르러 특검은 더욱 허둥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형사 사건의 경우 공소사실은 기소 단계에서부터 모두 정리가 되고, 새로운 사실관계가 확인되거나 법리적 재구성이 필요할 경우 부득이 한 두 차례 공소장 변경을 하는데 반해, 특검은 항소심에서, 그것도 판결 선고 1주일을 앞둔 시점까지 무려 세 차례나 공소장 변경을 했다. 특검 수사가 과연 충실히 이루어졌는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또한 특검은 항소심 공소장 변경과정에서 추가된 이른바 ‘0차 독대’가 ‘이재용-박근혜’퍼즐을 입증할 비장의 무기가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정작 독대에서 이루어진 이 부회장, 박 전 대통령 사이의 대화 내용은 고사하고 ‘0차 독대’사실이 정말 있었는지조차 입증하지 못했다. 

이는 오히려 전체 공소사실의 신빙성마저 떨어뜨리는 자충수가 되는 결과를 낳았다.

특히 공소장 변경을 통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던 미르·K스포츠 재단 지원 부분 이외 승마지원 부분에 대해 ‘단순뇌물공여죄’ 및 ‘제3자 뇌물공여죄’를 선택적으로 공소장에 기재해 항소심 판단을 받고자 했다. 이는 특검이 박 전 대통령, 최서원 사이의 공모 여부는 물론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 사이에 오 간 ‘부정한 청탁’에 대해서도 확신을 갖고 있지 못한 것 아니냐는 인상을 줬다. 

특검은 국면 전환을 위해 무리수를 감행했지만, 결국 변호인단이 초지일관 그려온 큰 그림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그 결과는 고스란히 항소심에 반영된 것이다.

사실심으로서는 최종심인 항소심이 끝난 현재, 과연 특검이 상고를 통해 지금까지의 부진을 모두 털고 법률심인 대법원에서 ‘이재용-박근혜’ 퍼즐을 끝내 맞출 수 있을지 주목된다.

▲ 조태진 법조전문기자/변호사